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피디아

<반쪼가리 자작>: '완벽한 선(善)'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폭력

by 린나이


"악(Evil)만이 우리를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지나친 선(Good)은 우리를 질식시킨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반쪼가리 자작>에서 주인공 메다르도는 전쟁 중 포탄을 맞고 정확히 반으로 쪼개진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다. 한쪽은 순수한 '악'의 덩어리로, 다른 한쪽은 순수한 '선'의 덩어리로 나뉘어 살아간다. 나는 당연히 '선한 반쪽'이 마을을 구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당혹감을 느꼈고, 이내 부끄러워졌다. 그 숨 막히는 '선함'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1. 도덕적 결벽증이 만든 지옥




악한 반쪽은 눈에 보이는 폭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선한 반쪽은 '도덕'이라는 무기로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한다. 그는 끊임없이 훈계하고, 타인의 사소한 비도덕을 참지 못하며, 가난한 나병 환자들에게조차 엄격한 절제를 강요한다. 그의 곁에 있으면 사람들은 숨이 막힌다. 그 '무결점'이 타인을 끊임없이 '유죄'로 만들기 때문이다. 문득 나의 '도덕적 결벽증'을 돌아본다. 나는 정의롭고자 했던 것일까, 아니면 나의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하기 위해 타인을 재단했던 것일까.




2.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이 소설은 일전에 읽은 책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이 도덕적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타인에게 가혹해질 수 있다는 역설. 소설 속 선한 반쪽이 만드는 세상은 결코 평화롭지 않다.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그의 정의는 배려가 아니라 독선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갈등은 '악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절대 선'이라 믿는 사람들의 타협 없는 전쟁 때문이 아닐까.




3. 우리는 모두 '반쪼가리'다




결말에서 두 반쪽은 다시 봉합된다. 온전한 인간이 된 메다르도는 말 한다. "반쪽이었을 때 나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이해한다고 믿었지만, 그건 오만이었다." 상처 입어보고, 비열해져 보고, 실수해 본 사람만이 타인의 상처를 진짜로 이해할 수 있다. 선과 악, 이성과 욕망이 뒤섞인 불완전한 상태. 그것이 진짜 '인간'이다. 이제 나는 나의 도덕적 결벽을 조금 내려놓으려 한다. 조금 때 묻고, 가끔은 실수하는 내 모습이 오히려 누군가에게 숨 쉴 틈을 줄 수 있음을 인정하며.





Editor's Note




완벽한 선은 비인간적이다. 작가로서 내가 그려야 할 인물들도 그래야 한다. 도덕 교과서 같은 캐릭터는 매력 없다. 욕망 앞에서 흔들리고, 자신의 위선에 괴로워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그런 사람들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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