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한... 20년 만에 다시 쓰는 중이다. 브런치에 들어와서 마주한 단편소설들은 그동안 내가 썼던 소설들에 비해 가볍고 발랄하고 재치 있고 엣지있는 글들이었다. 과거에 썼던 내 글들을 찾아보았다. 죽음, 생명, 비리, 진실, 거짓, 배신.. 이런 것들을 뭉쳐놓은 글들이었다. 물론 젊은 시절 쓴 소설들이니 거창한 메시지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것 같다. 마치 계몽소설처럼. 풋..
브런치의 소설들을 읽으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반전, 반전, 반전.. 독자가 읽고 '아뿔싸' 할 수 있는 반전 있는 엣지로 다시 한번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차에 브런치 어느 작가분이 추천해주신 김애란 作 '바깥은 여름'을 사서 읽으며 내가 그동안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깥은 여름'은 2014년부터 문학잡지에 실린 김애란 작가의 작품을 모아 한 권의 단편소설집으로 만든 것이다. 대부분 수록된 소설 중에 제일 눈에 띄는 소설을 책 제목으로 다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전혀 새로운 책 제목이어서 처음 읽으며 잠깐 놀랐었다. '바깥은 여름'이란 소설은 없는데??
책을 다 읽은 후 왜 책 제목이 '바깥은 여름'인지 알게 되었고, 읽는 내내 마지막 장을 계속 살피며 책이 끝나지 않길 바라며 읽었다. 그리고 아쉬운 마지막 장을 넘기며 정말 오랜만에 책을 품에 안고 침대에서 구르며 여운을 오랫동안 만끽 했다.
김애란 소설에는 대단한 반전이나 스토리가 있지 않다. 그저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렇다고 평범한 일은 아니지만 한 번쯤 주변에서 겪었을 법한 일, 이를테면 잘 키우던 아이가 유치원 버스에 치여 하늘나라로 간 사연, 유기견이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소년 이야기. 취준생 애인에 관한 이야기 뭐 이런 거.
김애란 작가는 평범한 소재의 줄거리를 너무나도 빛나는 서술로 표현하고 있었다. 너무나 단순한 스토리인데도 맛깔스러운 표현, 주고받는 대화들에 우리의 일상이 느껴지며 등장하는 인물들을 모두 사랑하게 만드는 마법이 있다.
좋은 표현에 줄을 긋는 내 습관은 책에 쉴 새 없이 줄을 긋다 못해 한 페이지를 다 동그라미 쳐놓기도 했다.
순간 어디선가 영우가 다다다다 뛰어와 두 팔로 내 다리를 감싸 안을 것 같았다.
없던 일로 하자는 거야?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울지 않을 도리가 없는 열 살이 됐다.
늙는다는 건 육체가 점점 액체화되는 걸 뜻했다.
나중에 커서 언젠가 이곳을 떠나게 되면 그때 나도 휴게소에 들러 커피나 한잔하려고
도화 역시 이수의 담백하게 마른 몸과 은은한 막걸리 향이 나는 겨드랑이, 장난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 딱딱해지는 팥알만 한 젖꼭지를 좋아했다.
어느 화제든 상대의 진심도,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 태도가 담백하고 노련했다.
암이라니, 참 전형적으로 사신다....
밤새 읊으고 싶은 그녀의 빛나는 표현들은 내 가슴에 콕 박혀 씹어먹고 눈에 넣고 내 살과 뼈로 만들고 싶을 만큼 멋지다. 대체 이 작가는 누구인가.
1980년대생으로 잘 나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단다. 이 부분에서 깨갱. 이효석문학상, 신동엽창작상, 내가 좋아하는 김유정문학상 등등 유수의 문학상은 모두 섭렵하고 온라인 서점 아마존이 선정한 이달의 책 소설 부문에 그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이 올랐다고 한다. 또 깨갱. 그리고 흐뭇.
김애란 작가의 모습은 팩폭을 날리자면 일본에서 오래 산 재일교포처럼 생겨서 조금 아쉬웠다. 또 '두근두근 내 인생'이란 소설도 그렇고 이 '바깥은 여름'에 수록된 소설들의 제목도 그렇고 글의 아름다운 디테일에 비해 내가 느끼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제목들이다. 물론 '바깥은 여름'이란 제목은 완전 백퍼 완벽한 제목이지만.
단편소설은 줄거리도 중요하지만,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그중 제일은 작가의 문장력이었다.
나보다 일곱 살 어린 김애란 작가님. 정말 만나면 양볼을 꼬집어 입을 뾰족하게 만들어 입 맞추고 싶다. 어쩜 이리 잘 쓰는지 대견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