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보험 서비스의 수익인식
보험계약부채 평가에 곧 도입될 국제회계기준, IFRS17의 핵심 개념 중 '시가평가' 개념과 이에 따른 장기, 생명보험회사의 걱정거리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이번에는 17의 또 다른 핵심 개념, '수익인식'에 대해 알아본다.
일단 수익인식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재화와 서비스'의 구분부터 해야 한다. 보험은 재화일까 서비스일까? 아마 답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보험은 보험기간 내에 계약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다. 식품, 가구, 전자제품과 같은 재화와 성질이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하면, 재화는 물건을 산 사람에게 인도되면 판매가 완료된 것이다. 그러니 인도되었을 때 그 재화를 팔아서 번 수익을 인식할 수 있다. 컴퓨터를 팔았으면 컴퓨터를 소비자에게 넘기고 돈을 받은 순간 그 돈이 수익으로 기록되는 것이다.
그런데 서비스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언제 서비스의 판매가 완료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계약을 한 시점에 판매가 되었다고 보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다. 만기가 30년이 넘는 보험계약을 팔았는데 일시납으로 어마어마한 보험료를 받았다고 하면 그 어마어마한 보험료는 30년 치 서비스에 해당하는 몫이다. 그걸 계약서에 사인하는 시점에 모두 다 팔았다고 볼 수 없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만큼 남아있지 않은가?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회계는 없는 것을 만들거나, 있는 것을 없애는 학문이 아니다. '어떻게 표시하는 것이 재무정보 이용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가?'를 공부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회계는 서비스의 성질에 맞춰 서비스에 적용되는 수익인식의 원칙을 만들었다. 바로 '돈을 미리 받더라도 수익은 서비스가 제공되는 정도에 따라 인식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보험은 IFRS17 도입 이전까지 이 원칙을 애매하게 적용하고 있었는데 17 이후에는 철저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익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우선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수익은 수익대로, 비용은 비용대로 인식하고 있다'가 핵심이다. 보험에서 수익은 보험료가 만들고 비용은 보험금이 만든다. 보험이라는 하나의 서비스에서 보험금이라는 비용이 나가고, 보험료라는 수익이 발생한다. 서로 대응되는 항목이라는 뜻이다.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회계에서는 이걸 '수익-비용 대응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맞물려 있는 녀석들의 수익과 비용이 대응되어 있어야 어떤 사업에서 얼마나 수익을 얻었고 비용을 냈는지 잘 구분해서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서로 대응되어 있지 않은 것들이 섞여 있다면 돈을 벌어도 보험에서 돈을 번 것인지, 투자를 잘해서 돈을 번 것인지 알 재간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보험료는 일단 받으면 보험료 나름의 원칙에 맞춰서, 대개 보험기간에 걸쳐 비례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으로 인식한다. 쉽게 말해 120원을 받고 1년 동안 보장을 제공하는 보험이었으면 매월 10원씩 수익을 인식하고 있었다. 서비스를 제공함에 따라 '애매하게' 수익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게 이런 이유에서였다. 나름 보험기간에 걸쳐 수익을 인식하긴 한다. 그런데 보험이라는 서비스는 기간에 비례해서 제공되지 않는다. 보험 서비스의 핵심은 '보험금'이다. 보험금이 나가는 시점에 맞춰서 인식하는 게 가장 좋다. 1년 동안 보장을 제공할 때 보험금이 매월 동일한 금액만큼 나가고 있었다면 보험료도 10원씩 인식하는 게 맞다. 하지만 보험금은 대체로 그렇게 일정한 패턴을 보이며 지출되지 않는다. 그래서 수익과 비용이 대응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보험료는 보험료대로 '모르겠고 일단 기간에 균등하게 뿌려놓을게'라고 이야기하며 수익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면 비용인 보험금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었을까? 보험금은 단순하다. 실제로 나가는 돈이기 때문에 사고가 나고 나갈 돈이 발생했으면 그때그때 비용으로 처리했다. 그런데 보험금 지급사유는 대체로 조금 늦게 발생하는 편이다. 보험에 가입하자마자 사고가 나는 경우보다 잘 지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보험료는 보험료대로 기간에 비례하는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고, 보험금은 나갈 때마다 기록하는데 조금 늦게 나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둘은 하나의 보험상품에서 만들어지는 수익과 비용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보험계약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비용의 속도가 다르다. 수익이 더 먼저 인식되고, 비용은 나중에 청구된다. 수익-비용 대응에 '시차'가 있었다.
