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 될 거야.

사실은 더 이상 실망하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by 훌륭한어른이
모든 게 잘될 거라 기대하면 최상의 시나리오가 실현되더라도 별 감흥이 없게 된다. 비관주의는 기대치를 낮추고, 실제로 가능한 결과와 내가 기뻐할 수 있는 결과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어쩌면 그래서 비관주의가 그토록 매혹적 인지도 모른다. - 돈의 심리학 (모건 하우절) -


사실 나는 겸손한 사람이 아니었다. 비겁한 사람이었다.


"아니에요. 저는 잘 못할 거예요."

"제가 감히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어요."


다른 사람 앞에서 지나치게 나를 낮추는 버릇이 있다. 그러한 행동이 겸손의 미덕으로 포장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사실 그 포장은 방패였다. 방패 뒤에 숨어 비겁한 마음이 편안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나의 꿈은 아나운서였다. 멋지게 차려입고 멋들어진 목소리와 말솜씨로 화면에 나오는 아나운서를 동경했다. 하지만 꿈은 내것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키 작고, 못생기고, 얇은 목소리를 가진 내가 감히 어떻게 아나운서가 될 수 있겠냐며 일찌감치 포기했다. 하지만 꿈은 바닥에 떨구고 흙으로 덮어놓는다 해도 자꾸 꺼내어 들여다보고 싶고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꾹 참고 마음에 꼭꼭 숨겼다. 숨겼던 꿈을 들켜버리면 사람들이 조롱할 것 같았다.


언제이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어떠한 계기로 엄마에게 꿈을 들키고 말았다.


"00이 꿈이 아나운서야?"

너무 창피했다.


"아니요. 제가 무슨!"


아나운서가 꿈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면 엄마는 큰 응원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자신이 없었다. 아나운서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내가 아나운서가 된 모습을 상상하며 기대하는 모습이 초라했다. 초라한 만큼 강하게 꿈을 부정했다. 한 마디로 꿈을 뻥 차버렸다.


만일 그때 솔직했다면 어떠했을까? 엄마의 응원에 힘입어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차곡차곡 꿈을 준비했을 것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멋진 아나운서가 되었을 수도 있다.


아나운서가 끝내 되지 못했더라도 적어도 꿈을 부정한 회피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은 씨앗이 큰 식물로 자라듯이또 다른 꿈의 씨앗을 심어 당당히 꿈을 밝히고 큰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아나운서를 준비하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는 더 큰 '나'라는 존재를 키웠을 수도 있겠다.


나는 당당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꿈을 찌끄러뜨렸다.



나는 상처받기 두렵다. 특히 실패한 나로부터.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도전하면 좋다. 딱 그 정도까지 생각했음 한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도전 뒤 뒤따르는 실패를 생각한다. 실패에 뒤따르는 실망감. 실망이 주는 상처를 받는다. 그게 두렵다.


그래서 비관주의로 빠진다.


"나는 안 돼."

"나는 할 수 없어."


비관주의가 편하다. 왜냐하면 실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패한다 해도 실패할 거라 예상했기 때문에 대단히 속상할 일이 없다. 그 반대로 잘 될 거라 기대했는데 생각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그만큼 절망이 크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말에도 힘이 있다.




말은 내뱉는 순간 힘을 가진다. 마치 주문과 같다. 말이 입술 밖으로 나오는 순간 소리로 변한다. 소리는 말한 귀로 그대로 흘러간다. 뇌는 음성을 인식한다. 인식은 세포 곳곳에 전달된다. 내가 할 수 없다고 말하면 할 수가 없어진다. 할 수 있다고 말하면 할 수가 있어진다.


실제로 어떤 일을 새로 맡았을 때 속으로 '이걸 어떻게 해?' '난 못해'라고 생각하면 정말 못할 것 같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고, 할 수 없는 이유를 애써 찾는다. 그리고 정당화하고 타협한다. 어쩌면 해낼 수 있었을 가능성을 처참히 부숴버린다. 발전은 없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힘 빠진 바람인형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할 수 있어.' '잘 해낼 거야.' 생각하면 왠지 해낼 것 같다.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다. 할 수 없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갑자기 용기가 샘솟는다. 되려 잘 해낼 것 같아 설레기까지 한다. 힘찬 걸음으로 한 발짝 내딛는다.




나는 할 수 있다.


주먹을 꽉 쥐어본다. 정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비관주의의 방패에 숨어 나를 한정 짓고 싶지 않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지금 당장 걱정되는 일도 있고, 뿌옇게 형체조차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도 있다. 그 어느 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비겁하게 피하지 않겠다. 당당히 맞서기로 한다.


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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