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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ug 15. 2022

IFRS17에 대해

1. 보험계약부채의 시가평가

몇 년 전부터 보험업계는 IFRS17 도입으로 시끄러웠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미루고 미뤄진 도입 시기는 이제 내년으로 정해졌고 준비가 어찌 되었든 IFRS17 회계원칙 하에서 보험회사는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공시하게 된다. IFRS는 국제회계기준이다. 국가별로 회계기준을 만들어 처리를 하고, 공시를 하다 보니 국가 간 서로 다른 회사를 비교하기에는 회계 원칙의 유불리가 존재했다. 그래서 국제회계기준을 만들었고 어느 정도 회계 처리의 준비가 된 국가들은 IFRS의 회계기준을 따르기 시작했다.


회계는 재무정보 이용자에게 회사의 재무상태에 대한 정보를 '잘' 제공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그 '잘'에 해당하는 한 가지 요소, 비교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IFRS 도입과 일관된 회계 기준 적용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이었다. 다른 업계가 차례대로 IFRS의 회계기준을 받아들인 뒤 보험이 가진 특성상 보험업은 조금 늦게 IFRS 회계기준이 만들어졌다.


보험이 가진 특성이라고 하면 '보험 부채'에 대한 것이다. 보험에 가입하면 우리는 바로 보험료를 납입한다. 그런데 이 보험료는 나의 보험기간 내 보장을 위해 보험회사에 맡겨두는 예금 같은 것이다. 그냥 돈을 주는 게 아니라 내 보험금을 위해 맡겨두는 형태다. 그러다 보니 보험회사가 받는 보험료는 '부채'다. 문제는 그렇다고 모든 보험료를 보험금이 될 돈이라고만 해버리면 보험회사는 수익이 없는 기업이 된다. 부채이긴 한데 부채의 크기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는다. 심지어 보험기간이 워낙 길다 보니 그 부채의 기간도 이루 말할 수 없이 길다.


뭐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보험계약부채'에 대한 회계기준은 조금 늦게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게 IFRS 제17권...이라 해야 할지, IFRS17이 되었다. IFRS17이라고 하면 보험회사에 적용하는 거구나 싶은데, 엄밀하게 말하면 보험회사의 '보험계약부채'에 적용하는 회계원칙이다. 보험회사의 대차대조표 상 차변에 있는 부채, 그중에서도 보험계약과 관련된 요소, 거기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IFRS17은 도입이 예고되는 시점부터 보험회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굳이 17이 아니더라도 IFRS는 모든 자산과 부채의 평가에 '시가평가'를 원칙으로 둔다. 자산이든 부채든 금융시장에 있는 모든 것들은 시시각각 가치가 변한다. 주식도, 채권도 그렇고 지급할 보험금도 그렇다. 그러니 재무정보를 '정확하게' 보여주려면 '평가시점 현재의 가치'를 기준으로 모든 것들을 평가해야 한다. 내가 주식을 10,000원에 샀다고 해도 지금 5,000원이 되었다면 내 자산은 5,000원인 게 맞지 않나, 지급할 보험금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100원을 주면 될 것 같았는데 주다 보니 110원을 줘야 할 것 같다면 110원으로 평가하는 게 맞다.


IFRS17 도입 이전에 보험계약부채는 '처음에 줘야 할 것 같았던 돈'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100원을 줄 것 같았다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든 계속 100원으로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17이 도입되면서 자연스럽게 보험계약부채도 시가평가를 하게 되는데 문제는 '지금 보니깐 줘야 할 돈'이 '처음에 줘야 할 것 같았던 돈'과 비교했을 때 너무 큰 차이가 난다는 데 있었다.


