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떠난 그대에게 행운이 있기를

안데르센 <엄지공주> 깨부수기

by injury time

나뭇가지에 바람이 불면 숲 속 곤충들이 기지개를 켭니다.

강아지풀 위에서 그네를 타던 방아깨비 아주머니는 아기 방아깨비를 등위에 매단 채 폴짝 뛰어 자주괭이밥 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요. 땅 속 미로에서 하루 종일 술래잡기를 하던 일개미 삼촌들도 오늘 숲 속 티타임에 갈 채비를 합니다. 엄나무 가지에서 꾸벅꾸벅 졸던 된장잠자리 할아버지들도 졸린 눈을 비비며 전나무 그루터기가 있는 언덕에 모입니다. 나뭇잎 그늘에 숨어있던 민달팽이 아가씨가 느릿느릿 한참을 걸어 찾아왔어요. 나무 꼭대기 가장 높은 곳까지 날아 매일 사랑의 노래를 부르던 매미 총각은 드디어 매미 아가씨를 만난 것 같아요. 사랑을 나누느라 약속 시간에 늦었지 뭐예요.

이제 언덕 위 전나무 그루터기에 숲 속 곤충들이 모두 모였답니다.

- 오늘 어떻게 지냈어? 날도 더운데?

방아깨비 아주머니가 아기 방아깨비를 내려놓으며 말했어요.

- 난 하루 종일 시냇가 수초 위에서 쪽잠을 자며 보냈어.

고추잠자리 아줌마가 눈곱을 때며 말했어요.

- 아참, 시냇가 옆 오두막에 길고 예쁜 머리칼을 한 귀여운 아가씨가 살던데 다들 봤나요?

쇠똥구리 새색시가 쇠똥을 굴리다 말고 호들갑을 떨어요.

- 맞아, 맞아. 그 집 아카시아 꿀이 맛있어서 꿀 따러 갔다가 봤어. 이름이... 엄지공주래지. 너무 여리고 작아 보살펴주지 않으면 하루도 못 산대.

호박벌 아저씨가 윙윙 날갯짓을 하며 말했어요.

- 맞아. 엄지공주 엄마가 밤이고 낮이고 엄지만큼 작은 엄지공주 걱정뿐이래요. 너무 여리고 약해서요.

- 세상에나, 그렇게 예쁜 애가 엄지만 하다고? 가엾어라.

땅강아지 할머니가 땅속에서 기어 나와 훌쩍였어요

- 엄지공주는 답답하겠네. 친구들은 모두 학교도 다니고 도시로도 가는데, 자기만 홀로 호두 껍데기에서 자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 도시는 위험해. 숲에서 우리랑 살면 좋겠다.

된장잠자리 할아버지가 손사래를 쳤어요. 연꽃잎에 모아둔 새벽이슬을 한잔씩 마시며 곤충친구들은 엄지공주를 걱정했지요.

그때, 구석진 곳에 있던 풍뎅이 총각은 아까부터 새벽이슬을 눈앞에 두고도 마시지도 않고 아무 말이 없어요.

- 내 사랑하는 엄지공주.

풍뎅이 총각은 아무도 몰래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었어요. 노을빛을 받아 풍뎅이 총각 등짝에 무지개가 반짝였어요.

- 우리 곤충들이 엄지공주를 지켜줍시다. 외로운 엄지공주를!

숲 속 곤충들은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각자의 보금자리로 떠났어요.


풍뎅이 총각만이 엄지공주가 자고 있는 방의 창문가에 숨어 어여쁜 엄지공주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지켜봤어요.

그때 쥐똥나무 사이에서 두꺼비 영감이 풀썩 엄지공주가 자고 있는 방 창가로 뛰어 올라갔어요.

- 우와, 예쁜 여자애네. 우리 아들 색시로 삼아야겠다.

두꺼비 영감은 살금살금 기어가더니 엄지공주의 호두 껍데기 침대를 훌쩍 들어 연못 진흙탕으로 데려갔어요. 풍뎅이 총각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 너무 놀라 안절부절이었어요. 두꺼비의 온몸에는 독이 있다고 들어서 선뜻 다가갈 수가 없었어요.

- 엄지공주, 엄지공주, 제발 잠에서 깨어나요. 도망쳐요

풍뎅이 총각은 두꺼비 진흙탕으로 쫓아가서 엄지공주를 구할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했어요.

- 이렇게 예쁜 여자애랑 우리 아들이 결혼하면 아기도 색시 닮아서 예쁜 아기 두꺼비가 태어날 거야. 우리도 이제 예쁘고 멋있는 두꺼비로 살아보자고!

두꺼비 부자는 잠든 엄지공주를 연못 한가운데 연꽃 위에 올려놨어요. 도망가지 못하게요.

