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jury time Dec 12. 2021

쯧쯧쯧. 헐 - 속터지는 이야기

사이다를 준비해주세요.

저는 소심한 사람입니다. 엊그제 누군가가 말했듯이 농담과 진담을 구분 못하는, 눈치도 없고, 한마디로 극소심한 사람입니다. 소설에서 만큼은 재기 발랄, 세 보이려고 했지만 사실 참 저는 허술한 사람입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 부모들은 용감해진다고 하는데 전 잘...

용감하지도, 세지도, 강하지도 못했습니다.

에버랜드에서 <토끼 체험>한다고 당근 받아 가세요, 하자 부모들이 한꺼번에 달려가서 당근을 받아 자식 만져보게 하려고 토끼 한 마리씩을 독차지했던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럴 때도 쭈뼛거리며 뒤에서 서성이다가 '이따 사람 없을 때 오자'라고 하며 아이들과 한 발짝 물러나 있어요.

늘 싸우는 게 싫어요. 열나는 상황들이 싫어요.


아이가 이제 걸음마를 떼고 아장아장 걸을 때였습니다. 우레탄이 깔려있는 놀이터에 아이를 데리고 나와 미끄럼틀과 그네를 태우며 놀았어요. 그때 한 5~6학년 정도 된 아이들이 그곳에 몰려와 술래잡기를 하고 놀다가 우리 아이가 걸리적거리자,

"씨발 저리 안 꺼져!"

하는 거예요. 우리 아이에게. 아마 우리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들은 욕이 그거였을 거예요.

저는 그 소리를 똑똑히 들었지만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굳은 얼굴로 아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때 그놈들한테 한마디 해줬어야 하는데 아무 말 못 한 게 십오 년도 넘었는데 억울하고 제 자신에게 신경질이 납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 큰 아들을 괜히 안아주며 눈시울을 붉혀요.

정말 못난 엄마입니다. 전.


또 아이가 다섯 살 때쯤 동네 엄마들이랑 우리 집에 모여 두런두런 놀고 있었어요. 그때, 한 살 위인 이웃집 형하고 우리 아들과 싸움이 났어요. 그리고 1초 만에 우리 아이는 그 형에게 뺨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저에게 달려와 울면서 안겼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에요. 우리 아들 얼굴 한쪽이 금세 벌겋게 부어오를 정도로 세게 맞은 상태였어요. 아들은 내내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제 품에서 놀라서 울었습니다. 저는 그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우리 아들만 달랬었습니다. 때린 아이 엄마도 당황했지만 딱히 미안하다는 말 없이 왜 싸우냐고 잔소리하는 정도로 넘어갔고요. 아직도 그 엄마와는 만나고 웃으며 지내는데, 마음 깊이는 그 사건을 기억하며 곪아가요. 전 이상한 여자입니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냐고 하겠지만, 저에게는 흑역사이고 절대 잊히지 않는 두 사건입니다.

아마 지금 또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저는 그냥 또 그 상황을 회피할 것 같아요. 그래요. 저는 비겁한 사람이고, 싸우는 걸 싫어하고, 큰소리 나는 건 더 싫어합니다. 잔잔하게 살고 싶어요.






그런데, 찌질한 제가 대박 싸워서 상대를 KO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옆집에 저보다 등치도 크고 욕도 잘하고 정말 센 동생이 살았었습니다. 그 집에는 딸이 한 명 있었는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로서 자주 왕래를 하며 그 집에서 밥도 먹고, 뭐 그렇게 허물없이 지냈었습니다. 뭐 코드는 전혀 맞지 않았지만 문만 열면 보이는 곳에 사는 이웃이었고,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었어요. 문제는 그 여자의 성품이었습니다. 입에 욕을 달고 살았고 이유 없이 우리 아들들을 함부로 대했었습니다.

"야, 이 새꺄 아줌마한테 인사 안 해!"

뭐 이런 식이었어요. 우리 얘들이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서 인사성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그 여자는 유독 껄렁거리며 우리 아들을 괴롭혔습니다. 제가 딱히 대응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같습니다. 심심풀이로 아들을 발로 걷어차기도 했어요. 오죽하며 옆에서 듣고 있던 이웃이

"아, 왜  남의 아들한테 이 새끼 저 새끼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심지어 자기 딸에게도 욕을 했어요. 라면을 먹다가 자기 딸이 움직여서 라면 국물을 쏟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씨발, 가만히 안 있어!" 라고 했어요.ㅠㅠ


여기까지 읽으시며 고구마를 입에 가득 문 것처럼 속 터지시죠. 저도 그때를 회상하면 속이 터집니다. 매일매일 속이 터지고 불편했습니다. 저는 아이 귀를 막으며 매번 그 자리를 피하는 쪽을 택했었습니다. 이쯤 되면 저는 정말 바보이고 엄마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를 제가 싸워서 한방에 KO로 이긴 사건이 있었습니다. 왑!

