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제주로 여행 중, 아들에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일반 번호로 온 전화였다. 아들은 모르는 전화라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탁, 야무지게 전화를 받았다.
예, 예, 네, 제가 신고했는데요, 엄마 바꿔드릴게요,,
- 엄마, 전화받아봐, 경찰서래
나는 보이스피싱이라고 직감했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전화기 버튼에서 스피커를 켰다. 사실 그냥 무시하고 전화를 끊을 수도 있었지만 '이거시 보이스피싱이다'라는 걸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차갑고 도도한, 교양 있는 목소리로
- 네, 전화받았습니다
했다.
- 네, 여기 ** 동부경찰서 교통사고팀입니다.
보이스피싱이 틀림없었다.
- 그런데요?
- 아드님이 7월 16일 밤에 음주운전 신고를 하셔서요, 보상금 지급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이게 무신 일??
그날은 6시 학원 끝나고 9시가 넘었는데도 오지 않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던날이었다.
- 엄마, 여기 1단지 앞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119오고 난리 났어. 구경 좀 하고 금방 들어갈게
- 이 녀석, 뭘 구경해! 빨리 와
나는 아들에게 엄하게 얘기했고 그날 사고에 대해서는 잊어버렸었다.
알고 보니 그날 밤, 아파트 단지를 자전거를 타며 돌아다니다가 꽝, 소리를 듣고 지루했던 초딩녀석들은 사고지점으로 달려갔단다. 과연 어떤 차 한 대가 아파트 입구에서 도로에 세워진 기둥을 들이받아 차도 박살이 나고 기둥도 쓰러져있었다고 했다. 그 차는 도망치려고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갑자기 후진을 하고 막 가려고 하는데 지나가는 아저씨가 차로 다가와 괜찮냐고 했다고 한다. 그때서야 운전석에서 비틀거리며 어떤 여자가 나왔다고 했다. 운전자가 계속 웃고 있어서 음주운전인걸 직감했단다. 똘똘하다. 우리 아들!
아들은 곧바로 112에 전화를 했단다.
- 여기 **아파트인데요, 음주운전으로 사고가 났어요
친구들은 우왕좌왕하며 구경하기 바빴지만 우리 아들은 오지랖 넓게 112에 신고까지 한 것이다. 그 후 확인 전화가 오고 119에서도 아들에게 위치를 묻는 전화가 몇 통 왔고, 아들은 친절하게 사고 상황을 생생하게 중계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사고차량 보험회사에서 음주운전 신고 전화한 사람에게 포상금 제도가 있다며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삼성화재에 연락처 넘겨줘도 괜찮냐고, 보호자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전화였다.
우리는 완전 땡큐죠, 하며 연락처를 넘겼고, 잠시 후 정말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다.
- 저희 보험사에서는 음주운전 신고 포상금 제도가 있어서요, 정말 얼마 안 되는 보상금입니다만
우리는 그 돈이 그러니까 도대체 얼만데,,, 안달이 났다.
- 22만 원입니다, 정말 얼마 안 됩니다.
와우, 우린 꽁돈이 하늘에서 떨어진 듯 쾌재를 불렀다. 꼬맹이 아들이 난생처음 자기 힘으로 돈을 번 날이었다.
- 엄마, 나 돈 받으면 친구들이랑 컵라면 사 먹게 돈 좀 주라
- 그래, 20만 원은 저금하고 남은 2만 원 줄게
- 아싸!!
아들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신이 났다. 우리 가족 모두 더운 제주에서 모처럼 엉덩이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