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소믈리에 Ep. 4]
아들의 인생은 당신의 '부케'가 아닙니다.
부제: 20살 아들의 수강 신청 버튼을 대신 누르는 50대 매니저에게
(딸랑-. 문이 열리자마자 갓 지은 밥 냄새와 고급 향수 냄새가 묘하게 섞여 들어온다.
우아한 스카프를 두른 50대 여성 손님. 자리에 앉자마자 스마트폰의 '위치 추적 앱'을 습관적으로 확인한다.)
어서 오십시오. 아주 고상하고 헌신적인 어머니의 향기가 나는군요.
하지만 그 스카프 아래 감춰진 목선이 잔뜩 긴장되어 보입니다.
자신의 인생보다 타인의 인생을 더 신경 쓰느라 본인의 맥박을 잊어버린 분 같군요.
#1. 손님의 증상
"소믈리에님,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저는 유별난 엄마가 아니에요. 요즘 애들이 워낙 사회성이 부족하잖아요.
우리 아들이 이번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글쎄 전공 필수 과목에서 C+을 받아온 거예요.
애가 너무 상처받았길래, 제가 너무 속상해서. 교수님을 좀 찾아갔죠.
따지러 간 게 아니에요! 그냥 우리 애가 낯을 좀 가려서 발표를 못 했을 뿐이지, 집에서는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설명'드리러 간 거죠. 음료수 한 박스 사 들고요.
그런데 아들이 그걸 알더니 '엄마 미쳤어? 제발 내 인생에서 좀 꺼져!'라며 방문을 걸어 잠그더라고요.
제가 간섭하는 게 아니에요. 돕는 거지.
지난주엔 친구들이랑 강릉 여행 간다길래, 혹시 숙소 더러울까 봐 제가 아는 리조트 예약해 주고, 펜션 사장님한테 전화해서 '우리 애들이 술을 잘 못 마시니까 바비큐 숯불은 위험하지 않게 피워달라'라고 딱 한 통화 부탁한 거거든요?
그런데 아들이 저를 차단했지 뭐예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아직 걔는 제 눈엔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인데, 엄마로서 그 정도 안전장치도 못 해줍니까?“
#2. 소믈리에의 진단
(손님의 스마트폰 화면에 떠 있는 아들의 실시간 위치 좌표를 힐끔 보고는 고개를 젓는다.)
어머님, 교수님을 찾아가셨다고요? 그건 아들을 도운 게 아니라, 아들의 사회적 자살을 도우신 겁니다.
당신은 아들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아들을 케어하는 유능한 나'에 심취해 있는 겁니다.
당신의 진단명은 [대리 인생 경영에 의한 자아 위탁 증후군]
(Vicarious Life Management & Self-Entrustment Syndrome)입니다.
쉽게 말해 '매니저 병'입니다.
아들이 성인이 되었다는 건, 회사의 CEO가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이제 경영권은 아들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은퇴를 거부하고, "새 CEO(아들)는 무능하니까 내가 결재 서류를 대신 꾸며줘야 해"라며 사장실을 점거하고 있는 '구시대 비서실장'과 같습니다.
아들이 방문을 잠근 건 반항이 아닙니다. 부당 해고에 대한 노동자의 파업이자, 경영권 방어입니다.
#3. 테이스팅 노트
이 증후군의 맛은, 처음엔 달콤한 모성애 같지만, 끝 맛은 숨 막히는 올가미 맛입니다.
당신은 아들의 '실패할 권리'를 뺏고 있습니다.
C+을 받고 재수강을 하는 것도 아들의 권리입니다.
싸구려 펜션에서 숯불 피우다 고기를 다 태워 먹는 것도 아들의 추억입니다.
당신이 교수님을 찾아가고 펜션 사장님께 전화하는 순간, 아들은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동기들 사이에서 '마마보이'라는 낙인을 얻게 됩니다. 당신은 '안전장치'를 설치한 게 아니라, 아들의 발목에 '쪽팔림'이라는 족쇄를 채운 겁니다.
솔직해지십시오. 아들이 걱정되는 게 아니라, 아들이 당신의 손을 떠나면 당신의 인생이 텅 비어버릴까 봐, 그게 두려운 것 아닙니까?
#4. 오늘의 처방
당신의 텅 빈 마음과 아들의 독립을 위한 강력한 처방입니다.
아들이 F 학점을 받아오든, 술 먹고 길바닥에서 자든, 개입하지 말고 그냥 '관람'하십시오.
교수님께 전화하고 싶은 손가락을 묶어두십시오. 아들이 망하는 꼴을 지켜보는 인내심이야말로,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진짜 모성애입니다.
친구들을 만났을 때 "우리 아들이 이번에…."으로 시작하는 말을 금지합니다.
대신 "내가 요즘…."으로 시작하는 대화를 하십시오.
아들의 스펙이 당신의 성적표가 아닙니다. 아들은 아들, 당신은 당신입니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10년 뒤 며느리 될 사람에게 전화해서 "우리 애는 아침에 꼭 사과를 깎아 먹여야 쾌변한다"라고 말하는 최악의 시어머니가 될 것입니다.
그 꼴을 면하고 싶다면, 당장 그 위치 추적 앱부터 삭제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