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시대를 거꾸로 간다
조선시대에 영어만 잘하면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한다. 조선 후기 고종은 미국과 통상조약을 맺고, 서양의 발전된 과학 문물을 받아들이려면 영어 공부가 중요하겠다고 판단했다. <육영공원>이라는 국가영어교육기관에서 미국인 선교사들이 백성들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쳤는데 인기가 대단했다.
그때 사용했던 교재 중 하나인 <아학편, 1908년>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발음기호가 실제 영어 발음에 가깝게 우리말로 표기되어 있었다. 우리말에는 없고 영어에는 있는 소리를 정확히 발음할 수 있도록 표기해 두었다. 예를 들면, 우리말 'ㄹ'과 영어의 'R' 은 발음이 다르다. 실감나게 R 소리를 발음할 수 있도록 쌀(Rice)을 '으라이스'로 표기한 것이 눈에 띄었다. 또, F와 V발음이 우리말에 없는 점을 고려하여, ㅍ과 ㅂ 왼쪽 위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 발음법을 표기했다. 이렇게 원어민에게 직접 실용영어를 배울 수 있어서인지. 당시 일본이나 중국 문헌에 조선 사람들이 영어를 잘한다고 써있다 한다.
100년 전에 붐을 이뤘던 실용 영어는 지금 어디로 간 것인가?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배 하면서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고, 교과서까지 일본어로 기록하고, 일본 역사를 가르쳤다. 영어를 가르치던 미국인 선교사들을 몰아내고 일본인이 우리 백성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이때 시작된 일본식 영어 교육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문법 중심의 교육이다. 게다가 발음이 일본어 식으로 표기되면서 영어 실제 발음과 거리가 생긴 것인다. 어쩐지 친정 아버지의 영어를 들으면 일본어 액센트가 들리더라니.
우리가 처음 중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때 선생님의 발음과 테이프에서 나오는 발음이 너무나 달라 그 이유가 궁금했었다. 만약 조선시대처럼 원어민이 직접 가르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영어 교육이 이어져 왔다면 영어 발음을 보다 자연스럽게 익힐 것이다. 실용 영어 위주의 수업을 할테니, 10년 이상 영어를 배우고도 벙어리 냉가슴처럼 말못하는 현실은 없었을 것이다. 일본의 영어교육에 대한 간섭이 없었다면 우리도 북유럽 국가들처럼 실생활에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영어를 배울 것이다. 아이들을 쥐어짜서 결국 말문을 닫게 만드는 학교 영어 교육을 보면서 몹시 안타까웠 다. 외국어 교육은 원어민의 말하기를 많이 듣고 흉내내게 하는게 시작이아야 한다. 조선의 영어 교육이 계속 이어왔다면 국민들이 어렵지 않게 다국어 사용자가 될 것이다. 어마어마한 시간을 절약하지 않았을까. 일제 강점기는 우리의 영어 교육에도 큰 오점을 남겼다.
병역 의무는 한참 무언가에 집중할 청년에게서 금쪽같은 2년 안팎의 시간을 잘라낸다는 면에서 아깝다. 남성의 군복무 기간보다 더 아까운 시간이 우리나라 영어 교육 시간이라 생각한 적이 많았다.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서 10년 이상을 영어 공부에 고생하고도 실전에서 활용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도 취업용 각종 영어 평가를 준비하려면 잘못된 영어 공부는 지속된다. 심지어 승진 시험에도 실용영어와 거리가 먼 영어 평가에서 발을 뺄 수가 없다. 부모들이 왜 내 아이만큼은 영어를 못하는 설움을 주지 않고 싶은지 이해가 잘 된다.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온국민이 대신 고생하고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 만약 조선시대에 시작된 실용 영어 교육이 지금까지 맥을 이었다면 영어 앓이를 하는 청춘들이 보다 더 자유롭게 영어를 의사소통을 하고 있지 않을까?. 마음만 먹으면 영어 영상과 오디오가 넘쳐나는 정보화 시대에 살면서도 한 번 빗나간 영어 교육의 틀은 재자리를 찾아오지 못했다. 아직도 아이들에게 단어 암기와 문법을 영어 공부법이라 주입하고 있다. 온라인에 공유되는 무한한 좋은 자료 중에서 교육부가 선정하거나 추천하고픈 자료를 교사 공용 자료실에 올려주어 교사들이 선택해사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보여주고, 말하게 하는 영어 교육이 하루 빨리 자리잡길 학수고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