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Jan 01. 2022

재보험 계약의 형태

비례와 비비례 재보험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재보험 계약이 체결되고 있을까. 은행이나 증권사의 파생상품은 기초자산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시간에 따라 구조화하거나 기초자산의 가치 변화에 연동되는 형태가 많다. 처음에 큰돈이 움직이고 원리금을 천천히 받아야 하는 계약에서 그 구조를 반대로 바꿔 큰돈을 받고 나중에 발생하는 원리금을 다른 회사에 넘기는 게 첫 번째 상품이고, 기초자산의 가치 변화에 연동되는 파생상품은 선물이나 옵션이 대표적이다. 주식투자가 익숙하다면 ETF를 기초자산의 가치 변화에 연동되는 파생상품의 대표적인 예로 이해하면 쉽다.


  하지만 재보험은 이 두 가지 구조를 잘 활용하지는 않는다. 우선 시간에 따른 현금흐름을 구조화하는 것은 일반적인 재보험에서 아예 다루지 못했다. 재보험계약이 다룰 수 있는 기초자산은 순수한 보험 위험뿐이었는데,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반적인 보험 계약에 순수한 보험 위험뿐 아니라 시간가치와 관련된 위험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암에 걸릴 확률이 1%이고 암에 걸렸을 때 1000만 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이 있다면 그 상품의 가지는 보험 위험액은 대략 1%와 1000만 원을 곱한 10만 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입하는 보험 상품은 보험료로 10만 원만 받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암에 걸릴 확률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방식처럼 매년 그해의 보험 위험액에 해당하는 만큼을 보험료로 납입하게 되면 처음에는 10만 원을 내던 것이 나이가 들어서는 위험률이 상승함에 따라 100만 원, 혹은 그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 보험료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늘어나는 형태인데, 나이가 들면서 소득이 감소하는 사람들의 소득 주기에 맞춰보면 이러한 형태는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평생에 걸쳐 납부해야 할 보험료를 시간 가치를 고려해 현재 시점으로 당긴 뒤에 평생에 걸쳐 균등하게 나눠서 납부하는 방식을 많이 채택한다.


  평준보험료라고 부르는 이러한 보험료는 자연스레 보험료 안에 시간가치에 연동되는 위험이 포함되게 한다. 아까와 같은 상황에서 올해 10만 원만 내면 충분하던 보험료는 미래에 위험률이 올라 더 많은 보험료를 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금 더 내는 형태로 15만 원이 될 수 있다. 그러면 늘어난 5만 원은 미래 시점의 보장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 돈 속에는 미래 시점의 금리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위험, 즉 금리 위험이 존재하게 된다. 재보험이 시간가치를 보장하지 못하고 순수한 보험 위험만을 다룰 수 있었다는 말은 15만 원 중에 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부분은 10만 원뿐이라는 뜻이다. 순수하게 사고가 발생할 확률과 그에 따라 지급되는 보험금에 대해서만 재보험에서 파생상품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재보험 계약에서도 금리 위험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시간가치의 변화에 따른 위험도 함께 인수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금융재보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할 재보험은 보험 위험만을 인수하는 고전적인 재보험이다.


  재보험이 사고가 발생할 확률과 그 사고로 인해 지급되는 보험금, 즉 순수한 보험위험만 다룰 수 있다고 하면 이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그 보험료와 보험금을 구조화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보험료와 보험금이라는 현금흐름을 구조화하는 방법은 재보험에서 크게 2가지로 나뉜다. 바로 비례(Proportional)와 비비례(Non-Proportional)이다. 이름만 들어도 약간의 직감이 갈 수 있다.


  비례 재보험은 보험료와 보험금이 비례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단순한 형태의 재보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재보험계약을 출재하는 원수보험사와 그 계약을 수재하는 재보험사가 서로 정해진 비율에 따라 보험료와 보험금 모두를 가져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출재사와 재보험사가 50%의 비례 재보험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면 그 대상이 되는 포트폴리오, 즉 수많은 보험 계약을 모아 놓은 포트폴리오가 하나 있다고 할 때 여기서 들어오는 보험료가 100만 원, 지출된 보험금이 80만 원이라고 하자. 이때 재보험사는 100만 원 중 절반인 50만 원의 보험료를 받고, 지출될 보험금 80만 원 중에서도 절반인 40만 원을 지급하게 된다. 또 출재사가 50%가 아닌 10%만 출재했다고 하면 보험료 10만 원과 보험금 8만 원이 재보험사에게 할당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출재사와 재보험사 입장에서 보험 계약의 실적을 나타내는 손해율(=보험금/보험료)은 동일하다. 즉 비례 재보험에서는 출재사와 재보험사가 비율에 따라 크기만 달라질 뿐 동일한 수준의 성과를 얻게 된다. 손해율의 관점에서 비례 재보험은 규모만 전이할 뿐 포트폴리오가 가진 성과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데, 출재사 입장에서는 더 많은 계약을 가지고 싶을 때 은행이 투자은행에 대출 계약의 현금흐름을 전가했던 것처럼 지금 가지고 있는 보험 계약의 현금흐름을 전가하고 더 많은 계약을 만들어 고객을 늘리려는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고, 혹은 비례 재보험을 통해 큰 사고가 나도 회사가 휘청이지 않을 정도로 위험의 총량 관리를 할 수도 있다.


