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이들 혼내는 건 왜 꼴 보기 싫을까요?

by injury time

모처럼 가족들이 식탁에 모였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큰아이가 학원 갔다 와서 늦은 저녁을 먹을 때였다. 남편이 큰 아이를 위해서 고기를 굽고 작은 아이와 나는 젓가락을 들고 고기 구워지기만을 기다린다.

"엄마, 나 우울해"

큰 아들이 고기 접시를 의식 없이 휘저으며 말했다.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매년 학기 초면 찾아오는 아들의 우울증. 나는 애써 별 일 아닌 척 아이 등을 툭 쳐본다.

"왜 그래? 이제 겨우 원격수업 끝나고 학교 갈 수 있어졌는데?"

아이는 내 손을 거칠게 툭 치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나는 당황했지만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한번 아이에게 웃으며 말을 건다.

"이번 주 주말에 기분 전환할 겸 아울렛이나 가자. 봄옷이나 사게"

아들은 못 들은 척 맛없게 고기를 씹어 먹는다.

"뭐? 어딜 가?"

가스레인지 앞에서 고기를 굽던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남편은 손에 들고 있던 뒤지개를 내팽개치고 큰아이에게 달려든다.

큰아들이 젓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소리친다.

"짜증 나!"

"너 뭐라 그랬어? 이것들이 삼시세끼 고기 구워 차려주니까 배가 불러 그러지!"

남편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려는 아이 팔을 붙잡으며 윽박을 지른다. 둘은 서로 할퀼 듯 손을 부르르 떨며 맞선다. 아들이 먼저 아빠 손을 뿌리치며 눈물 한 방울..

남편이 급기야 식탁 위에 있던 과일 봉지를 집어던지고 아들은 식탁 의자를 발로 걷어차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던 작은 아이는 울며 소리를 지른다.

"그러지 마. 나 싸우는 거 싫어."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사람처럼 구워진 고기를 작은 아이 그릇에 올려 주며 얼른 먹으라고 달랜다. 작은 아이가 그만 먹는다고 하길래 자기 방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음악을 크게 켜고 침대에 드러누워버렸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남편이 안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는다.

"미안해.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모르겠어. 애한테 사과하고 왔다. 걱정하지 마"

남편도 흐릿하게 눈시울이 젖어있다.

"아이가 우울하다는데 부모로서 모른 척 한 내 잘못이야. 오랜만에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느라 힘들어서 그랬을 텐데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것 같아."

나와 남편은 서로를 위로하며 다시 거실로 나왔다. 조금 전에 뒤집어엎은 것들로 주방과 식탁, 거실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약간 짜증이 났지만 말없이 정리를 하고 있는데 식탁 위에 작은 쪽지를 발견했다.

작은 아들의 쪽지다. ㅋㅋㅋ

3시가 어쨌다는 거지?

언뜻 해석이 안 되는 쪽지...

그러다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삼시세끼 챙겨줘서 고마워

그리고 음식 맛있어

** 올림

뒤에 봐

이제 형이랑 화해 좀 해줘


작은 애는 역시 귀염둥이다. 글씨도 삐뚤빼뚤 맞춤법도 엉망이었지만 개떡 같던 내 기분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큰아이도 하루 만에 기분이 되돌아왔는지 공용전동킥보드를 타며 봄을 즐겼다. 17년째 자식을 키우지만 아이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알다가도 모를 일은 하나 더 있다. 평소에 내가 아이들을 혼낼 때는 더욱 무섭게도 혼내기도 하는데 남편이 아이들을 혼내면 왜 그렇게 남편이 꼴 보기 싫은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훈육은 내 권한인데 남편이 나서서 왈가왈부해서 그러나 싶기도 하다. 아니면, 아이들이 내 소유라고 생각하는데 남편이 내 새끼들한테 화를 내는 꼴을 못봐서 그런가? 우리 아이들은 남편과 나 사이에서 태어난 친자식이 맞는대도 말이다.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이 잘못한 건 생각 안 하고 남편에게 화살이 돌아가곤 한다. 남편도 내가 아이들을 혼낼 때 이런 기분일까?

아무튼 우리 작은 아들도 그렇게 울고불고하더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자기 방에서 똬리를 틀듯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에 한창이다. 원격수업 덕분에 컴퓨터가 익숙해진 아들은 이제 아예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실로 나오질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집 작은 아들은 철부지에 마냥 아무 생각 없이 인생을 즐기는 아이이다. 한마디로 행복지수가 우리 가족 중에 제일 높다. 맞춤법을 자주 지적하면 쓰기에 두려움이 생긴다고 어느 교육자가 말하기에 한글만 겨우 가르쳐놨다. 그래서 아직까지 우리 아들은 맞춤법이 이 지경이다.ㅠ 막내는 타고나길 막내로 태어났나 보다. 언제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만큼 항상 마음 편하게 놀고먹는다. 작년엔가는 학교에서 수학 시험지를 가져왔는데 우리 가족은 배꼽을 잡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모르는걸 빈칸으로 놔두지 않고 뭐라도 쓰는 것에 칭찬을 해야하나?

자식은 부모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되뇌이며 욕심을 내려놓고 자식이 행복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끔 말 안듣는 자식들보다 남편이 더 꼴보기 싫을 때가 있지만 자식들은 귀엽기는 하지 않턴가. 가끔 맞춤법 엉망인 쪽지가 기운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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