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풍차 돌리는 날 7
누가 이런 공짜 마사지를 마다하랴.
by injury time Sep 14. 2023
반지하방에서 후줄근한 소지품 따위는 단 하나도 챙겨 오지도 않은 우리는 방을 확인하고 룸을 한번 둘러본 후, 당장 명동시내로 내려가 롯데백화점으로 향했다. 명동 롯데백화점이라고 하면 늘 구파발 장모 집에 갈 때 기다리던 버스정류장이었다.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길거리 포장마차로 거리는 지저분했지만 백화점 입구만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잘 닦인 백화점 계단의 논슬립 패드는 정말 황금이 아닐까 싶게 금색으로 반짝였다.
우리는 백화점 1층에서 제일 눈에 띄는 프라다 매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양말부터 하다못해 수영복까지 명품으로 사 모았다. 호텔 2층 라운지에서 보니 고급스러운 수영장 물이 넘실거리고 있었던 걸 봤다며 아내가 꼭 수영복을 사야겠다고 했다. 아내는 검정에 하얀색 끈이 엑스자로 등을 감싸고 있는 누가 봐도 프라다표 수영복과 수영 모자를 샀다. 프라다는 검정이 검정으로 안 보이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블랙으로 보이는 마법이 있었다.
우리는 순식간에 양손으로 들기에도 벅찰 정도로 가득 물건을 사 모았다. 친절하기 그지없던 프라다 직원이 우리의 쇼핑백을 들고 택시 승강장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우리가 그렇게 급구 사양했는데도 말이다. 역시 돈이 사람의 인격을 만드는지, 직원에게 팁으로 오만 원짜리 두 장을 쥐어주고 나니 내 마음이 더 뿌듯했다. 우리는 모범택시를 타고 쏜살같이 다시 우리의 룸으로 돌아왔다.
우리의 방은 무사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어 벽에 카드키를 끼우자마자 전등이 켜지며 방 안이 환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 룸은 처음에 푸른 양탄자가 깔려있는 짧은 복도를 지나가니 세 칸의 낮은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내려가면 공연장처럼 원형의 거실이 나온다. 거실에는 둘은 자빠져 잘 만한 넓은 페브릭 소파, 대형 티브이가 창문을 등지고 서있다. 통 창문은 아치형으로 휘어져 있고, 중세시대에나 볼법한 문양의 커튼이 둥글게 나풀거린다. 티브이는 얼마나 얇고 화면이 선명한지 창문 너머 남산타워의 모습과 티브이에 나오는 화면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여긴 신기하게도 고개를 돌려 시선을 둘 때마다 작고 예쁜 조명들이 빨갛고 노랗고 하얗게 켜져 있다. 삐~하는 전류 흐르는 소리가 늘상 들리는 백색 형광등으로 온 집안을 밝히는 반지하방과는 차원이 다르다.
소파와 티브이를 감싸고 있는 둥그런 거실을 지나 비스듬한 오른쪽 계단으로 다시 세 칸 올라가면 바디프랜드 안마의자가 팬덤급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안마의자가 무슨 <아이언맨>에나 나올법한 웅장함으로 믿음직스럽게 나에게
‘이리 와. 안아줄게.’
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누가 이런 공짜 마사지를 마다하랴. 안마의자를 보자마자 나는 털썩 의자에 앉아 팔걸이에 꽂혀있는 리모컨으로 전원 버튼을 눌렀다. 띠리리릭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며 어느새 아이언맨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나를 하늘 높이 안아서 머리부터 다리까지 편안하게 쭉 눕혀주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뻣뻣하게 경직됐던 목부터 어깨, 척추까지 그의 손으로 나를 노근노곤 하게 녹여주었다. 구름 위에 누워있는 듯했다.
마누라가 중뿔나게 자꾸 안마기 리모컨을 이리저리 만지는 통해 조금 짜증이 났다. 아무래도 마누라도 이놈의 아이언 맨 품에 안겨보고 싶었던 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