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손수 이뤄낸 성공
평범한 개인이었다가 오로지 운으로 군주가 되는 자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군주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유지하고자 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행운 중 하나는 부모였다. 돈 많은 부모. 직위가 높은 부모. 세상 공짜로 가진 재산과 사회적 네트워크를 물려받아 세상 편하게 살고 싶었다.
취업 전까지 부모 운이 세상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프리패스인지 몰랐다. 취업해서 돈을 버는 게 목적이었기에 그 이상의 미래를 꿈조차 꾸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행이었다 싶다. 취업 이후의 미래를 신경 썼다면 자기 연민에 빠져 열심히 살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
취업 후 또 다른 단계의 미래를 준비하며 더 큰 세상에 눈을 떴다. 그에 따라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냉혹한 세상의 불공정함을 직면하고야 말았다. 당황했고, 금수저를 향한 부러움이 커져갔다.
매달 나가는 아까운 월세가 뻔하디 뻔한 월급의 4분의 1을 순식간에 삭제해 버린다. 월세를 보낼 때마다 서울 부모님이 있는 동료가 부러웠다. 나도 부모님 집에 편하게 머물면서 돈을 아끼고 싶었다.
자린고비로 살아도 서울 집 한 채 장만이 어려울 듯싶다. 성실하게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넘볼 수 있는 정도라면 힘을 내보겠지만 서울 집값의 문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부모님이 아파트 증여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나는 아직도 새로운 일이 무섭다. 승마, 수영, 미술, 음악 등.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경험을 했다면 도전에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도전 앞에서든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일 수 있었을 텐데. 자식에게 다양한 경험을 선물할 수 있는 부모를 가진 사람이 부럽다.
나의 결핍된 구석을 발견할 때마다 잘난 부모님이 빈 구멍을 채워주길 바랐다. 남들과 비교하며 움츠러들 때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다. 성인이 되어 기댈 사람은 마땅히 없었고 어찌어찌 대상을 찾다 보니 상상 속 가상의 부모님까지 이르게 되었다. 내가 너무 약하고 흐물흐물해서 누군가 멋있게 나를 만들어주길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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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두 개의 비누가 있다. 하나는 본가에서 엄마에게 말하지도 않고 가져온 비누. 또 하나는 내가 직접 만든 수제비누다. 첫 번째 비누는 내가 돈을 지불하지도 않았고 만들어져 나온 제품이라 거저로 얻었다. 유명한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니 향도 좋다. 두 번째 비누는 전문가가 아닌 내가 만들어서인지 모양이 어설프다. 쥐인 지 밀가루 덩어리인지 모르겠다. 색소 배합을 실패해서 새파랗다. 끝내주는 향이 나게 하고 싶었지만 이 향 저 향 배합하다 보니 코를 찌르는 레몬향이 난다. 어설픈 내 손길에서 탄생한 바람에 종합적으로 투박하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첫 번째 비누를 더 좋아해야 한다. 더 완벽에 가깝고 공짜로 얻어낸 비누이니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예상하겠지만 좀 더 마음이 가는 쪽은 두 번째 비누다. 부족할지언정 1시간 동안의 내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성공도 마찬가지다. 내가 부모님을 잘 만나 어부지리로 획득한 행운. 해외 경험, 재산, 교육 등등. 너무도 탐난다. 그 탐나는 것들이 무조건적인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본인의 노력과 열정이 반드시 동행되어야 한다. 만약 탐나는 조건들이 뒷받침해준 상황에서 성공을 한다면? 물론 기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그러한 성공을 이룬다면, 진정 나는 떳떳하고, 행복할까?
"아니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쟤 금수저래. 그러니까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지. 하여간 세상은 불공평하다니까. 금수저 아니었으면 저렇게 쉽게 성공할 수 있었겠어?"
태어났을 때부터 상류층에 있었다면 사람들이 그러한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의 업적은 물론, 그의 빽에 큰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물론, 타인의 생각을 무시할 수 있지만 그럴 거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게 진짜인 것 마냥 스스로 납득을 당할 것만 같다. 태어남과 동시에 매끄럽게 깔린 아스팔트 도로가 성공에 큰 지분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성공을 했지만 어느 한쪽이 불편하고 찜찜할 것만 같다. 뿌듯하고 자랑스럽지 않은 불완전한 성공이랄까?
그렇다면 차라리 밑바닥부터 다지겠다. 힘들고 거칠게 시작해서 고생 좀 할지언정 나의 손길과 노력이 듬뿍 들어간 성공을 하겠다. 최종 성공의 크기가 금수저의 그들이 이루어낸 성공보다 작을지언정 자랑스러운 성공을 하겠다. 그게 나와 어울린다. 그런 성공을 하고 싶다. 공장에서 나온 세련되고 향기로운 비누보다 투박하고 어설프지만 내 손길이 닿은 비누에 더 정이 가듯이 나에게는 수제 비누 같은 성공이 더 값지고 의미 있다.
"저 사람은 쥐뿔도 없었는데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성공을 해냈어. 너도 할 수 있어."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미약하게 시작했지만 끝내 어떠한 형태의 성공을 이루어 나와 같은 시작을 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홀로 누리는 영광이 아니라 그 영광의 빛이 다른 이에게 번지는 또 다른 영광을 만끽하고 싶다.
엄마 아빠에게 감사하다. 뿌듯한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기회와 영광을 선물해 주신 분들이다. 행운 아닌 행운이 나에게 주어졌다. 나만 잘하면 된다. 거친 바닥을 잘 다져 올라가면 된다. 올라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쉽게 올라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한 순간이다. 금세 나의 페이스를 찾고 나만의 성공 작품에 집중할 것이다. 언젠가 성공의 높이에 다다랐을 때 아래를 내려다볼 것이다. 손수 내가 다져온 세월의 성과들이 견고하게 쌓여있다. 그 어떤 에펠탑, 63 빌딩 부럽지 않다. 그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