'아니 그래도 처음에 아무렇게나 측정한 게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차이가 벌어질 수 있나?'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보험은 그게 가능하다. 왜냐, '보험은 만기가 너무 긴 상품이기 때문에'


누군가 20대에 종신보험에 가입했다면 중도 해지하지 않는 한 그 상품의 만기는 그가 사망하는 시점까지다. 만기가 길다고 하는 채권도 길어 봐야 10년이 대부분이다. 주택담보대출의 만기가 그것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대개 주택담보대출은 만기 이전에 상환한다. 실질적인 만기는 그것보다 짧아진다. 그런데 보험계약은 중도 해지가 아닌 한 만기가 유지된다. 죽을 때까지, 혹은 80세 만기, 요즘은 100세 만기도 흔하다. 30년 이상은 거뜬히 보험계약이 유지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처음에 줘야 할 것 같았던 돈'은 10년, 20년 전에 예상된 금액이다. 아무리 숫자 감각이 뛰어나고, 통계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10년도 넘는 미래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다. 그 사이에 의료기술이 발전해서 사람들이 더 오래 살 수도 있고, 새로운 치료법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진단 기술이 좋아져서 발견하지 못하던 질병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것뿐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가장 타격이 큰 건 '금리의 변화'였다.


보험도 은행에 예금을 넣듯이 내 보험금을 받기 위해 보험회사에 돈을 맡겨 두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은행은 돈을 넣어두면 작지만 이자를 붙여준다. 그러다 보니 보험사도 마냥 보험금만 준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보험료에 이자를 붙여서 주겠다는 약속은 해야 사람들이 보험에 가입했다. '어 나는 보험 가입할 때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약관을 잘 살펴보면 '예정이율'이라는 게 있다. 그게 보험료에 붙여 주는 이자다. 당신에게 직접 이자를 주지 않아도 그 이자만큼 저렴한 보험료를 내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튼, 그래서 보험사도 이자를 주기로 했다. 얼마나 오래?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런데 보험사는 계약자에게 '만기까지 이만큼의 이자를 주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해뒀지만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했다. 20년 전만 해도 거의 경제가 활발히 성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에 맞춰 시중금리도 거의 두 자릿수에 달했다. 경제 전체의 파이가 그 이상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 이자를 주는 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때는 그랬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경제성장률은 빠르게 더뎌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시중금리도 낮아졌다. 시중금리가 낮아진다는 건 전체적인 금융시장의 투자수익률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바닥이 꺼지는데 그 위에 서있는 것들이 높아질 리가 없다. 그래서 보험사는 계약자에게 받은 보험료를 투자해서 두 자릿수의 수익률을 얻을 만한 투자처를 더 이상 찾지 못했다. 그런데 계약자와는 굳게 약속을 했다. '이 금리로 이자를 주겠습니다. 만기까지'. 돈은 빌렸는데 이자만큼의 투자수익률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5%로 이자를 주기로 했는데 투자수익은 3%라고 하면 2%는 고스란히 내 지갑에서 나가야 한다. 보험회사는 그런 상황에 놓였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가 될까? 준다고 약속했고, 그만큼 벌지 못하면 손실을 보는 건 당연하다. 그게 17과 무슨 상관일까? 17이 아니더라도 그건 손실을 봐야 하는 게 맞지 않나?


맞다. 준다고 했는데 벌지 못하면 손실을 기록하는 건 당연하다. 17이 들어오면서 보험회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17이 '앞으로 줘야 할 것, 그리고 앞으로 벌 것까지 지금 한꺼번에 계산해'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17은 부채를 평가할 때 '그 계약이 실질적으로 끝나는 시기'까지 한꺼번에 평가하도록 한다. 17이 도입되기 이전에도 예정이율과 투자수익률 차이에 해당하는 금액은 보험회사가 매년 손실로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데 17은 그 계약의 만기까지 볼 손실을 미리 기록해두라고 한다. 그리고 말했듯이 보험계약의 만기는 어마어마하게 길다. 앞으로 수년, 수십 년 동안 금리차로 보게 될 손실을 17이 도입되면 일순간에 기록해야 한다. 금리는 딱히 다시 예전 수준으로 올라갈 것 같지 않다.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게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아무튼, 금리차로 인한 손실을 한 번에 기록한다고 하면 IFRS17이 도입되는 시점에 보험회사의 손익계산서는 말 그대로 '작살이 난다'. 물론 '고금리 종신보험'을 상대적으로 덜 팔았던 회사는 생각보다 타격이 적을 수도 있다. 구체적인 수치는 회사마다 다르다. 아마 오랫동안 영업을 했고, 과거에 외형을 확 키웠던 생명보험 회사일 수록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겠다... 정도의 예상을 할 뿐이다. 손익계산서가 작살이 나고, 순이익이 흔들리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재무정보는 재무정보 이용자를 위해 제공되는 것이다. 재무정보 이용자가 누구냐 하면, 투자자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다. 작년까지 안정적으로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던 회사가 회계기준을 바꿨을 뿐인데 갑자기 엄청난 손실을 기록해버린다. 주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험회사가 도입 이전에 최대한 그 충격을 줄이기 위해 만기가 긴, 고금리 상품의 비중을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IFRS17이 도입되면 만기가 긴 상품을 판매했던 보험회사가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다고 하니 '회계기준이 바뀌었을 뿐인데 없었던 손실이 생겼네?'라는 오해를 할 수 있다. 그건 아니다.


