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존경하는 그레이프 작가님의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리뷰를 읽으며 늘 따뜻하게 영화를 품으시는 그가 이 포스터만 봐도 극강의 공포스러운 영화를 '가족애를 다룬 따듯한 영화'라고 했는지 궁금해졌었습니다. 과연 나도 작가님과 같은 시선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한낮부터 영화를 결재하고 거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필 그날은 제가 집안의 모든 소리가 소음으로 들릴만큼 유난히 까칠했던 날이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연이어 2편까지 꼬박 앉아서 숨죽이며 감상했습니다. 이 영화는 참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영화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운드가 거의 없거등요.
미국 영화가 대부분 그러듯이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과 궁극에는 희망으로 마무리되는, 잔인하게 표현하자면 비슷비슷한 룰을 가지고 있는 흥행을 위한 흥행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감독이 관객을 쥐락펴락 가지고 논단 말입니다. 처음 기획에서부터 '소리 없이 조용히'가 콘셉트이었고, 저는 보란 듯이 감독의 기획력에 놀아나 소리 없이 조용히 화면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갔습니다. 약병 하나 드는 것도, 주사위 놀이도 소리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해내는 극 중 인물들과 같이 호흡하며 영민한 청각을 곤두세우며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그날은 또 제가 유난히 소음에 민감한 날이었거든요.
이 영화는 감독 존 크래신스키가 아빠 역할까지 소화해낸 영화이고 1편, 2편 모두 존 크래신스키가 감독을 했습니다.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아서 제작된 영화들이 대체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에 비해, 꽤 집중하고 저들을 따라서 조용히 보게 되는 마법이 있더라고요. 얼마 전 진샤 작가님이 쓰신 '밤은 침묵을 장단으로 소란스럽다'에서 느꼈는데요, 작품을 어떻게 풀어내냐에 따라 관객이나 독자가 리듬을 타듯 연출된 의도에 취해 마법에 걸리더라고요. 저는 이 영화도 그렇게 마법에 걸린 듯 취해서 팝콘 하나 씹지 않고 감상했습니다. 시리즈를 앉은자리에서 연이어 쭉 보니, 좋았던 점은 1편, 2편이 잘 어우러져있어 끊기지 않고 감정선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끝까지 본 후 이 영화는 그레이프 작가님이 말씀하신대로 따듯한 휴먼 드라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조금 괴상한 괴물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면서 사람들을 죽이지만 별로 무섭지 않은 휴먼 드라마입니다. 영화 ‘투모로우’나 ‘딥 임팩트’, ‘설국열차’처럼 그냥 인류애를 다룬 드라마처럼 느껴졌습니다. 늘 자주 강렬한 영화를 보아왔던 저에게 앞에서 말한 영화들이 감동 주는 드라마로 느껴졌다는 건 조금 민망한 일이긴 합니다만. 저 정도의 자극은 액션으로도, 스릴로도 느껴지지 않았다니, 제 감정선이 무척 튼튼한가 봅니다.
2편의 시작은 특이하게도 1편의 시작 저 넘어에까지 가있습니다. 왜 이 에어리언 같은 '이상한 괴물'이 나타났으며 처음 시작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말해줍니다. 이때 이 괴물이 외계 생명체라는 걸 알았습니다. 사실 그것도 관객의 추측입니다. 평범한 어느 날, 하늘에서 유성 같은 것이 떨어지고 동시에 괴생명체가 나타나 소리 나는 것들을 다 때려 부수니까요. 생각해보니 참 불친절한 영화 내요. 하고자 하는 말이 너무 많아 후에도 자잘한 것들은 설명으로 처리하고 관객의 상상으로 떠넘기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감독의 의도인지, 보는 내내 감독과 함께 같이 뛰어넘어 화면과 발걸음을 맞추게 되더라고요.
