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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과맘 Jul 08. 2022

영어와 사춘기



'사춘기'에는 아이의 태도가 하루 아침에 돌변할 수 있다.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느닺없이 가족에게 짜증을 낸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시키면 불만을 터진다.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 방문을 걸어 잠그고 대화를 차단한다. 충돌이 심해지면 부모가 시키는 일은 무조건 거부하기도 한다. 분노를 삭히기 위해, 재미를 찾기 위해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게 된다. 하라는 공부 대신 스마트 기기에 빠져드니 부모는 스마트 기기가 공부의 적인양 생각한다. 그럴수록 관계는 점점 악화된다. 심지어 보란듯이 공부를 놔버리기도 한다. 사춘기 아이를 꾸중했더니 공부를 하더라는 얘기는 현실에서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아이가 사춘기를 앓기 시작했다면, 지체없이 태도를 바꿔야 하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다. 




과도한 공부량이 아이들의 사춘기를 격하게 만든다. 영어도 아이들의 사춘기를 부추기는 주요 원인이다.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배운다. 초등 영어를 준비하는 방법은 가정마다 다양하다. 영어 유치원에서 1년~3년간 원어민과 함께 배우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간다. 부모를 따라 해외에서 몇 년을 살다 온 아이들도 있다. 방학을 이용하여 몇 개월 혹은 수년 간 미국,나 필리핀 등 영어권 국가에서 영어 연수를 하는 아이들도 많다. 10년 이상을 공부하고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던 부모는 부모는 아이에게만은 영어를 잘 익히게 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어릴 나이에 생활로 익힌 영어는 우리말처럼 발음도 자연스럽다. 아이들은 초등 영어에 자신감을 갖고 즐겁게 참여한다. 


또 다른 부류도 있다. 우리 세대가 배우던 영어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비율이 적지 않다. 문법과 단어 위주로 학습시키는 학원이나 학습지가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 외국인이 우리말을 배우고 싶어 한다고 가정하자. 이 외국인에게 '자음', '모음' '초성', '중성', '종성' 등의 문법 용어를 먼저 가르치는 것이다. 생활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말이다. 게다가 한국어의 정확성을 위해 ''자음 동화', '구개음화', '두음법칙'과 같은 문법을 가르친다고 상상해 보자. 그 학생이 우리말을 잘 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우리말 몇 마디 배우기도 전에 지치고 질려버릴 것이다. 우리 학교 영어 교육은 아직도 예전 우리 세대가 배우던 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아이들은 영어에 재미가 없다. 아이들은 "영어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부모도 할 말이 많다. 학원까지 보내서 뒷바라지 하는데 점수가 나오지 않으니 화가 나서 아이를 다그친다. 더 난 쪽은 부모일 확률이 높다. 


초등 영어는 신경 쓰지 않는 부모님들도 있다. 그러니 원서로 해리포터를 읽었다는 아이와 알파벳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같은 교실에서 영어를 배운다. 칭찬받는 아이들은 신이 나겠지만, 시작하자 마자 친구들의 유창한 영어에 주눅드는 아이들이 많다. 왜 자신이 다른 친구들보다 영어를 못하는지 객관적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처음부터 의심한다. 이처럼 교육의 정보에 따라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수준 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단지 영어만의 문제가 아니며 전 과목에 걸쳐 이런 차이가 심하다. 사교육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따라 공교육 안에서의 점수 서열화가 이뤄진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육은 점점 공정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맞다. 


영어유치원이니 해외연수를 보내지 못했다고 한탄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예전과 달리 집에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유튜브의 발달로 원하는 정보가 인터넷 상에 넘쳐나는 세상이다. 마음만 먹으면 미국에 사는 아이보다 우리 나라에어를 더 잘하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 부모가 영어를 전혀 모르더라도 아이를 TV나 유튜브, DVD 등에 노출시키는 방법이 있다. 시청할 내용은 반드시 아이가 좋아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월, 수, 금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는 영어로 영상 감상하는 시간'이라는 식으로 시간을 고정시켜야 지속성이 있다. 시간표를 짜두면 학원을 가지 않으면서도 학원 가는 것 이상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집에서 보는 영상은 학원처럼 숙제가 없기 때문에 아이는 놀이 시간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어 더 좋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영어를 충분히 잘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인터넷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찾으면 정보는 충분히 많다. 우리말을 잘하는 외국인에게 비법을 물으면 K-드라마에 빠져살았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국민이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필란드는 수업시간에 영어 TV 프로그램을 들려준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선생님이 한국말로 설명한 영어를 듣고 잘 들었는지 확인하는 시험과목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핀란드의 영어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실용성을 중시한다. 




학국식 영어 교육은 아이와 부모의 사이를 갈라놓는 주범이다. 영어가 우리말과 다를 바 없는 언어임을 알고, 우리 나라 영어 교육의 비효율성을 아닌 부모들은 미리부터 영어를 언어로 접하는 공부법을 아이에게 적용한다. 이들은 당연히 학교의 평가중심 영어에서 최상위 실력을 발휘한다. 말하기도 수준급이고 원서를 많이 읽어 토론과 글쓰기도 척척 잘한다. 우리의 중학교 영어는 아직도 40년 전과 별다를 바 없이 문법 위주라는 것을 잘 알고 초등학교 5학년 전후로 문법 학원을 보낸다. 우리말을 잘 하는 중학생 정도에는 우리말의 문법을 저절로 이해하듯이, 영어 자료에 노출이 많았던 이 아이들은 영어 문법도 자신들이 이미 아는 영어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소화한다. 핀란드 아이들보다 몇 배의 고생을 해서 배우는 것이 속상하지만, 그래도 우리 나라 입시제도 안에서는 영어를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듣기 때문에 한국식 영어 교육의 최대 수혜자에 속한다. 공부량이 많아 놀이 시간이 부족하고, 공부에 지치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와 즐겁게 노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는 측면에서, 이들의 사춘기도 격정적이긴 하다.  


