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도 가깝지 못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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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사이가 좋지 않아진 것은
집에 아픈 사람이 한 명 있었고, 그래서 엄마는 언제나 집에만 있어야 했다.
자연스럽게 가족여행은 갈 수 없는 상황에 아빠가 친구들과 여름휴가를 갈 때면
언제나처럼 아저씨들 사이에 홀로 따라가는 동네의 막내딸이었다.
(그 덕에 지금도 어른들이 불편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이 끝나 학교를 가는 날이었고 언제나처럼 엄마와 아빠는 부부싸움이란걸 했다.
학교가 끝나고 컴퓨터학원에 가서 컴활2급의 필기수업을 듣고있었는데,
그 당시 잘 접히지도 않는 중고 폴더폰에 문자가 왔다.
급하게 집으로 갔을땐 마지막인사도 나누지 못한 나의 가족이 세상을 떠난 후였다.
마지막으로 했던 얘기가 '엄마 아빠 싸우지마' 라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난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론 둘의 사이가 거짓말처럼 좋아질 것이라고.
그 기억부터 시작인 것 같다.
내일이 없는 것 처럼 서로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주기 시작한 것이.
그 상처의 방향이 조금씩 내게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억은 내게 큰 상처이고 상처받은 난 그 모든 기억을 잊고 살 수 없게 되었다.
작은 상처들이 큰 상처가 되고 큰 상처는 더 깊은 상처가 되었다.
대학교 다니던 때엔 따로 살다보니 어렵거나 불편하지 않았고, 20대 초반에 직장생활을 할 때면 야근이 많아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몰랐다. 마음 한 구석에 생각보다 꽤 큰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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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결국엔 죽는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가 다를 뿐.
그래서 난 할 도리는 한다는 마음을 갖기로 했다.
어차피 나도 그도 죽을테고, 장담할 순 없지만 자연의 순리라면 나이가 많은 사람이 먼저 죽게 되어있으니
그가 죽을때 내가 후회하지 않도록 내 최선을 다 하기로 했다.
날이 더우면 커피를 사다주고, 어버이날이면 없는 돈을 털어 용돈과 선물을 주고, 필요한 것은 요청을 하지 않더라도 챙겨주었다. 그래서 사이가 더 좋아졌나? 그렇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난 그냥 내 할 도리를 할뿐.
이 생활이 몇년 지속되다보니 그가 당당히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요구는 언제나처럼 당당하고 뻔뻔하다.
그가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여질때면 그는 좋은사람이 아니라고 소리치고싶다.
그렇지만 그도 날 좋은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을수도 있겠지. 그래서 오늘도 입을 꾹 다물었다.
언제까지 이 마음으로 그를 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남들에게 하는 행동이나 마음 중 반 만 가족에게 쏟아달라 요구하는건 너무 큰 바람인가 ?
더이상 감정적으로 쏟아내지 않게 오늘은 이만 써야지.
진짜. 좋은 사람이 되고싶다. 저런 어른 저런 사람말고. 진짜 좋은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