1편에서는 극도로 소리 없이 눈빛과 수화로만 진행되며 아이를 임신한 엄마가 출산할 때 어쩔 수 없이 소리가 새어 나오는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는가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2편에서는 땅속 은신처에서 조금씩 대화를 이어가지만 신생아의 문득문득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산소통에 의지하며 괴물로부터 숨어 지내야 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저도 같이 호흡을 아껴가며 보았습니다.
외계 생명체는 알고 보니 수영을 할 수 없고 그래서 정부에서는 섬으로 피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감독은 불친절하게도 전혀 정부에 대한 이미지를 보여주지도 않고 외계인을 피해 도망쳐 섬으로 모여든 사람들만 제시합니다. 영화상 위기의 스토리는 당연히 '안타깝게도 배가 몇 척 없는 상황'이었고, 자기만 살아남겠다고 서로 싸우며 배를 타려 했던 지극히 평범한 시민들이 있었다는 걸 대사처리로 보여줍니다.
저라면 어땠을까요? 또 주인공 가족이었으면 어땠을까요? 저 역시도 우리 가족, 나만 생각하고 유일한 탈출 수단인 배를 향한 강한 집착을 보이지 않았을지,
하지만 감독은 그들을 인간성을 상실한 자들로 뭉뚱그려 치부한 건, 조금 섭섭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그렇게 생겨먹었으니까요. 어떠한 해결책도 없이 모두 희생(?)당하고 주인공 가족만 살아남아 외계인을 처치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그레이프님은 엄마(에밀리 블린트)가 그 와중에 임신과 출산을 한 것에 대해 가족애라는 큰 의미를 부여하셨지요. 존 말코비치의 '태양의 제국'에서 보면 포로수용소에서 얇은 커튼 하나로 방을 구분해 놓고 지내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섹스를 하고 사랑을 합니다. 이 영화 1편에서 외계 생명체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엄마인 에밀리 블린트가 임신한 상황도 아마 포로수용소의 그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몸과 마음이 얽매여있지만 그래도 그 삶 속에서도 인간다운 감정이 있고 또 꾸역꾸역 살아갑니다. 극도의 긴박감을 관객에게 던져준 '임신과 출산'은 감독의 참신한 스토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제작할 당시 처음 기획했던 '소리 없는 공포' 전개가 2편에서는 약간 퇴색되었던 것 같아 아쉽기는 했습니다. 1편에서는 너무나 푸르른 대지가 눈을 휘감았지만, 2편은 공장지대의 먼지 쌓인 기계들과 어두운 항구의 부랑아들이 화면을 채웁니다. 여러 인격 상실의 단면들을 보며 외계 생명체를 뚫고 뚫고 섬에 있는 라디오 스튜디오에 도착한 큰딸 레건은 아버지가 우연히 만드신 보청기의 신호음이 외계 생명체에게는 치명적인 소리라는 걸 알아내고, 라디오를 통해 여러 곳으로 소리를 전파합니다. 결국 외계 생명체는 고통스럽게 죽거나 사라집니다.
소리가 외계 생명체에게는 치명적이라는 스토리는 이미 어느 영화(제목이 기억 안 나요ㅠ)에서 나온 얘기라서 별로 특별할 건 없었습니다. 1편에서부터 계속 딸의 보청기를 소재로 다루고 있었거든요. 다만 소리 없이 스토리를 끌고 가고, 게다가 청각장애를 가진 큰딸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관객이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한다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충분히 감독에게 즐겁게 놀아나도 좋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신선하고 조마조마하고, 여러 희생을 통한 인류애로 살아남은 끈질긴 가족의 영화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생존자들이 남은 외계 생명체를 어떻게 무찌를지 기대되며 3탄은 조금 더 잔인하고 신박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취향을 밝힙니다.
영화를 모두 감상하고 난 후 까칠했던 제 귀가 편안해지며 작은 새소리, 음악소리,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평화롭게 들리는 신기한 경험은 감독이 주는 마지막 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