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꼭 김치를 먹을 때 누가 담근 건지 물어본다. 웬일인지 내가 만든 김치를 좋아한다. 내가 그렇게 요리 솜씨가 좋은 게 아니라 레시피 보고 따라 하는, 그냥 뭣도 모르는 주부인데도 아들은 꼭 이거 누가 만든 김치냐고 묻곤 한다. 나는 괜히 어깨가 으쓱하다.
냉장고 정리를 하다가 먹는다, 먹는다 생각만 하고 미루던 친정엄마의 백김치가 생각났다. 잊혔던 백김치는 곰팡이로 섞어가고 있었다.
어른들은 대부분 김치에 진심이 있다. 시어머니는 기어다니실 정도로 편찮으셔도 때 되면 마늘, 고춧가루, 새우젓을 손수 챙기신다. 김장 담글 걱정을 일년 내내 하시는 것 같다. 시장에 좋은 열무나, 알타리, 배추만 보면 김치를 못 담궈 안달이다. 냉장고에 먹을게 산더미인데도 말이다. 때마다 담궈다 주시는 김치에, 절인 오이, 삭힌 고추,,, 이런 걸로 냉장고가 터질 지경이다.
친정부모님은 아침에 시리얼과 쑥떡 한 조각, 사과로 식사를 하신다. 우리 집은 아침을 계란 프라이에 토마토 반알을 먹는다.점심은 회사와 학교급식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각자 오는 시간이 틀려서 좀처럼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 먹을 일이 별로 없다. 그러니 김치 먹을 일도 없다. 라면이나 김치찌개 끓일 때나 한 번씩 꺼내게 된다.
친정엄마는 일을 그만두고 많은 시간 음식 만들어자식들한테 보내는 재미가 쏠쏠하신거 같다. 얼마전에는 유튜브에 있는 백종원 레시피로 함박스테이크를 30장이나 만들어 얼려 오셨다. 백선생한테 푹 빠진듯 하다. 오징어채에 강된장까지 백선생을 따라하신다.
지금이 열무 철인지 친정엄마가 열무김치를 20킬로나 담궈다 주셨다. 엄마의 열무김치를 반은 김치냉장고에, 반은 익으라고 밖에 며칠 놔두니 지금 딱 밥 비벼먹기 좋을 만큼 익었다. 하루 두 끼를 열무 비빔밥과 열무비빔국수로 때우고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아주버님이 시댁에서 총각김치랑 파김치를 갖고 왔다며 10킬로씩 놓고 가셨다ㅠ 남편은 시어머니의 김치가 맛있다고 맨밥에 두 그릇씩 총각김치랑 파김치를 손으로 잡고 우적우적 먹었다.
식탁은 이제 세 가지의 김치 전쟁터가 되었다. 서로 취향껏 먹느라 정신이 없다. 아니 '자기 엄마 김치' PR 하느라 정신이 없다.
- 얘들아, 이거 한번 먹어봐, 군산 할머니가 보내주신 건데 지금이 진짜 맛있을 때야
남편은 총각무 한 개를 통째 아이들 밥 위에 올려놓고 호들갑이다.
- 엄만, 서울 할머니 열무김치가 맛있어
나는 야무지게 열무에 참기름과 고추장을 섞어 맛나게 비벼 먹는다.
아이들은 그래도 꿋꿋이 내가 담근 김치를 고수한다.
- 엄마, 이거 엄마 김치지?
엄마의 김치가 제일 맛있다는 세상의 모든 아들 딸들, 언제까지 '밥도둑' 엄마의 김치로 살 찌우며 행복할까. 살찌는 소리가 설빙 인절미빙수만큼 사각사각 달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