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풍차 돌리는 날 6
당당하게 일시불을 외쳤다.
by injury time Sep 14. 2023
사방연속무늬가 둘러싸여 있는 엘리베이터에 우리는 당당하게 서있다.
당첨금으로 마누라와 내가 처음 계획한 것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지내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남산이 보이는 호텔에서 장기 숙박을 하기로 결심했다.
호텔이란 곳은 처음이었다. 신혼여행도 우리는 펜션에서 밥 해 먹으며 보냈었다. 조경이 잘 정돈된 주차장을 지나 열 칸의 널찍한 계단을 올라가니 나른하게 뱅뱅 돌고 있는 회전문이 보였다. 그동안 기껏해야 모텔 같은 펜션에서 자본 게 전부였던 우리에겐 호텔의 유리 회전문에 발을 딛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반질반질 잘 닦인 회전문을 통과하자마자 우리는 하마터면 왕족이 나올법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주저앉을 뻔했다. 높디높은 천장에서부터 위풍당당하게 내려온 화려한 샹들리에가 우리의 눈앞을 꽉 채웠던 것이다.
눈이 부셔 움찔했다. 어떻게 그렇게 크고 웅장한 샹들리에가 천장에 매달려 있고, 그것도 바로 손에 닿을 듯이 내 눈앞까지 내려와 반짝이는지 입이 떡 벌어졌다. 거기다가 층고가 높은 로비 곳곳에는 신비로운 꽃장식과 조각상 같은 것들이 멋지게 세워져 있어 저절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꽤 알아주는 호텔인 것 같다며 마누라가 바퀴벌레처럼 내게 속닥거렸다. 우리는 두 손을 꼭 부여잡고 당당하게 카운터로 가서 남산 뷰가 보이는 스위트룸이 있는지 문의했다. 행여 어설픈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해서 마음을 졸였지만 다행히 방은 있었고, 우리는 한 달을 장기 숙박하겠다고 하며 위풍당당하게 카드를 내밀었다.
“손님, 할부 어떻게 해 드릴까요?”
“아뇨. 일시불로요.”
나는 당당하게 일시불을 외쳤다. 사실 그 카드는 농촌사랑 체크카드라 일시불 밖에 되지 않는다. 700만 원이 순식간에 결재됐다.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쩜 이리 하나 같이 예쁘고 친절하고 고급스러운지 놀라울 따름이다. 유니폼을 입은 어느 직원이 가지런한 치아와 미소, 윤기 나는 머릿결과 새하얀 손으로 700만 원짜리 네모반듯한 객실 카드를 내게 건네주었다.
룸으로 올라가는 호텔 복도는 어두우면서도 중간중간 램프가 켜져 있어 비밀스러운 분위기였다. 우리의 12층 복도는 굽이굽이 블랙과 화이트 다이아몬드 가루가 흩뿌려진 신비로운 실크벽지로 둘러싸여 있었다.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탄탄한 카펫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걸었다. 1억 6천 넘게 들어있는 농민사랑 체크카드가 우리를 든든히 지켜주었다. 비록 방금 전에 700이 사라졌지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