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는 없다
금융 전반에 걸쳐 적용될 수 있는 법칙이 하나 있다면 그건 '세상에 공짜는 없다'일 것이다. 물론 한 가지 조건이 성립하면 세상에 공짜도 생길 수 있다. 그 조건은 '성장'이다. 여러 금융은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본질적으로는 파이 키우기와 파이 나눠먹기를 하고 있다. 금융의 순기능을 이야기하려면 파이 키우기를 보면 되고, 금융의 허무함을 이야기하려면 파이 나눠먹기를 이야기하면 된다.
파이 키우기란 경제를 키우는 일이다. 우리 경제가 생산할 수 있는 것, 우리 경제 전체가 가진 '부' 자체를 늘리는 것이 파이 키우기다. 그리고 금융은 분명히 파이 키우기에 도움을 준다. 근대 금융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돈은 돈이 필요한 곳으로 흘러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 돈은 물론 이타적인 목적보다는 더 많은 수익을 위해 흘러들어 갔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돈은 금융이라는 매개체를 타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흘러들어 갔고, 성장의 씨앗이 발아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고,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더 크고 효율적인 공장을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부는 세상에 분배되었다. 물론 처음 흘러들어 간 돈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이 더 많은 수익을 얻었지만 아무튼 파이는 커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 파이의 조각을 얻을 수 있었다. 경제성장은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무위험수익을 안겨주었다. 금융은 성장을 가능하게 하고, 성장은 다시 금융을 키운다. 공짜 점심도 먹을 수 있는 사회, 그건 금융의 순기능이다.
문제는 항상 금융의 순기능만 돋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결국 금융이 성장의 씨앗이 발아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순기능은 거기서 멈춘다. 파이는 커지지 않기에 남은 것은 이미 구워져 있는 파이를 내가 더 많이 먹는 것뿐이다. 이때부터는 금융을 바라보는 허무한 시선이 작동한다. '결국 머리 잘 쓰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는 수단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사실 금융이 경제를 키우지 못한다면 이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모든 금융이 그렇진 않더라도 성장이 없는 한 누군가가 수익을 얻으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그건 우리가 금융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만 그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 환경이 어려워지다 보면 사회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실업, 노후, 빈부격차, 그 외 수많은 복지 문제들이 우후죽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사회 문제는 그대로 방치하게 되면 커다란 갈등과 비용을 낳기에 정부, 정치인은 앞다퉈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는다. 세제 혜택, 보조금, 채무 변제 등 이름도 다르고 방식도 다르지만 결국 '돈'으로 이루어지는 방안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정책은 겉으로는 금융의 이름을 하고 있지 않아도 돈으로 이루어지는, 돈과 얽힌 일이라면 결국 금융의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돈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정책에 '공짜는 없다'. 누군가의 세금을 줄여 주는 일은 다른 사람의 비용을 키우는 것을 내포하고, 채무를 변제해주는 것은 리스크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일이다. 보조금은 굳이 고민할 것도 없다.
그러니 아무리 방법이 다르고 이름이 달라도 성장이 없는 사회에서 정책은 대개 '국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제로섬 게임'이다. 쓸 수 있는 물의 양은 정해져 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 있기에 직접적인 재정 지원보다는 저항을 덜 겪을 수 있다. 그러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파이를 키우지 못하는 한, 그건 파이를 뺏고 뺏기는 과정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