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대부분 30년을 넘게 살다가 결혼 후 경기남부 집값 싼 곳에 정착한 지 17년째이다.
결혼하고 삶이 180도 바뀌었다. 그중 하나가 먹거리였다. 처음 본 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결혼 후 첫 여름에는 오디를 따먹었다. 오디는 한주먹 입에 털어 넣어야 한다며 남편은 오디나무에서 깨끗하고 토실토실 잘 익은 오디를후후 불어 티끌 하나없이 내 손바닥에 가득 올려주었다. 딸기나 포도나 블루베리도 아닌 것이 달콤하고 검은 보랏빛 맛이 좋았다. 많이 먹으면 혓바닥과 손톱 끝이 온통 검보랗게 된다.
다음으로 먹어본 것은 보리수. 보리수는 체리처럼 생겼는데 체리보다 좀 길쭉하다. 보리수는 안에 씨까지 씹어 단물을 빼먹으면 달콤함이 더해진다. 일반 보리수는 뱉에 낼 정도로 떫은데 어느 날 남편이 자전거 타고 다니다가 발견한 산밑 어귀에 있는 보리수는 정말 통통하고 달아서 초여름이면 그곳으로 가서 남들보다 제일 먼저 달콤한 보리수를 맛보곤 했다.
그리고 오늘 이 글에 소개할 야생열매. 으름!
이것도 난생처음 보고, 처음 들어본 열매 이름이었다.
이름도 참 애매하다. 으름!
가을이 깊어지면 남편은 나를 데리고 산밤을 주으러 다녔었다. 나는 그냥 말벗하러 따라다닌다. 허리 숙여 밤 줍는 것도 힘들고 밤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필요하면 마트에서 굵은 걸로 사 먹으면 된다는 생각이지만 남편은 끝내 나를 끌고 산속으로 들어가 굵은 밤을 발견하며 한없이 흐뭇해 한다. 나는 필라어글리슈즈에, 스키니진에, 형광 아노락을 걸치고, 별다방 아아를 쪽쪽 빨며 남편의 밤 줍기가 끝날 때까지 귀엽게(?) 쫑알쫑알 떠들며 기다려준다.
밤을 줍다가 발견한 으름!
골드키위처럼 생겼는데 익으면 반으로 벌어지는 야생열매. 으름!
오늘 그 으름을 따왔다. 깊은 산속에 멧돼지 진흙탕이 이곳저곳에 있는 인적이 드문 그런 곳. 으름은 대부분
개울이 흐르는 곳 근처에 서식하는 덩굴식물이다.
고개를 들면 나뭇가지로 덮인 어디쯤 으름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시어머니가 어릴 때 먹던 으름을 맛보고 싶다 하여 남편은 팔을 걷어붙이고 고개가 떨어지게 머리 위만 쳐다보며 으름을 한가득 따왔다.
으름의 맛은....
달걀흰자에 고급 자일리톨 설탕을 듬뿍 넣고 머랭치기 해서 부드럽게 뭉쳐놓은 맛?실제 그런 맛은 아니지만 비주얼은 그럴 것만 같다.
<토종 바나나>라고도 하지만 바나나보다 훨씬 달고 부드럽다. 벌어진 으름의 가운데 하얀 부분만 입에 넣고 혀로 뭉개면 메로나처럼 녹아내린다. 하얀 과즙은 목으로 넘기고 까만 씨는 뱉어야 한다. 웃긴 것은 검은씨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외에서 먹으면서 후두두두 퉤퉤퉤퉤 뱉어야 제맛이다.
예쁘고 잘 익은 으름으로다가 골라 고이고이 작은 상자에 넣어 조심스럽게 남편은 자기 엄마한테 갔다. 효자다.
83세의 시어머니는 노년기 우울증이다. 60년만에 드셔보신다는 이 으름이 어머니에겐 생애 마지막 으름이 될지모르겠다는 생각에 나의 마음이 아린다. 이 야생열매가 부디 어머니께 어제의 적적함을 달래주고, 어릴 때 드셨던 그 옛 추억의 맛을 기억해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