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언젠가 엄마에게 생일 선물을 드린적이 있었다.
2만 원짜리 장갑이었지만, 100만 원짜리 선물을 받은 것 마냥 기뻐하셨다.
기쁨이 나에게도 전해졌지만 쑥스러워 재빨리 방으로 도망갔다.
문틈 사이로 엄마 아빠의 대화가 들렸다.
"진수 엄마. 기분 좋지?"
"그럼. 조건 없이 자식에게 베푸는 게 부모라지만 이렇게 표현해 주니 감동이네. 일방적 짝사랑은 아닌 것 같아."
식당가 옆으로 뚫린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제인만큼 조그만 여자가 담배를 꺼냈다.
곧이어 라이터도 꺼냈다.
손가락을 몇 번 굴려봐도 불이 붙지 않았다.
제인을 위해 항시 대기 중이던 라이터가 꿈틀댔다.
"라이터 빌려 드릴까요?"
"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이 이토록 듣기 쉬운 표현이었나?
오늘따라 제인에게 고맙다는 말이 듣고 싶어졌다.
멍청하고 말 잘 듣는 당나귀가 당근 하나는 물어야 직성이 풀릴 날이다.
평소처럼 제인에게 에쎄를 건넨다.
제인은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낚아챈다.
"너는 왜 나한테 고맙다는 말 안 해?"
"뭔 갑자기 개소리야?"
"내가 매번 담배 사다 바치잖아. 편의점에서 직접 사도 되는 걸 굳이 나를 시켜 먹고."
"자기가 끓여 먹는 라면이 맛있을까, 남이 끓여주는 라면이 맛있을까?"
"..."
"남이 끓여주는 게 맛있겠지? 담배도 마찬가지야. 네가 사다 줘야 담배가 더 맛있거든. 선물 받는 것 같기도 하고."
대화가 다른 방향으로 샐 것 같다.
다시 바로 잡아야 한다.
"나한테 고맙다고 말해!"
"내가 왜? 싫어."
"넌 정말 나쁜 애야."
"뭐? 다시 한번 말해봐."
순간 움찔했지만 이미 액셀 밟은 마당에 후진은 더 이상 어렵다.
"넌 정말 못 돼 처먹었어! 왜? 꼽냐?"
제인이 박장대소를 한다.
이토록 밝게 웃었던 적이 있었던가.
"기분 존x 좋아."
당황스럽다.
제인이 뭘 잘못 들었나?
아님 뭘 잘못 먹었나?
"나쁜 x이 나쁘다는 소리 들으니까 속이 후련하네. "
"우리 착한 진수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훨씬 구린 x이야. 그러니까 고맙다는 소리 그딴 거 나한테 기대하지 마! 알겠냐, 이 착한 놈아?"
생각보다 제인은 나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아픈 것 같다.
그렇게 위안 삼아 퉁 쳐버리고 싶다.
그래야 제인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 다치지 않을 것 같다.
더 이상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제인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