당장 데려오고 싶었지만 풍뎅이 총각은 연못 안까지 날만큼 튼튼한 날개를 갖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렸어요.


아침이 되었어요. 게으른 두꺼비 부자는 아직도 쿨쿨 아침잠을 자고 있어요. 잠에서 깨어난 엄지공주는 연못 한가운데에 갇혀버린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엉엉 울기만 할 뿐이에요. 그때 수초 사이를 기웃거리던 고추잠자리 아주머니가 엄지공주를 발견했어요.

- 어머, 엄지공주. 왜 여기서 울고 있어요?

고추잠자리 아주머니는 엄지공주를 훌쩍 들어 날았어요. 하지만 잠자리 아주머니도 엄지공주를 들기에는 날개가 너무 약해서 금세 힘이 빠지고 말았어요.

- 엄지공주, 더 이상 못 날겠어요.

잠자리 아주머니는 그만 엄지공주를 연못에 빠뜨리고 말았어요. 수영을 하지 못하는 엄지공주는 물속에서 허우적댔어요. 그때 소금쟁이 삼 형제가 나타났어요. 잠에서 깬 두꺼비 부자도 폴짝 뛰어 엄지공주를 잡으러 쫓아왔구요.

- 엄지공주님, 저희만 믿으세요.

소금쟁이 삼 형제는 물에 빠진 엄지공주를 건져 연못가로 안전하게 데려다주었어요. 풍뎅이 총각이 달려와 두꺼비 영감 눈앞에서 날갯짓을 하며 앞을 가로막았어요. 두꺼비 영감이 풍뎅이 총각을 긴 혓바닥으로 감싸 잡아먹으려고 날름거렸어요. 그러는 사이 두꺼비 부자는 허둥지둥 쇠똥구리네가 파놓은 쇠똥 구덩이에 그만 빠지고 말았어요.

- 하하하. 두꺼비들이 쇠똥에 빠졌어!

곤충친구들은 환호성의 박수를 쳤어요.

풍뎅이 총각이 후다닥 얕은 날갯짓으로 엄지공주에게 달려갔어요. 엄지공주는 물에 빠져 온몸이 젖은 채 쓰러져 있었어요. 풍뎅이 총각은 부드러운 풀밭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엄지공주를 편안히 눕혔어요. 일개미 삼촌들이 달려와 접시꽃 잎으로 이불을 덮어주었어요. 방아깨비 아주머니도 아기 방아깨비를 업고 달려와 엄지공주의 머리맡에 달콤한 참외 조각을 놓고 갔어요. 호박벌 아저씨도 꿀단지를 가지고 엄지공주를 찾아왔어요. 풍뎅이 총각은 엄지공주를 정성껏 돌봐주었어요. 엄지공주는 점차 기운을 차렸어요.

하지만 며칠전 일로 두꺼비 독이 온몸에 퍼진 풍뎅이 총각은 딱딱한 등딱지가 흐물흐물해지며 점점 힘이 빠지고 말았어요.

- 엄지공주, 그동안 당신과 있어서 행복했어요. 전 안되겠어요. 당신을 이제 지켜줄 수가 없네요. 혼자 잘 지낼수있죠? 사랑...했...

총각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 어떻게 해. 풍뎅이 총각이 두꺼비 녀석의 독이 온몸에 퍼져 무지개다리를 건넜대.

지켜보던 민달팽이 아가씨도 울음을 터뜨렸어요. 홀로 남겨진 엄지공주는 풍뎅이 총각을 그리워하며 하루 종일 꽃잎에 파묻혀 지냈지요. 엄지공주는 풍뎅이 총각이 마지막으로 따온 보리수를 먹으며 총각을 그리워했어요. 그리고 결심했어요.

- 이제부터는 다른 곤충들이 나를 지켜주기보다 나 스스로 살아남을 거야. 나 때문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풍뎅이 총각을 위해서라도 내가 씩씩해져야 해.

엄지공주는 남은 보리수를 몇 개 챙겨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했어요.

- 내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먼저 수영부터 배우는거야!

엄지공주는 더 이상 공주가 아니라며 긴 머리를 질끈 묶고, 구두 대신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이고 씩씩하게 숲을 떠났답니다. 어느덧 엄지공주는, 아니 엄지는 부쩍 키가 커져 있었어요. 멀리 나뭇가지에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어요. 곤충들이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들며 조용히 행운을 빌어주었습니다.


오늘로 브런치 입성 딱 4개월차입니다. 4개월차 기념으로 공모전도 도전!
처음 써보는 동화,
입술을 요렇게 뾰족하게 오므리고, 고개를 45도로 기울인채, 연신 한쪽 귀에 머리카락을 꽂으며, 예쁘게 예쁘게 썼습니다.
4개월동안 무사히 인저리타임으로 살아남은거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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