그동안 보험사는 이 '시차'를 많이 겪어왔다. 어떻게 겪어왔냐 하면, 어떤 보험상품이 초기에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낸다. 들어오는 보험료가 거의 다 수익으로 인식되고 보험금 지출은 상대적으로 훨씬 덜 발생한다. 당 회기의 순이익은 쑥쑥 높아지고 마치 보험사가 수익성 좋은 보험을 판매한 것처럼 보인다. 재무비율도 다 좋다. 그런데 몇 년 지나고 보니 수익이 좋았던 그 보험상품에서 갑자기 엄청난 손실을 보기 시작한다. 왜 그런지 봤더니, 초기에 보험료가 빠르게 수익으로 인식되면서 보험료는 이미 과거에 다 수익인식이 끝났는데 이제 와서 보험금 지출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의 보험상품의 만기 내에 수익, 비용의 불균형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면 안 되는 게, 어느 해에 보험사의 수익이 확 줄었는데 '왜 줄었어?'라고 물어보니 몇 년 전에 팔았던 상품의 보험금이 이제 나가고 있어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건 재무정보 이용자에게 혼란을 줄 뿐이다.
심지어 보험사도 이런 '시차'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그동안 잘 이용하기도 했었다. 보험료가 보험금보다 인식될 때 여기에 한 가지 가정만 덧붙였을 때 보험사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바로 '매출 성장'이다. 일단 과거에 팔았던 상품이 당시에 엄청난 수익을 준다. 그리고 그 상품이 이제 와서 사고를 치려고 할 때, 더 많은 신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면 이번에 체결한 신계약에서 빠르게 보험료가 수익으로 먼저 인식된다. 보험사의 매출은 보험료다. 매출 성장을 했다는 건 보험 계약을 더 많이 찍었다는 뜻이고, 과거에 찍었던 상품의 보험금이 이제 나간다고 해도 더 큰 규모의 보험료를 인식시켜버리면 티가 나지 않는다. 쉽게 말해 '물 타기'다. 물론 이번에 더 크게 찍어 놓은 보험료가 더 뒤에 가서 더 큰 보험금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매출을 더 키울 수만 있다면 같은 방식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이런 방식은 재무정보 이용자에게도 혼란을 준다. 실제로 그 상품을 팔아서 번 돈이 얼마인지 알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영도 근시안적으로 하게 만든다. 경영자 입장에서 임기가 2년 남짓인데 보험상품의 만기가 그것보다 훨씬 길다. 내가 자리에 앉았는데 과거에 내가 경영자가 아닐 때 팔렸던 상품의 보험금이 이제 와서 마구 쏟아지고 있다. 까딱 잘못하면 당기손실을 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경영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물타기뿐이다. 서로 짧은 임기 내에 계속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더 이상 예전보다 더 많은 물을 타지 못하게 될 때, 매출 성장이 끝나는 순간 그 폭탄은 터진다.
만기가 1년인 단기보험상품 위주로 매출이 구성되는 재보험사의 경우 이러한 특징이 더 두드러진다. 초기에 보험료가 수익으로 인식되고 나중에 보험금이 쭉쭉 빠지는 현상이 1년 이내에 걸쳐서 드러나게 된다. 그러니 재보험사의 재무제표를 매월 보다 보면 연초에 하늘을 뚫을 것만 같은 실적을 보이다가 연말로 갈수록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수익은 다 사라지고 손실을 보거나, 아주 작은 보험영업이익만 남기는 경우가 많다. 이 모든 문제가 다 보험료와 보험금이 대응되지 않아서, 거기에 시차가 존재해서 발생하는 문제였다.
