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독서로
독서가 학교 수업 안에서 이뤄지길 바랐다
독서가 좋은 공부법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아왔다.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에 독서를 수업 외 시간에 신경을 써주는 학교와 교사가 간혹 있을 뿐 정규 수업 안에 독서가 이뤄진다는 말은 거의 듣지 못했다. 학교가 독서할 시간과 환경을 주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독서하지 않을 것이다. 고등학교 국어 수업 안에 ‘독서’라는 과목이 들어 있지만, 이 때도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를 이론으로 배운다. 모든 학교에는 좋은 책이 가득한 도서관이 있다. 이 풍부한 자료를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수업시간이 독서할 시간이 되면 안 되는 걸까. 학교 도서관이 언제나 학생들이 독서할 수 있는 장소가 되면 안 되는 걸까.
고등학교 수업에서는 절반 이상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것이 익숙한 풍경이다. 선생님들도 사교육과 선행으로 각자의 실력이 모두 다른 아이들을 한 교실에 두고 어느 학생의 수준에 맞춰 수업을 해야할지 난감한 처지다. 하는 수 없이 수업을 듣지 않더라도 떠드는 학생보다는 잠을 자주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초중고 학교가 대학 입시에 중점을 두고, 점수와 상관 없이 생각하고 활동하는 면에서 많이 이탈되어 있기에 학과 공부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들의 잠재력과 자존감은 간과되기도 한다. 또 학교 수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 중상위권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목표로 하고 있는 대학 입학 전형과 관련이 없는 수업과 활동은 열심히 할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아이들이 잠을 자는 그 시간에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게 하는 자유라도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는 아이들에게도 다른 가능성과 잠재력은 충분히 있으나, 그 가능성을 돌보지 못한채 한 교실에 하루 종일 앉혀놓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 위주의 수업을 계속 하게 하는 것은 대다수에게 고문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아이들이 열등감과 무기력감을 느낀다.
앞으로 이런 학교를 바란다
초등고 학교 수업에서 독서가 꾸준히 이뤄졌다면 아이들은 훨씬 더 많이 배웠을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할 능력을 키우는 일이지 않은가. 공부로 중상위권이 못되는 아이에게도 자신에 대한 자각과 삶을 살아갈 자신감이나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 독서일 것이다. 아이마다 좋아하는 책의 주제가 달라서 그것이 자신의 특성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독서는 아이들 개인의 선택적인 활동이 되어있고, 아이들은 독서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학교 밖 수업이 많다.
두 아이를 키우는 지난 20여년간 유대인들처럼 학교과 마을과 가정이 모두 독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독서를 생활화하는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우리도 교장 선생님의 관심과 지휘 아래 매일 모든 아이들이 독서를 할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할 수는 없는 것일까. 공부를 조금 못한다고 해도 자신의 다른 능력을 찾고 믿고 미래를 힘차게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인구의 0.2%도 안 되는 유대인이 노벨상의 30%를 독차지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하버드 대학의 학생과 교수 30% 이상이 왜 늘 유대인인지도 궁금했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져커버그, 아인슈타인, 스필버그, 록펠러 등 우리가 위인의 대다수가 유대인이다. 유대인이 다른 나라 국민보다 지능이 더 좋아서 위대한 성과를 낳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교육 시스템이 이런 결과의 차이를 만든다고 믿는다. 많은 국민이 비판하는 지금의 교육 제도에서도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이룬 우리 나라다. 만일 우리 교육이 유대인 교육처럼 독서와 토론을 위주로 하는 방향으로 바꾸어 간다면 우리나라는 세계를 이끌어가는 탑 리더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독서를 아이의 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방식으로 독서를 교육 제도에 편입시켰다. 그래서 아이들은 독서를 더 하게 되었을까? 아니다. 그 반대다. 바쁜 학생들을 책을 여유있게 고를 여유도 읽을 여유도 없다. 아이들을 대신하여 생기부에 기록할 책을 함께 읽고 독후감을 쓰는 학원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이들은 독서를 학교 밖에서 혼자서나 사교육과 함께 해야하는 의무가 되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학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밀린 숙제를 한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늦은 저녁 돌아오는 아이들은 언제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일까. 우리 교육은 현재 상태에서는 아이들의 독서를 체계적으로 막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독서를 중심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이끈다는 말을 아이를 키우며 큰 소리로 말할 수 없었다. 수많은 난관이 있는 어려운 길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학원들이 워낙 잘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이미 학원에서 한 두 과목이라도 배우기 시작하면 아이들에게는 독서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독서로 내신과 수능에 큰 힘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독서에 빠져있어야만 학원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전후로 이미 거의 매일 학원을 다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이가 독서를 중심으로 입시를 준비한다는 것은 다소 황당하고 믿기 어려운 방법이 되어 버렸다.
진정 우리 교육에서 사교육의 비중을 줄이고자 한다면, 학교 안에서 독서 시스템이 가동되어야 한다. 개인은 힘이 없지만 제도는 힘이 있다. 아이들이 각자 취향과 수준에 맞춰 책을 읽는 독서가 학교 커리큘럼 안에 들어오게 하고 아이마다 서로 다른 수준의 다른 내용의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각자 읽은 주제에 대해 생각을 발표하게 할 수도 있다. 또, 모두 함께 읽은 책으로 토론을 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초등에서 고등까지 12년간 아이들이 꾸준히 스스로 책을 골라서 읽으면서 수준을 조금씩 높여간다면 아이의 적성과 진로가 보일 것이다. 독서와 토론을 학교 안으로 들여와서 체계를 잡아야 비로소 사교육이 줄고, 줄어든 공교육의 권위가 높아질 것이다.
우리나라 영재들은 똘똘하기에 인정도 받고 좋은 대학에 더 많이 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영재들의 어린 시절도 애처롭기는 마찬가지다. 어려서부터 영재원,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에 다니며 밤늦게까지 수많은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풍도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의 타고난 재능과 창의력이 반복되는 문제풀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영재아들을 국가 차원에서 잘 키워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게 하기 위해 만든 영재 시스템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미리 경쟁을 극심하게 하는 과정으로 전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재아들의 호기심과 탐구심은 사라지고 말라버리고, 경쟁과 합격 여부가 중요 관심사가 되었다. 그 아이들의 타고난 능력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똘똘한 아이들이 미리 경쟁 시스템에서 앞서가는 것을 모델로 삼다보니 대부분의 다른 아이들이 “이미 한참을 늦어버린” 아이로 평가되면서 전국의 모든 부모가 조급함을 기본 정서로 갖게 만든다. 아이들은 자꾸만 어린 나이부터 경쟁에 치이게 되어 있는 구조다.
우리 나라 청소년의 독서량이 세계 최저인 것은 어른들의 독서량이 최저인 것과 관련이 있다.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아이들만 독서를 취미로 삼는 일이 쉬운 일인가. 부모들의 독서문화가 점점 더 생겨나길 바란다. 부모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독서모임을 하고, 자녀 양육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상의할 수 있는 문화가 커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