둘째가 우리 집으로 온 지 6개월이 지날 즈음이었어요. 그 여자는 우리 둘째를 겉으로는 참 예뻐했었습니다.

어느 날 이웃에 또래 아이 엄마가 새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런데 얘기하다 보니 그 새로 온 민정 엄마가 우리 아이가 입양아인걸 알고 있더라고요. 그 여자한테 들었다고 했습니다.

정말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우리 집에 오면서 가까운 이웃들은 아이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딱히 비밀은 아니었지만 서로서로 조심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그 여자가 여기저기 나불거렸다는 생각에 정말 머리가 띵해지는 게, 꼭지가 돌았습니다. 정말 끊고 싶은 여자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저는 그리고 그날 밤 거울을 보고 밤새 그 여자와 싸우는 연습을 했습니다. 덜덜 떨면서. 괜히 눈물이 찔끔찔끔 나더라고요.

야, 너 허튼소리 하면 입을 쫙--찢어버릴 줄 알아!!!

이게 첫 번째 대사였습니다. 밤새 연습을 했습니다.

분해서 밤을 그렇게 하얗게 새웠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여름이라 그 집도 현관문을 열어놓은 채 주방일을 봤고 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편이 출근하고 조용해진 틈에 굳은 표정으로 그 집으로 갔습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더라고요. 열린 현관문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어, 언니 왔어?"

여자는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야, 너 민정 엄마한테 뭐라고 했어!"

저는 강하게 쏘아붙였습니다.

"어? 언니, 뭐? 뭔데 그래? 무슨 소리?"

여자가 약간 놀란 듯했지만 여전히 설거지를 하더라구요. 강심장!

저는 다가가 그 여자의 면상에 대고 낮고 강하게 또박또박 쏟아냈습니다.


"야, 너 우리 준희 얘기 한 번만 더 떠들고 다녀봐! 아주 그냥 보지를 쫙 찢어 씹어먹어 줄 거니까!"


사실 자세한 기억도 안 납니다. 의식도 없었습니다. 분명 연습은 '입을'이었는데 그 순간, 저거로 바뀌었습니다.

그 여자는 뜨악! 한마디 말도 못 꺼내고 얼어붙었고 저는 당당하게 그 집 현관문을 세게 쾅! 닫고 나와버렸습니다. 당연히 집에 돌아와서는 다리가 후들거려 현관문을 잠그고 잠그고 이중으로 잠그고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괜히 눈물이 나고 웃었습니다. 지금도 웃으며 눈물이 나요.


그 여자는 그 후로 여러 이웃에게 그날의 얘기를 떠들었지만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았고, 점점 외톨이로 살았습니다. 그 후로 놀이터에 나와 있다가도 제가 나타나면 슬슬 피해 집으로 들어갔으니 저는 제가 100%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로 3년을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도 그 여자는 제가 있으면 걸어 올라갔어요. 물론 작은 소리로 중얼중얼 뭐라 욕을 하긴 하더라고요.


저는 이제 다시 마음 약한 아줌마로 살고 있습니다. 작은 말에 상처 받고, 아마 이곳에서 누가 제게 '야, 인저리!'라고만 해도 브런치에서 탈퇴하고 도망갈지 모릅니다. 싸워서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부부싸움에서도 항상 집니다. 좀 멋지고 당찬 엄마이자 여자로 살고 싶은데 전 늘 찌질하고 얼굴 붉히면서 감정싸움하는 걸 싫어합니다.


언제쯤 똑 부러지는 엄마로 살아갈까요. 브런치에는 육아 고수들이 참 많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며 제 주리를 틀지 모르겠어요. 엄마도 아니라고요. 아이들은 이제 벌써 다 커가는데 그날의 비겁하고 찌질했던 두 번의 사건이 늘 아이에게 죄책감으로 남습니다. 다행히 그 못돼먹은 여자랑은 잘 끊었지만요.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제가...?




 

작가의 이전글 그날의 해프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