그러면 17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일단 보험료와 보험금을 하나로 똘똘 말아야 한다. 각자 인식되도록 두면 안된다. 그래서 17은 보험료를 받으면 일단 그 보험료를 잘 쪼갠 뒤에 보험금으로 나갈 돈이라는 딱지를 붙여 놓게 만든다. 이전에는 100원을 받았으면 100원은 보험기간 동안 제 갈 길 가고 반대편에서 보험금은 생길 때마다 비용으로 기록됐는데, 이제는 100원을 받았으면 100원을 보험금에 미리 할당해둬야 한다. 100원 중 70원은 '웬만하면 보험금으로 나갈 돈', 20원은 '재수 없으면 보험금으로 더 나갈 돈', 나머지 10원은 '아마도 이익으로 남을 돈', 이런 식으로 잘 나눠서 이 돈을 빚으로 기록한다. '100원 받았으니깐 천천히 수익으로 인식해야지'가 아니라 '100원 받았으니 일단 이름표 잘 달아서 빚으로 기록해두자'가 된다. 그리고 보험기간에 걸쳐 보험금을 실제로 주다 보면 미리 이름을 달아 둔 70원이 실제로 나가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게 '70원이라는 빚이 보험금 지급에 따라 사라진다'는 점이다. 돈을 줬으니 부채는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부채의 감소는 '수익'이다. 70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하고 나면 부채가 70원 감소하고, 그게 그대로 수익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보험금 지급에 따라, 즉 서비스 제공에 따라 수익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구조로 보면 이렇게 바뀐 것이다. 지금까지는 수익과 비용을 계산하기 위해 돈이 나가고 들어오는 대로 수익과 비용을 계산했다. 그런데 17에서는 수익과 비용을 계산하기 위해 '재무상태표(B/S)'를 만든다. 매 시점마다 재무상태를 확인해서 가지고 있는 부채를 확인하고 '부채의 증가와 감소'로 수익과 비용을 인식하는 것이다. 부채의 증가는 비용이 될 것이고, 부채의 감소는 수익이 된다. 손익계산서에서 시작하던 회계를 재무상태표에서 시작해서 재무상태의 변화량을 손익계산서에 인식하는 순서가 된다.
이렇게 하고 나면 예상된 보험금이 지출될 때 수익이 인식되기 때문에 수익-비용 대응의 문제도 해결되고, 받은 보험료에 미리 나갈 돈과 나갈 시기를 정해서 이름표를 붙여두기 때문에 어느 순간 비용이 확 늘어나서 이익이 들쭉날쭉해지는 현상도 완만해진다. 물론 예상을 완전히 엎어버릴 정도의 사고가 발생해서 이름표를 미리 붙여둔 게 무색할 정도의 돈이 나가면 이익이 흔들릴 수도 있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나갈 때마다 기록하는 방식은 아니라 충격이 완만해진다. 무슨 차이인지 애매하게 들린다면 70원을 생각하면 된다. 사고가 나서 70원의 보험금이 지출됐을 때 과거의 회계에서는 아무 대응 없이 갑자기 -70의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지만 17에서는 미리 부채로 잡아뒀던 70이 나가는 것이다.
결국 손익계산서 상 비용으로 70이 찍히는 건 맞다. 누누이 말하지만 회계는 숫자 자체를 만들거나 지우지 않는다. 다만, 재무상태표에 70을 부채로 기록해뒀던 회사와 그렇지 않았던 회사는 재무상태표의 안정성에서 차이가 난다. 잡아놨던 부채가 사라지는 회사와 갑자기 비용이 발생해서 자본을 깎아먹는 회사는 전혀 다른 재무정보를 주게 된다.
풀어서 이야기했는데 용어만 다시 바로잡으면 이렇게 보험료를 받았을 때 이름표를 붙여서 빚으로 달아두는 방식을 BBA방식이라고 한다. Building Block Approach라고 하는데 아까 '웬만하면 보험금으로 나갈 돈', '재수 없으면 보험금으로 더 나갈 돈', '아마도 이익으로 남을 돈'의 3가지 블록으로 보험료를 나눠 놓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각각 최선추정부채(BEL), 위험조정(RA), 계약서비스마진(CSM)이라는 정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