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가로막는 영어 평가
수능을 치러본 사람이면 안다. 수능 영어 출제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껴야 한다는 것을. 수능 영어는 공교육 영어 교육의 일차 목적지처럼 인식된다. 수능 영어는 대입 정시전형에서 점수로 환산되어 대학의 높낮이를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수능 영어 시험 문제는 그 이듬해 고등 내신 문제의 시험 범위에 포함된다. 영어로 <코스모스>를 줄줄 읽고 이해하는 사람도 우리나라 수능 영어 문제 앞에서는 맥을 못춘다. 고3 수업생을 겪은 사람이거나, 공교육이나 사교육의 영어 교사 경험자에게 물어보라. 한결같이 수능 영어에 한숨을 내쉴 것이다. 수능에 대한 불평은 오래전부터 들끓었지만, 신기하게도 수능영어의 근본적인 변화는 논의되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 문제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수능 영어는 어떤 문제를 가지며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
첫째, 수능 영어 지문의 문장이 길어도 너무나 길다. 수식이 얼기고 설겨서 문장의 의미가 명료하지 않다. 한 문장이 여러 개의 절을 포함한다. 중간에 필요 없는 쉼표와 대쉬, 콜론, 세미콜론이 등장하여 글의 흐름을 끊는다. 따로 떼어서 단순한 문장으로 쓰면 명료할 것을 접속사를 여러 개 사용하여 한 문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 여러 가지 섞여있다. 수능이나 수능 연습용 모의고사에 출제된 이러한 지문은 번역하는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이해를 돕기위해 아래에 2022학년도 수능 영어 34번의 사례를 살펴보자. 이 글은 총 5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비슷한 분량의 글이 3~4문장으로 이뤄질 때도 있었다. 좋은 글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만연체 문장으로 작성되었다. 쓰는 이의 생각에 갖혀서 혼자만 이해하는 비문의 집합글이다. 수능 출제요원 사이에서도 출제자 본인 이외에 아무도 이 글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장담할 수 있다. 영어로 <용비어천가>나 <기미독립선언문>을 도움없이 읽는 기분이랄까. 한자어 명사를 영어로 일대일 대응하여 치환한 문장들이다. 그렇게 배배 꼬인 문장을 평가원에서는 "변별력을 위한 어려운 지문"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면서 수능 영어 고득점을 위해서는 수능 출제 단어를 달달 암기하라고, 이렇게 긴 문장을 해석할 수 있도록 문법을 더 철저하게 익히라고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또 확신한다. 수능 일타 강사의 자녀들은 절대로 이 과정으로 영어를 공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효율이 너무나 떨어지고 원어민조차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글이기 때문이다. 단, 오답을 제거함으로써 정답의 가능성이 그나마 조금 더 있는 선택지를 고를 수는 있다. 이렇게 기이한 문제 출제 방식은 30년 가량을 이어져 내려왔다.
유튜브에서 '수능영어 외국인 반응'이라고 검색해보자. 하버드 우수 졸업생이라는 사람이 50점을 넘지 못한다. 미국과 영국의 교수들, 심지어 언어학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맥을 못춘다. 그들은 여유롭게 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러면서 예의를 갖추어 "문제가 어렵다"거나 "모르겠다"라고 말하곤 한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이건 영어로 쓰여지긴 했지만 영어는 아니다"라고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오답을 제거해서 주제인 문장을 잘 찾아 1등급을 받았지만 수능 지문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수험생은 찾을 수 없다. 원어민 엘리트들도 이해할 수 없는 '가짜 영어'에 온나라 아이들이 쏟아 부은 그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 어마어마한 돈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문장을 배배 꼬아 길게 늘리지 않고 간결한 문장으로도 충분히 독해력과 사고력을 테스트 하고 있는 토플처럼 수능을 왜 변경할 수 없는가.
