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천국의 대화와 이튿날의 검열
술잔이 몇 번이나 비워졌는지 모른다. 우리는 <안경>에서 시작해 오기가미 나오코의 다른 작품들, 이름도 생소한 북유럽 인디 밴드의 음악, 그리고 90년대 홍콩 영화의 습한 미장센까지 징검다리를 건너듯 대화를 이어갔다.
다섯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무색했다. 보통의 연하남들이라면 "그땐 그랬죠"라며 박물관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표정을 지었겠지만, 그는 마치 그 시절의 공기를 함께 호흡했던 사람처럼 섬세하게 반응했다. 내 안의 불길이 설렘으로 번져 화르르 타오르던 밤이었다. 나는 그 밤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 같기를 바랐다.
사고는 다음 날 아침에 터졌다. 숙취와 함께 찾아온 건 그의 짧은 톡이었다.
[어제 제가 너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한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실수가 많았죠?]
휴대폰 화면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미안하다니. 내게는 그 어떤 문학 작품보다 황홀했던 그의 문장들이 그에게는 '정리되지 않은 소음'이자 '실수'로 치부되고 있었다. 깊은 우물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진심을 내보여놓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그 흔적을 지우려 애쓰는 남자의 자기 검열.
나는 그가 왜 불안해하는지 안다. 정갈하게 다린 셔츠와 한의학 서적들로 구축한 그의 완벽한 세계에서, 어제의 수다는 통제되지 않은 물의 범람이었을 것이다.
문득 오래전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머리를 스쳤다.
'천국에 사는 사람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문장.'
어쩌면 그는 어젯밤 나와 나눈 대화 속에서 잠시 천국을 맛보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지금, 그 천국이 깨질까 봐 혹은 자신이 너무 밑바닥을 보여 지옥으로 떨어질까 봐 겁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 갱년기라는 지옥의 문턱에서 매일 밤 식은땀을 흘리며 열기와 싸우는 나에게, 그의 어설픈 '쓸데없는 말'들이 얼마나 구원 같았는지.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상상하지 않아도 되지만, 지옥에 발을 걸친 사람에게 천국의 편린은 생존의 문제다.
나는 답장을 고민하다가, 빳빳하게 다린 셔츠처럼 다시 경직되려는 그의 마음을 툭 건드려 보기로 했다.
[어제 그 쓸데없는 말들 덕분에, 내 지옥이 잠시 천국 같았는데. 미안해하지 마요.]
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갱년기 열감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 마흔에 부리는 애교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시베리아 운전석에 앉은 그가 이 사하라 같은 답장을 받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나는 그게 더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