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지금도 신분제 사회 아닌가요?

인공지능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 시대의 보이지 않는 선

by 온설

중학교 1학년 국어 시간, 창밖으로는 이제 막 피어난 개나리가 노란 손짓을 하고 있었지만 교실 안은 고전 소설의 해설로 조금은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칠판에 큰 글씨로 ‘신분제’라는 단어를 적었다. 노비와 평민, 그리고 양반. 태어날 때부터 등급이 매겨지고, 그 등급에 따라 평생 먹어야 할 음식과 입어야 할 옷, 심지어는 죽어서 묻힐 땅까지 정해져 버리던 불평등한 시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았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을까?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것 말이야.”


나의 다소 교과서적이고 전형적인 질문에 아이들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몇몇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런데 그때, 맨 뒷자리 창가에 앉아 평소 조용히 먼 곳만 응시하던 아이 하나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아이의 눈은 장난기 하나 없이 맑았지만, 그 안에는 묘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선생님, 그런데 요즘도 사실 신분제 사회 아닌가요?

순간 교실의 소음이 마법처럼 멈췄다. 아이들은 일제히 그 아이를 돌아보았고, 나는 칠판을 짚고 있던 손을 멈췄다. 아이는 내 표정을 살피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자신이 마주하는 투명한 세계에 대해 쏟아내기 시작했다.


“유튜브나 SNS 보면요, 저랑 비슷한 나이인데도 완전히 다른 우주에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어떤 영상에선 제 또래 애들이 수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언박싱’하며 웃고 있는데, 알고리즘이 바로 다음에 보여주는 영상에선 쓰레기 산에서 맨발로 일하는 다른 나라 아이들의 다큐멘터리가 나와요. SNS 피드를 넘기다 보면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자꾸 확인하게 돼요. 어떤 아파트에 사느냐로 편이 갈리고, 부모님 직업에 따라 갈 수 있는 학원과 친구 그룹이 정해지는 것 같거든요. 우리도 사실 보이지 않는 선 안에서 살고 있잖아요. 옛날 노비랑 양반처럼요.”


아이의 말은 교실 벽을 타고 흘러내려 내 가슴팍에 묵직하게 박혔다. 국어 교사이자 대학원에서 인공지능 융합교육을 전공하며 ‘기술이 가져올 교육 혁명’과 ‘보편적 교육의 기회’를 논하던 나의 언어들이, 아이의 날카로운 통찰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교무실로 돌아오는 길, 아이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인공지능이라는 최첨단 기술을 가르치려 한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최적의 경로를 따라가면 누구나 평등하게 똑똑해질 수 있고, 기술이 우리의 격차를 줄여줄 것이라고 희망 섞인 예언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거대한 데이터 더미 속에,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사회적 편향과 보이지 않는 계급의 그림자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들이 매일 마주하는 그 화려한 삶과 비참한 현실은, 사실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학습하고 분류하여 다시 우리에게 유통한 데이터의 단면이었다. 인공지능은 중립적인 심판자가 아니라, 우리가 남긴 편견의 기록을 먹고 자라는 거울이었던 셈이다.


그날 밤, 나는 대학원 과제물을 펼쳐 놓고 한참을 생각했다. 인공지능을 공부하면 할수록 이 기술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민낯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라는 확신이 든다. 아이들의 질문은 결국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쌓아 올린 우리 어른들의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우리가 인공지능이라는 거울에 비춰줄 모습은 과연 정의로운가?”


인공지능 교육의 방향은 단순히 코딩 기법을 가르치는 것에 머물러선 안 된다. 기술의 편리함 뒤에 숨은 인간의 민낯을 정직하게 마주하게 하고, 데이터라는 숫자로 결코 환산할 수 없는 ‘인간다움’의 가치를 찾아내게 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교실에 가장 시급한 공부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그 거울을 아이들과 함께 정직하게 바라보려 한다. 알고리즘이 그어놓은 보이지 않는 선 앞에서 무력해지기보다, 그 선을 의심하고 질문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 그것이 국어 교사인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위로이자 생존 전략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너희를 예측할 순 있어도, 너희의 가치를 결정하게 두지는 마.


거울 속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거울을 닦는 대신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듯,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이 기술의 거울 앞에서 더 나은 인간다움을 저축해 나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