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 읽다 덮은 책이 소환한, 그 시절 나의 '빨간 마스크'
"너무 무서워서 책을 덮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졌다."
솔직히 고백한다.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일본의 오컬트 미스터리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소설이라기보다, 저주받은 문서 뭉치에 가깝다. 인터뷰, 잡지 기사, 인터넷 댓글 형식을 빌린 '모큐멘터리' 기법은 허구인 걸 알면서도 독자의 등 뒤를 서늘하게 만든다. 그 끈적하고 찝찝한 기분을 견딜 수 없어 결국 중간에 책을 덮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오늘 이 '실패한 독서'에 대해 쓰려한다. 이 책이 내 안의 봉인된 기억, 가장 뜨겁게 이야기에 몰입했던 '그 시절의 나'를 깨웠기 때문이다.
1. 이불속의 꼬마, 그리고 '빨간 마스크'
이 책의 불친절하고 기괴한 문체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속닥거리며 공유했던 '괴담'들을 떠올리게 한다. "입 찢어진 여자(빨간 마스크)가 마스크를 벗으며 '나 예뻐?'라고 묻는대." "화장실 세 번째 칸에서 목소리가 들린대." 출처도 알 수 없고, 기승전결도 없지만, 그 투박한 이야기들이 왜 그리 재밌었는지. 하지 말라는 건 더 하고 싶고, 무서운 건 더 보고 싶었던 그 시절. 이 책은 어른이 된 나를 다시 그 춥고 떨리던 이불속으로 데려다 놓았다.
2. 공포에서 추리로, 취향의 진화
생각해 보면 나의 독서 취향은 그 '엽기 괴담'에서 시작되었다. 귀신 소설에 빠져 밤잠을 설치던 아이는, 점차 '설명할 수 없는 공포'보다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사건'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괴담집을 졸업하고 셜록 홈스와 애거사 크리스티, 그리고 명탐정 코난의 세계로 넘어갔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깨닫고, 흩어진 단서를 모아 진실을 찾는 쾌감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미스터리/스릴러의 뿌리를 캐고 들어가면, 그 밑바닥에는 초등학교 교실 뒤편에서 떨며 듣던 '무서운 이야기'가 있다.
3. 무서운데 그립고, 찝찝한데 포근한
이 책을 덮으며 느낀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포근함'이었다. 책 내용은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지만, 그 공포가 상기시켜 준 나의 어린 날들은 따뜻했으니까.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신비롭고 거대해 보였던 시절. 책 한 권, 이야기 한 줄에 온몸의 세포가 반응했던 그 순수한 시절의 감각이 그리워서였을까. 비록 완독은 못 했지만, 이 책은 나에게 가장 강렬한 타임머신이었다.
Editor's Note
가끔은 훌륭한 문학 작품보다, 이런 쌈마이(?) 감성의 장르 소설이 창작의 욕구를 더 강하게 자극한다. 누군가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원초적인 힘. 내가 쓰는 글에도 그 원초적인 힘이 살아있는지 돌아본다. 물론, 너무 찝찝해서 덮게 만들지는 말아야겠지만!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