중학교 영어는 여전히 문법이 중심이다. 영어를 예전 부모세대처럼 느긋하게 생각하다가 중학교 영어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문법 용어에 익숙해지는 일이 어렵다. 문법 용어는 한자어로 되어 있어 용어에서 기가 꺽여버린다. 예를 들어 a, an을 '부정관사'라 부르며, the는 '정관사'라 부른다. '부정사', '동명사' '관계 대명사', '분사' 등을 사용하여 우리말로 설명하는 용어는 고등학생들에게도 쉽지 않은 영역이다. 이런 문법 용어를 모르면 영어를 못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자세다. 초등 4년, 중등 3년간 아이들이 좋아하는 무수한 영상 중에서 골라 수업시간에 시청만 하게 해준다면 아이들의 영어를 걱정할 일이 저절로 해결될 텐데.... 배우는 아이들의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가르치는 교사가 설명하는 언어를 그대로 복사해서 기억해야 하는 현실과 아주 먼 우리 영어 교육을 어떻게 하면 바뀔 수 있을까. 


"저는 영어는 포기했어요."


3년간 미국에서 어학 연수를 하고 온 주호의 첫 말이었다. 주호 엄마는 아이들이 어학연수에서 돌아오면 우리나라 중등 영어는 걱정 없을 줄 알았다고 했다. 우리 나라의 영어 교육의 현실에 대한 파악을 하지 못해 현실과 이상이 충돌하게 된 것이다. 듣기, 말하기, 글쓰기, 토론은 문제 없이 하는 영어 실력을 지녔지만, 주호는 어려운 문법 용어로 설명하는 영어 수업이 지겨워 수업시간에 잠이 온다고 했다. 어학연수를 하고 돌아온 "리터니 returnee"들의 고민은 돈을 들이고 외국에 나가 고생해서 배운 영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다시 학원에 다니기도 한다. 또한, 학교 영어 시험을 잘 보려면 문법 학원이나 과외를 받아야 하지만, 용어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 어학연수로 잘 배워온 영어가 한국식 영어에 기를 펴지 못하고 영어에 거부감을 가진다. 부모들은 돈 들여 배워오고도 점수가 안 나온다며 아이를 나무라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영어가 더 재미없고, 영어권에 살다와서도 영어를 못하니 영어 실력이 없다고 자포자기 하기도 한다. 




고등 영어의 성격은 두 갈래로 나뉜다. 문법 중심의 중등 영어를 이어받은 고등 내신 영어와 독해력을 테스트 하는 수능 영어다. 우리말로 영어 문법 용어와 틀을 이해한 아이들은 이번엔 시험 범위에 나오는 본문을 달달 외우느라 엄청난 시간을 소비한다. 이런 식으로 내신 영어 공부를 3년간 따라 가다보면 독해 위주로 문제가 출제되는 수능 공부에 문제가 생긴다. 수능 영어는 영어 독서를 많이 한 아이들이 그리 어렵지 않게 1등급을 받는다. 많이 읽었기 때문에 속독이 가능해서 짧은 시간에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수능 영어에 적합한 능력을 가진 것이다. 모르는 단어가 있어도 한 번에 전체를 읽고 주제를 파악하는 힘이 독서를 통해 길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등 부터 문법 위주로 영어를 공부했던 아이들은 고등 내신 기간마저 내신영어 공부를 하느라 독해를 늘릴 시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방학만 되면 수능형 학원을 다니며 모의고사 기출문제나 독해 문제를 풀어가면서 독해력을 향상시키는 수업을 듣는다. 영어가 마치 두가지 과목이라도 되는 듯 쉼없이 공부를 한다. 이렇게 열심히 해서 수능 1등급을 받았다는 한 대학생이 내게 어떻게 영어 공부를 해야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시험은 찍어서 1등급을 받았지만 원서를 보면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겁부터 난다고 했다. 


우리 나라 영어 교육의 틀이 아직도 이렇다는 것을 부모가 알고 아이의 영어 교육에 대비해야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에 앞서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미리 어려움을 피하도록 방향을 정해야 한다. 개인은 제도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적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면서 즐겁기까지 한 영어 공부법은 바로 원서 읽기다. 영어 독서를 해보신 적이 없는 부모들은 어른도 모르는 영어 원서를 아이가 어떻게 읽느냐고 지레 겁을 먹는다. 하지만 TV, 유튜브, 팝송, 만화, 디지니 영화 등을 몇 년간 즐겁게 즐겨 볼 수 있는 환경을 갖춰 주면 그림책과 쉬운 동화책으로 시작하는 독서의 길은 활짝 열린다. 요즘은 유튜브에 영어책을 읽어주는 채널도 무수히 많다. 아이와 함께 찾아서 구독하며 규칙성만 부여하면 된다. 아이가 좋아하는 내용이 많아질수록 영어가 쉬워지는 것이니 인터넷에서 그런 정보를 찾아 주는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독서를 많이 한 아이들은 저절로 국어 실력이 좋다. 우리 아이들이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쉽게 배웠을 언어를 한국에서 배울 때도 쉽게 배우면 좋지 않을까. 어린 시절 영어 독서에 재미를 붙이게 도와주는 일은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거친 사춘기를 맞지 않도록 예방하는 역할도 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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