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의 순서
자산 시장에 거품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었고, 그게 불가피한 것이었든 아니든 지금 와서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금융을 하고 투자를 할 때는 언제나 미래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정말 중요한 건 원인이 아니라 닥쳐올 결과다. 분명 전반적으로 봤을 때 거품이 사그라들고 있는 것은 맞지만 좀 더 쪼개서 봤을 때는 거품이 꺼지는 속도도, 시점도 다르다. 거품은 어떤 식으로 빠지게 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거품은 자산의 가격에서 '믿음'이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그리고 거래량이 많을수록 빠르게 꺼진다. 가상화폐가 이런 성질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데 가상화폐는 그 자체로 소유자에게 수입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기업을 소유하는 것과 가상화폐를 소유하는 것이 다른 점 중 하나는 기업을 소유하게 되면 배당을 통해 지속적인 수익을 낼 수 있지만 가상화폐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가상화폐의 가격이 올랐던 이유는 시중에 돈이 넘치는 상황에서 가상화폐가 가진 가능성 자체에 사람들이 믿음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개 금융시장에서 믿음은 순환을 가져온다. 그게 선순환이든 악순환이든 믿음은 순환고리로 이어지게 되는데 시장이 좋을 때는 선순환이 이어지지만 시장이 나빠지면 악순환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리고 악순환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거품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최근에 가상화폐의 가격이 하락하고, 일부 가상화폐는 가격이 순식간에 폭락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일은 가상화폐가 거품 붕괴에 가장 취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그다음 위험한 자산이 주식, 그중에서도 기술주로 대표되는 성장주다. 물론 주식은 기업을 소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윤을 내는 기업에게서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모든 주식이 그런 것은 아니다. 성장주의 경우 앞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지배력을 획득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미래의 수익, 미래의 가능성에 기대어 가격이 상승한 것이기 때문에 가격에서 믿음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은 편이다. PER은 가격에서 믿음이 차지하는 비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인데 주가와 실제로 버는 돈의 비율을 보여준다. 높으면 높을수록 그 주식의 가격에는 믿음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PER이 높은 주식의 거품이 더 빠르게 빠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성장주를 대표하는 기술주가 최근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가상화폐보다는 믿음에 기반하는 정도가 작지만, 그 외에서는 가장 큰 편이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주식, 특히 기술주의 순서대로 거품이 빠지고 나면 다음 순서는 부동산이다. 부동산은 가상화폐와 달리 수익을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는 자산이다. 월세를 주면 매달 수익을 얻을 수 있기도 하고, 전세를 주는 것도 목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일이다. 또 주식보다는 거래량이 적다는 면에서 나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일단 거품의 붕괴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 거래량은 증폭제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가격이 흔들릴 때 거래가 빠르고, 쉽다면 심리적인 요인이 맞물려서 빠르게 거품이 빠지게 된다. 그런데 거래 자체가 쉽지 않은, 유동성이 낮은 자산의 경우 조금의 흔들림이 있더라도 거래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흔들림이 증폭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임계점을 완전히 넘어가지 않는 한 흔들림은 반등에 대한 기대로 한 번쯤은 잡히게 된다.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 동안 흔들림, 반등에 대한 기대가 한 주기 반복되면서 붕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거래가 어려운 자산은 이러한 이유로 거품이 잘 빠지지 않는다.
물론 거품이 빠지는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유동성이 적은 부동산 같은 자산의 경우 임계점을 넘어서 거품이 빠지는 영역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되면 속절없이 빠지는 거품을 지켜봐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거래가 어렵기 때문에 일단 완전한 하락세가 되면 매물을 내놔도 사려는 사람이 없고, 매매가 일어나는 동안에도 가격의 하락이 지속되기 때문에 예정되어 있던 거래가 취소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부동산을 가진 경우에는 버블이 꺼질 때 탈출하지 못하고 버블의 끝을 봐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붕괴가 늦게 오지만, 한 번 오면 끝까지 탈출할 수 없는 게 부동산이 가진 성질이다.
우리는 지금껏 가상화폐, 그리고 주식의 거품이 빠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물론 아직 거품이 남아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거품은 하나의 자산에서 발생한 하락으로 완전히 꺼지지 않는다. 각 자산마다 순서대로 빠지고 전체 시장의 거품이 붕괴될 때 한 번 더 빠지는 경향이 있다. 일단 남은 것은 부동산이다. 부동산의 거품이 언제 붕괴될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수익도 만들어내고, 유동성도 적은 부동산이 가진 특성상 심리적인 요인만으로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부동산 거품의 붕괴는 보다 실질적인 것이 트리거가 되어 발생할 것이고, 그중 핵심이 대출금리다. 대출금리가 임계점을 넘어서 부동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보다 비용이 커졌을 때, 그리고 그 상태에서 커진 비용을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어졌을 때 붕괴가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붕괴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탈출 없는 붕괴, 그리고 모든 자산에 다시 한번 총제적인 붕괴를 가져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