둘째, 글의 주제가 명확하지 않다. 글쓴이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나 사례 제시, 주장을 펼치기도 전에 however, but, on the contrary, rather, still, while 등의 접속어를 넣어 글의 흐름이 갑작스레 다른 방향이 튀어 나간다. 문맥이 가지런하지 못하니 주장이 산만해진다. 억지스러운 단어로 흐름이 매끄럽지 않은 문장을 유사어를 통해 중언부언 하는 방식으로 몇 번씩 비슷한 문장을 반복하기도 한다. 지문은 제대로 이해되지는 않지만 5개의 선택지에서 관련 없는 선택지를 고를 수는 있기 때문에 오답을 제거함으로써 주제를 맞추어야 한다. 출제자들은 주제가 같은 선택지를 고르게 할 때, 답을 찾을 수 있는 단서들을 중간에 심어 둠으로써 오답을 확정짓게 한다. 문제에 대한 컴플레인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보인다. 학원의 일타 강사는 단서를 이용하여 답을 어떻게 잘 찍을 수 있는지 까지 잘 알려주기 때문에 학원을 이용하게 된다. 1등급을 받았으나 영어는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학생들의 오랜 노력과 시간이 너무나 아깝기만 하다.
셋째, 우리말 단어와 영어 단어를 일대일로 치환하는 형식의 번역문장이 많아 원어민들이 이해할 수 없다(특히 총 45문항 중에서 21번부터 40번 까지에서 심각함). 예를 들어, 우리말로 "식사하셨어요?"라는 인사를 "How are you?"라고 번역하지 않고, "Did you eat?"이라고 번역한 것과 같은 형태다. 영어로 쓰였졌는데도, 한국인끼리는 이해하는데 원어민은 알 수 없는 영어가 되어버린다. 또 다른 예로, appointment는 '누군가와 만날 예약'을 의마하고 'promise는 '지키기로 한 약속'을 뜻하는데, 단어장에서 두 단어 모두 '약속'이라고 해석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암기 했기 때문에 혼돈이 온다. "저 오늘 약속이 있어요."라는 말을 "I have an appointment."라고 할 것을 "I have a promise." 식으로 표현할 우려가 있다. 길고 어려운 단어를 유사어로 문맥도 없이 암기했다가 구별없이 치환하는 습관이 지문에도 선택지에도 가득하다. 암기한 유사어를 비슷하다고 믿는 우리 나라 사람들끼리는 정답이라 믿어지는 정답이 원어민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되니 수많은 정답이 사실은 오답이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수많은 비문을 뭉쳐놓고 "난이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라는 설명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간결한 표현으로 난이도를 충분히 높일 수 있다. 최소한 지성이 높은 원어민이 알아들을 수 있게 출제해야 진짜 실력을 평가하는 공정한 시험이 될 것이다. 수능 영어 출제 방식이 개선되기 위한 다음과 같은 제안이 수용되어 수능 영어가 영어 교육의 올바른 등대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첫째, 수능 영어 출제위원에 실력있는 원어민을 합류시키는 것이다. 수능 문제 출제 위원들이 한달 이상 고립되어 문제를 출제할 때 원어민도 일정 비율 섞을 수 있지 않을까. 문제 출제를 공교육 교사나 교수가 한다고 하더라도 최종 감수자로서라도 원어민이 참여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원어민이 이해할 수 있는 실제 영어가 될 것이다.
둘째, 수능 영어 출제 교사를 선정하는 기준을 바꿔야 한다. 영어를 오래 가르친 교사가 좋은 수능 출제위원이라는 생각은 바르지 않다. 수능 출제 위원이 되기 위한 자격 조건에 토플 등의 점수를 요구하거나, 학위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오래전부터 단어 암기와 문법 위주로 배운 교사들이 원어민이 이해할 수 있는 영어식 지문을 어떻게 쓸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최소 문제 별로 어느 교사가 출제했다는 문제 실명제라도 실시하여 말도 안되는 문장으로 수십만명의 아이들이 시험을 치르고 능력으로 줄세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셋째, 공무원 시험처럼 수능 영어를 공인영어점수로 대체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여전히 사교육의 영향력을 줄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최소한 공인영어 점수를 높이는 과정이 실제적으로 영어 독해력을 늘리는 길이기 때문에 시간이 헛되거나 아까운 정도가 줄어들 것이다. 텝스의 경우 우리나라 사람이 출제를 하면서도 매끄럽고 깔끔한 문장을 사용하여 원어민들도 명확히 인식가능한 표현을 사용한다. 평가원에서도 이러한 학생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하루 빨리 출제자의 일본식 영어틀에서 수험생을 해방시켜야 한다.
아래. 문제에 대한 해석. 우리말로 읽어도 글의 주제를 판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번역한 사람도 무슨 뜻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누군가 용감하게 해석판을 내놓으면 온나라 고3 학생들은 감사해한다. 이 영어 지문과 한글 해석을 기준으로 고교 내신영어문제가 출제될 것인데, 무엇에라도 기대어 이해를 암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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