  재보험사 입장에서는 원수사가 만들어 놓은 포트폴리오의 손해율이 안정적일 것이라고 생각되면 자본을 대서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 손해율 관점에서는 이렇듯 출재사와 재보험사가 언제나 같은 성적을 거두지만 수수료나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지출된 비용까지 고려하게 되면 비례 재보험에서도 두 회사의 성적은 달라질 수 있다. 보통 원수사는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보험설계사를 고용하고 그 외 다양한 채널의 운영, 홍보에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실제로 보험료를 산출할 때 이러한 비용의 지출을 감안해서 책정하게 되는데 재보험사는 이러한 비용의 지출 없이 보험료와 보험금만 비례로 떼어 간다면 출재사 입장에서 불리한 계약이라고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죽 쒀서 개 준다는 표현이 적절한 상황이다. 그래서 대개 재보험사는 출재사의 사업비 지출을 보전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재보험 수수료를 지급한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출재사 입장에서의 손익은 보험료 - 보험금 - 사업비 + 재보험수수료가 될 것이고 재보험사 입장에서의 손익은 보험료 - 보험금 - 재보험수수료가 될 것이다. 이렇게 서로 주고받는 수수료까지 고려한 손익을 보험료로 나눈 값은 합산비라고 부르는데, 결국 보험회사는 합산비가 100% 이하로 내려갔을 때 이익을 얻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실제로는 투자 수익이나 기타 자잘하게 나가는 비용까지를 고려해야 한다. 아무튼, 비례 재보험은 기초 자산의 보험료와 보험금이 비례하는 형태로 그 비율만 정하면 되는 간단한 파생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기초자산인 포트폴리오의 손해율이 어느 정도에서 결정될지를 추정하는 일이 재보험사에게 아주 어렵고 또 중요한 일이 된다.


  또 다른 재보험 계약의 구조는 비비례 재보험이다. 비례가 보험료, 보험금이 비례한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것이라면 비비례는 보험료와 보험금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비비례 재보험은 XOL이라는 용어로 많이 불리는데 Excess of Loss의 줄임말이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비비례 재보험은 무엇을 대상으로 삼냐에 따라서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특정 구간의 손해만 보상'하는 재보험계약이다. 하나하나의 개별 사고를 대상으로 하는 비비례 재보험 계약을 Risk XOL이라고 부르는데 어떤 화재보험 계약에서 10억의 보험금이 발생했고 그 계약에 대해 출재사가 재보험사와 한 계약은 5억 초과 3억의 Risk XOL일 때, 5억을 초과하는 손실에 대해서 3억까지 보상하게 된다. 즉, 10억의 사고에 대해서는 5억을 초과하고도 5억이 남아 있기 때문에 최대인 3억을 모두 보상해야 하는 것이다.


  XOL도 임계점을 초과하는 사고에 대해서 한도액까지 보상하는 형태라고 이해하면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러한 계약이 얼마의 가치를 가질 것인지 판단한다면 훨씬 더 복잡한 고민이 필요하다. 최대 10억을 지급해야 하는 보험 계약이 있다고 할 때 이 계약은 0 아니면 10억의 손실을 발생시키는 계약이라고 볼 수 없다. 건물도 화재가 나면 항상 모두 타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나. 10억짜리 건물의 사고 금액은 자잘한 경우가 많고 10억에 가까워질수록 그 비중은 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니 10억짜리 건물이 만들어내는 보험금이 10만 원이라고 할 때 보험금 1억당 1만 원의 보험료를 차지한다고 볼 수 없고 낮은 크기의 보험금이 더 많은 보험료 비중을 차지하며 위로 올라갈수록 밀도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5억 초과 3억의 재보험계약에 10만 원이라는 기초 계약의 보험료 중 얼마를 할당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고민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입계점이나 한도액을 바꾸게 되면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생각한다면 더 복잡해진다.


  결국 기초자산에 발생할 수 있는 손해가 0부터 10억이라고 할 때 이 구간에 만들어지는 손해액의 확률분포를 최대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특정 구간의 손실만 담보하는 XOL 계약의 보험료를 합리적으로 책정할 수 있다. 마치 하나하나의 계약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X-ray 촬영하듯이 그 너머의 분포까지 이해해야 하는 것이 XOL 계약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발생할 수 있는 손해액 구간에서 확률분포의 밀도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보험료와 보험금이 비례하지 않는다. 5억 초과 3억을 보상한다고 하면 총 10억 중에 3억을 보상할 수 있는 계약이지만 전체 보험료가 10만 원이라고 할 때 3만 원을 할당할 수 없는 것이다.


  비비례 재보험은 이렇듯 복잡하고 어렵지만 그래서 더 가치 있다. 보험이 금융이기 때문에 금융의 원칙인 'No risk, No return'을 벗어날 수 없다. 기초자산이 생명보험이나 건강보험과 같이 통계적 법칙이 잘 적용되는 종목이라면 이러한 종목에서 비례 재보험을 하기는 쉽지 않다. 애초에 통계가 잘 적용되기 때문에 위험이 많지 않고 출재사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위험 관리를 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굳이 출재해서 이익을 재보험사와 나누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기초자산이 안정적인 종목에서도 비비례 재보험 계약을 만들어내는 경우 없던 위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 위험에 대한 충분한 분석과 확신만 있다면 비비례 재보험 계약은 리스크가 적은 자산에서도 리스크를 창출하고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샘이 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보험을 할 때 흔히 놓치는 사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