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적이 있습니다

살아남았습니다.

by injury time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아이들 양육 뭐 이런 걸로 글이 채워지리라 생각했는데 전 참 깝깝한 사람이군요.


어쨌든 저는 자살한 적이 있습니다.

아니 자살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건 아주 가까운 사람들도 몰랐던 일일 겁니다.

지금에서야 30년이 지났는데 이야기하는 건 좀 전에 라이킷 한 글에서 자살을 검색해 본 분이 계셔서 자살시도를 해본 사람으로서 경험담을 말씀드립니다.

어쨌든 실패한 자살 경험담입니다.

30년 전, 그러니까 대학 들어가 1학년 겨울방학 때쯤으로 기억합니다. 동생이랑 자취를 했습니다. 대충 말하자면 부모님이 지방으로 직장을 옮기셔서 동생과 내가 이모네 옆집으로 사는 곳을 옮겨 지냈습니다. 스무 살, 부모님 엾이 동생이랑 사는 삶은 어떨까요? 자유로웠고 개판이었고 외로웠습니다.

대학 들어와서 처음으로 한 미팅에서 알게 된 첫사랑 남자애를 심하게 짝사랑 했고, 또 외로움에 누군가랑 사귀고 있었습니다. 그 누군가랑 정말 헤어지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돼서 벗어나지 못하고, 진짜 사랑은 손에 잡히지 않고... 그러던 어떤 날, 죽어야겠다 생각한 듯합니다.

아주 편하게 눈이 안 떠지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수면제로 결정하고 약국마다 다니면서 '잠이 안 와요' 하며 수면제 10알씩을 샀습니다. 그때만 해도 약국에서 수면제를 쉽게 샀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10알 이상은 안 팔았던 것 같습니다. 100알이 목표였는데 너무 마음이 급해서 60알만 모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집으로 와서 그 약들을 한알 한알 입에 넣었습니다. 폭신한 이불을 깔고, 가지고 다니던 작은 수첩에 뭐라 적긴 했는데 뭐 '잘 살아'정도로 몇 자 안 되는 유서 같은 거였습니다. 죽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도 없더라고요. 남들에게 구질구질한 내 상황을 알리기도 싫었고요. 그냥 남들도 죽기 전에 꼭 뭔가를 쓰길래 몇 자 시도 하다다 그냥 볼펜을 던져버렸지요.

60알 약을 다 삼키고 누웠는데 옆집 동갑내기 사촌 남자애가 내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내가 죽으면 누군가 발견하라고 일부러 현관을 안 잠근 게 화근이었습니다. 그 놈이 귤 한 봉지를 사들고 와서 눈치 없이 수다를 떱니다. 나는 슬슬 기운이 빠지는데 그 녀석, 이 얘기 저 얘기하면서 사가지고 온 귤을 까 연신 입에 넣으며 한가하게 노닥거리더라고요. 저는 댓꾸할 상황이 아니었어요. 졸리다니까 사촌이 그제서야

"잘자라"

하며 귤 봉지를 내 옆에 두고 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 진짜 죽었으면 그 녀석 꽤 난처했겠습니다.

'이제야 편하게 죽겠구나'

나는 이불 속으로 푹 잠겨 눈을 감았습니다. 금새 몸이 정말 이불 속으로 잠기다 못해 땅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몸이 땅으로 빨려 들어간다기보다 영혼, 정신이 자꾸 땅으로 하염없이 가라앉는 느낌이었어요. 아마 무덤에 갇히면 그런 느낌 일듯 싶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데 집체 만한 검은 어떤 것이 온몸을 누르는 듯했습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며 온몸이 터질 것 같았어요. 몇십 분이나 지났을까? 편하게 자면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아니었어요. 그냥 너무 고통스러워서 딱 죽겠더라고요.

어떻게 엄마한테 전화했는지 모르겠어요.

"엄마, 나 약 먹었어."

여기까지 기억나고 정신 차려보니 병원 응급실.

간호사들이 '약 먹었대' 이렇게 수근덕거리는 걸 들은 것 같기도 했어요.

"정신 드세요, 환자분?"

나를 옆으로 누이고 입에 뭔가를 집어넣고 계속 토해내게 하더라고요. 전 모로 누워 그 무용지물인 수면제를 다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부모님도 저에게 아무 이야기도 묻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빠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계셨어요. 애써 부모님은 딸 자삭이 일부러 죽으려고 약 먹은 게 아니라 잠이 안 와 수면제를 좀 많이 먹어서 그런 거라며 위안 삼으며 사건을 정리하셨습니다. 다행히 사귀던 그 어떤 놈하고는 그 후로 쉽게 정리가 되더라구요.


그 후로 우리 가족은 그 사건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네요. 저도 30년 만에 처음 꺼냅니다. 잠이 너무 안 오는 오늘이라서.


자살은 힘들지 않은 게 없는 거 같습니다. 간단하게 수면제 먹으면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웃으며 죽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꽤 괴롭고, 자살의 다른 방법들은 심하게 훼손 되어 죽으니 뭐... 아름다운 자살은 없나 봅니다.. 아, 어떤 화초를 가득 가져와 방 안에 놓고 자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던데..

모쪼록 좀 전에 읽었던 브런치 작가님, 자살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듯합니다. 뭐 뻔한 말 같지만 그 불끈 용기 꼭 필요한데 쓰시기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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