회계는 없었던 돈을 만들고, 있었던 돈을 없애는 그런 학문이 아니다. 재무정보를 '잘' 표시하기 위한 학문이다. 회계를 다시 했는데 있었던 돈이 없어진다? 그건 애초에 분식이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지만 회계는 수익을 창조하거나 없애는 일을 하지 않는다. 다만 표시할 뿐이다.


기존 회계는 보험계약부채를 시가, 즉 현재 시점의 가치로 평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걸 17이 현재 시점의 가치로 만기까지 평가하다 보니 손실을 볼 것 같다면 한꺼번에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기존 회계에서는 금리차가 발생하면 예상 대비 더 나간 돈을 매년 그때그때 손실로 기록했다. 마치 현금주의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지갑에서 더 꺼내간 만큼만 그 해에 기록한다. 17은 일단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의 영향을 한꺼번에 측정한다. 발생주의 같은 개념이다. 매년 10원씩 3년 동안 돈이 나갈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두 번째 해가 되기 전 금리가 달라져서 2년 동안은 15원씩 나가게 되었다고 해보자. 기존 회계는 오늘만 사는 느낌으로 처리한다. 그러니 두 번째 해에 10원이 나가야 하는데 15원을 빼갔네? 하고 5원을 손실로 기록한다. 그리고 세 번째 해에도 5원을 손실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17에서는 두 번째 해에 세 번째 해의 예상치 변경에 따른 5원까지 한꺼번에 처리한다. 그러니 두 번째 해에 10원의 손실을 기록한다. 전체 손실이 10원인 건 두 방법에 변함이 없다. 회계가 크기를 달라지게 만들지는 않는다. '언제,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할 뿐이다.


그럼 '언제,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왜 17의 방식이 더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그게 재무정보 이용자에게 더 정확한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 10원의 손실이 생긴 이유는 '금리가 달라져서'이다. 그러면 금리는 언제 달라졌나? 두 번째 해에 달라지 것이다. 10원의 손실을 만든 이벤트는 두 번째 해에 발생했다. 회계는 대체로 발생주의에 따르고, 이벤트가 발생해서 뭔가 달라졌다면 그게 발생한 해에 기록하는 게 맞다. 그래서 17의 방식이 더 옳다고 하는 것이다. 기존 방식대로 매년 오늘만 사는 식으로 처리하다 보면 지금 기록된 손실, 혹은 이익이 도대체 언제 발생한 일 때문인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올해 이익을 봤는데 왜 이익을 본 것인지 설명할 수 없고, 올해 손실을 봐도 왜 손실을 본 것인지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만기까지 한꺼번에 시가평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보험계약부채 평가에 곧 도입될 IFRS17의 한 가지 개념을 이야기했다. 바로 '부채의 시가평가'다. 그리고 왜 그걸 대부분의 보험회사가 걱정했었는지도 이야기했다. 당연히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하는 것인 만큼 시가평가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지금껏 시가평가 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시가평가를 할 때 '낮아진 금리, 보험부채의 긴 만기' 이 두 가지를 고려하게 되면 엄청난 손실을 일시에 계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계기준의 변경이 손실을 만든 것은 아니다. 이미 금리가 낮아진 순간 손실은 예정되어 있었다. 회계기준의 변경은 그걸 오늘만 사는 식으로 계산서에 달 지, 아니면 금리가 낮아진 순간 한꺼번에 계산서에 달 지, 그걸 결정할 뿐이다.


물론 17의 핵심적인 개념이 보험계약부채의 시가평가에만 있지는 않다. 또 다른 하나는 수익을 인식하는 방법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다음 글에서 따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너무 길어지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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