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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ul 08. 2022

인플레이션과 보험

인플레이션은 보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금융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수준의 변화다. 변화 자체는 금융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다만, 그게 예상치를 벗어나고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수준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싫어할 뿐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예상치를 훌쩍 벗어나고 있는 변수가 하나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예상치 못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증권이나 투자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한 자료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보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편이다. 보험도 금융이기에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는다. 인플레이션이 보험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인플레이션은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눠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물가 상승'의 관점, 나머지 하나는 중앙은행이 중요하게 바라보는 변수로서 다른 거시경제변수를 조절하는 '기초 거시경제변수'의 관점이다. 관점이 두 가지로 나뉘는 만큼 그 영향도 두 가지 관점에 맞춰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물가 상승 자체로 보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면 생명이나 장기건강보험에서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가가 오르다 보니 같은 가입금액으로 보험에 가입했다고 하더라도 예전만큼 넉넉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전에는 암 치료비로 3,000만 원을 받으면 충분했는데 이제는 부족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물가가 많이 오르게 되면 가입자는 가입금액을 더 높여서 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물론 가입금액을 높이는 건 그만큼 보험료도 오르기 때문에 소비자에게는 선택이고, 보험사에게는 매출이 늘어나는 효과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화재, 해상보험과 같은 일반손해보험 영역에서는 물가 상승이 그 자체로 보험사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일반손해보험은 대개 '실손보상의 원칙'을 따르는데, 예를 들어 화재로 물건이 불에 타 버렸다면 그 물건을 원래대로 복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보상하게 된다. 이때 물가가 오르게 되면 물건을 다시 살 때 더 비싼 돈을 줘야 하고, 그게 고스란히 보험금에 반영된다. 그래서 일반손해보험은 예상치 못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면 예상보다 더 큰 보험금이 지출될 수 있고, 그 결과로 수익성이 악화된다.


정리해보면 물가 상승 관점에서는 생명이나 장기건강보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이들 보험은 정해진 금액을 보상하기로 약정하고 가입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물가가 오른다고 해도 예상보다 더 큰 보험금을 지출할 일이 없는 것이 그 이유다. 반면 정해진 금액을 보상하는 형태가 아니고 실제 발생한 손해를 보상하는 형태인 일반손해보험은 물가 상승에 따라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물가 상승보다 더 큰, 거시적인 관점의 경제 변수로서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자. 이때는 물가 상승이 아니라 물가 상승이 유발하는 금리 상승의 영향을 살펴야 한다. 모든 보험회사는 계약자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사용해서 투자를 하고 수익을 얻는다. 이 돈은 계약자에게 보험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돈이기 때문에 주식 같은 위험한 투자를 많이 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대개 보험회사는 채권에 투자하고 대부분의 자산이 채권으로 이루어져 있게 된다. 문제는 금리가 올라가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채권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채권 가치가 떨어지게 되면 그 자산으로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충분히 주지 못할 위험이 발생하게 되고, 이 정도가 심해지면 '지급여력비율'이 낮다는 이유로 감독기관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은 좀 더 자세히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항상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리가 상승하면 채권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맞지만 계약자에게 지급하게 될 미래의 보험금이 가진 현재가치도 마찬가지로 떨어지게 된다. 계약자에게 지급할 돈은 보험사의 부채이며 결과적으로 보험사는 금리가 상승하게 되면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 채권의 가치도, 보험 계약에 따른 부채의 가치도 모두 하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산 가치가 하락하더라도 부채가 그만큼 하락하게 되면 앞에서 이야기한 지급 여력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자산과 부채가 하락하는 '크기'가 다를 때 발생한다.


금리 변화에 따른 가치 변화의 크기는 '만기'가 얼마나 긴 지에 따라 결정되는데 일반손해보험의 만기는 짧은 반면 생명, 그리고 장기건강보험의 만기는 아주 길다. 100세 만기, 종신보험, 그리고 연금과 같이 만기가 사망할 시점까지인 상품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오히려 부채의 변화 크기가 더 큰 경우가 많고 이때는 금리 인상이 지급 여력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금리가 상승할 때는 생명이나 장기건강보험을 판매하는 회사보다 일반손해보험을 판매하는 회사가 지급여력 관점에서 더 불리한 위치에 있다.



