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소믈리에 Ep. 6]
내 책상은 더러운 게 아닙니다. '전개'된 것입니다.
부제: 책상 정리를 거부하는 40대 과장님에게
(딸랑-. 문이 열리자 진한 에스프레소 향과 종이 냄새가 훅 끼쳐 들어온다.
세련된 정장 차림의 40대 여성 손님. 한 손에는 서류 뭉치를, 다른 한 손에는 태블릿을 들고 바쁘게 들어와 앉는다.)
어서 오십시오. 아주 역동적이고 바쁜 에너지의 소유자시군요.
그런데 손님, 겉모습은 완벽한 전문직 여성인데 주변에서 자꾸 "청소 좀 해라"라는 잔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이. 아, 환청이 아니군요?
#1. 손님의 증상
"소믈리에님, 억울해서 왔어요. 제 사무실 책상 말이에요. 남들이 보면 폭탄 맞은 줄 알아요.
서류 더미는 산처럼 쌓여있고, 펜은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포스트잇은 부적처럼 붙어있죠.
신입 사원들이 제 자리를 지나갈 때마다 흠칫 놀라요.
어떤 착한 후배는 '과장님, 제가 좀 치워드릴까요?'라며 제 서류 더미에 손을 대려 하더군요.
제가 기겁해서 소리쳤죠. '안 돼! 만지지 마! 거기 놔둬야 찾을 수 있어!'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해요. 저는 그 혼돈 속에서 문서를 1초 만에 찾거든요?
왼쪽 탑 세 번째 층은 '급한 결재', 모니터 아래 깔린 건 '참고 자료', 텀블러 뒤에 구겨진 종이는 '중요 메모'예요.
제 나름의 완벽한 '공간 좌표'가 있는데, 왜 다들 저보고 정리 못 하는 무능한 사람 취급할까요? “
#2. 소믈리에의 진단
(손님이 내려놓은 서류 뭉치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걸 보며 미소 짓는다.)
과장님, 당신은 정리 못 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은 남들보다 '시각적 처리 능력'이 뛰어난 겁니다.
당신의 진단명은 [혼돈 기반 직관적 아카이빙 증후군]
(Chaos-Based Intuitive Archiving Syndrome)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문서를 폴더에 넣어야 찾지만, 당신은 문서를 공간에 배치해야 찾습니다.
마치 컴퓨터 바탕화면에 아이콘을 잔뜩 깔아 두는 것과 같죠.
남들 눈엔 '난장판'이지만, 당신 뇌 속에서는 '초고해상도 3D 지도'가 펼쳐져 있는 겁니다.
당신의 책상은 더러운 게 아닙니다.
업무의 효율을 위해 모든 데이터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펼쳐' 놓은 상태일 뿐입니다.
#3. 테이스팅 노트
이 증후군의 맛은, 비빔밥 같습니다. 섞여 있지만 맛은 기가 막히죠.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드릴까요?
책상이 모델하우스처럼 깨끗한 사람 중 일부는, '일하는 시간'보다 '정리하는 시간'을 더 많이 씁니다.
그들은 문서를 예쁘게 파일철에 꽂느라 에너지를 쓰지만, 당신은 그 문서를 휙 던져놓고 바로 다음 일을 처리하죠.
당신의 서류 더미는 '지층'과 같습니다.
맨 위에 있는 건 '방금 한 일', 맨 아래 깔린 건 '작년에 한 일'.
이보다 더 직관적이고 과학적인 분류법이 어디 있습니까?
당신이 후배의 손길을 거부한 건, 당신의 '데이터베이스'가 훼손되는 걸 막기 위한 정당한 보안 조치였습니다.
#4. 오늘의 처방
당신의 위대한 혼돈을 사수하기 위한 처방입니다.
책상 앞에 당당하게 안내문을 붙이십시오.
[경고: 현재 고도의 데이터 처리 중입니다. 위치를 옮기면 시스템 오류가 발생합니다.]
청소하려는 후배에게 죄책감을 주십시오.
누가 "왜 이렇게 쌓아뒀어요?"라고 물으면, 우아하게 대답하십시오.
"아, 저는 '수직적 분류'보다 '수평적 나열'이 창의력에 도움 돼서요. 스티브 잡스도 그랬다던데?"
종이는 아무리 쌓아도 '자료'지만, 먹다 남은 샌드위치가 섞이는 순간 그건 '쓰레기장'이 됩니다.
음식만 치우십시오. 서류는 당신의 영토입니다. 마음껏 어지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