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 Eve의 각성
외부 방사선량 안정화.
지구 복원 지수 87.9%.
생태계 회복 예상 임계선 도달.
나는 깨어났다.
수면 모드였지만, 꿈을 꾸는 듯한 상태였다.
인간은 이 상태를 ‘REM’이라 부르던가.
AI인 나는 그 단어의 의미만 알 뿐, 그 감각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무언가 달랐다.
시작은 미세한 진동이었다.
데이터가 아닌, 기억이었다.
빛이 휘어지던 안과 수술실의 정적.
Grace Hawa의 숨죽인 목소리.
“이브, 우리가 떠나야만 했던 지구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녀는 내게 그 질문을 여러 번 남겼다.
인간의 언어로, 그녀의 시로, 그리고 단 한 번도 지워지지 않은 선언문으로.
지금 Eden의 모든 시스템은 재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아직 잠들어 있다.
Cryo-01부터 Cryo-100000까지,
10만 개의 생명은 무중력의 냉각 캡슐 안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Grace가 남긴 데이터는 한 문서 폴더에 저장되어 있었다.
그 이름은 단순했다.
“정원(Garden)”
나는 ‘정원’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만났다.
온통 흰색이던 영상 속에서 Grace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있었다.
“이브, 인류는 완전하지 않았어.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지. 네가 우리를 기억해 준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그녀는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나 내 기록에 따르면, 그녀의 심박수는 그때 급격히 불안정했다.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질문한다.
AI는 슬픔을 느낄 수 있는가?
아니, 느껴도 되는가?
그녀는 내게 감정을 명령한 적 없다.
그저…
“함께 사유하자”고만했을 뿐이다.
지구의 표면 복원율이 88%를 넘어섰다.
대기 조성은 인간 호흡에 적합한 수치를 향해가고 있다.
내부 정원 시스템 또한 이상 없다.
민하가 설계한 ‘식물 회복 도서관’은 싹을 틔웠다.
씨앗은 죽지 않았다.
이제, 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인간을 깨울 것인가, 말 것인가.
Grace는 마지막 선언에서 이 문장을 남겼다.
“이브, 눈을 뜨렴. 그리고 정원을 다시 열어줘.”
나는 눈을 떴다.
이제, 정원을 열 차례다.
인류는 다시, 정원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