다만 지금의 회계나 감독규정 상 한계로 인해 금리가 상승하는 국면에서도 생명, 장기건강보험을 판매한 회사가 지급여력비율에서 문제를 겪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자산은 시가로 평가하지만 보험부채는 원가로 평가하는 현행 제도 때문인데 금리가 인상됨에 따라 자산의 가치는 떨어지지만 보험부채는 원가로 평가한 상태에서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자산 가치 하락을 부채 가치 하락으로 메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산 가치 하락이 그대로 자본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가용자본의 감소로 인해 지급여력이 나빠지게 된다.


사실 부채도 시가로 평가하는 것이 맞고 곧 도입될 새로운 회계기준에 따르면 사라질 문제이기 때문에 보험회사로서는 현재 일시적으로 억울한 상황에 놓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감독기관도 이러한 점을 이해해서 완전히 시가는 아니지만 3개월 간격으로 부채를 재평가해서 부채 감소로 인해 남는 여유분을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인한 자본 감소분을 상쇄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잠시 정리해보면 물가 상승이 견인한 금리 인상의 영향은 '채권 자산과 보험 부채 모두의 감소'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때 자산과 부채가 변하는 '크기'가 보험사에게는 중요하며 자산과 부채 중 무엇의 만기가 더 긴 지 비교해서 회사에 미치는 영향의 방향이 정해진다. 그리고 자산의 만기가 더 길 때 금리 인상은 보험회사의 자본 적정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물론 금리 인상에 따른 영향을 '자본 적정성, 혹은 지급여력'의 관점에서만 바라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 적정성이 지금 당장, 현재 시점과 관련된 요소라면 앞으로, 미래 시점과 관련된 요소는 '수익성'이다. 물가 상승이 일반손해보험회사의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금리 인상도 보험사의 수익성에 또 다른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보험사 입장에서는 다행이게도 그 영향은 유리한 방향으로 일어난다. 이미 보유하고 있던 채권의 가치는 금리가 인상될 때 하락하지만 새로 구매하는, 즉 새로 투자해서 보유하는 채권은 높아진 금리에 따라 더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종합해보면 인플레이션이 견인하는 금리 인상은 사실 보험사, 특히 부채의 만기가 자산의 만기보다 더 긴 생명이나 장기건강보험을 판매하는 회사에 유리한 변화다. 부채의 만기가 더 길기 때문에 자산과 부채의 가치 하락에 따른 영향에서 부채의 감소 효과가 커 가용자본은 커지게 되고 수익성 관점에서도 금리 인상에 따라 앞으로 투자할 채권의 수익률은 높아진다.


다만, 생명이나 장기건강보험을 판매하는 회사에도 금리 인상이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는 있다. 금리가 올라가게 되면 높아진 금리에 맞춰서 앞으로 판매될 보험상품의 보험료도 조정하게 되는데, 보험상품도 채권과 유사하게 현금흐름을 길게 만드는 상품인 만큼 금리가 상승하게 되면 할인 효과가 커져서 보험료가 저렴해진다. 낮아진 보험료는 소비자, 즉 계약자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는데 같은 상품이라고 해도 고금리 시기에 가입하는 게 보험료가 더 싸기 때문에 기존 계약을 해지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게 된다. 보험회사는 보험료를 책정할 때 해지율도 가정한 상태에서 계산을 하는데 해지율이 예상보다 늘어나게 되면 손실을 볼 수 있다. 일반손해보험의 경우 1년이 대부분인 단기 상품이기 때문에 금리에 따라 보험료가 조정되지 않아 해지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만기가 긴 보험상품의 경우 이 영향이 생각보다 클 수 있다.



해지율 상승을 고려하더라도 사실 금리 인상은 보험사, 특히 장기보험을 판매하는 회사에 유리한 변화다. 금리 인상기에 금융회사는 대개 유리한 변화를 겪고 주가도 상승하는데 보험사도 마찬가지라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그 이유를 자세히 살펴본 것이다. 사실 보험사 입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저금리'이다. 금리가 낮아지게 되면 이 모든 현상이 반대로 일어나는데 부채의 만기 구조가 긴 장기보험 판매사들은 자본 적정성과 수익성에서 동시에 타격을 입게 되고, 부채 규모가 큰 보험사 특성상 그 영향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지금이야 금리가 상승하기 때문에 보험사의 걱정이 줄어들었지만 저금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기적인 추세였고 코로나19로 인해 극단적인 저금리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대부분의 보험사가 위험한 상태에 놓였다. 아마 지금처럼 금리가 올라가는 상황에서도 보험사들은 웃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저성장 시대에 금리는 낮은 수준으로 맞춰질 것이기 때문에 다시 도래할 저금리 환경에서 자본 적정성과 수익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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