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00% 허구로 지어진 단편소설임을 밝힙니다.
- 터키에서는 커피잔 점술로 인생을 점친다고 해요. 오늘의 특별 커피를 마시는 분에 한해서 점술을 봐드려요. 괜찮으시죠?
영애는 당황했지만 앞으로 혼자 살아갈 시간들을 생각하며 흔쾌히 점술에 응했다.
기묘한 여인은 영애가 마신 커피잔을 잔받침과 함께 획 뒤집더니 영애에게 그걸 넘겨주며 원을 세 번 그리라고 주문했다. 영애는 진한 커피에 취한 듯 뒤집어진 커피잔 세트를 받아 원을 그리며 조심스럽게 몇 번 흔들었다.
- 자, 이제 이곳에 내려놓고 커피잔 위에 손을 올려놓을게요. 그리고 앞으로 손님의 과거와 미래를 머릿속에 그려보세요.
영애는 눈을 감고 머릿속 전두엽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펼쳐보았다. 민식과의 시간들이 필름처럼 잔잔하게 지나갔다.
- 자, 그럼 한번 이제 커피잔을 열어볼게요.
여인은 영애의 커피잔을 조심스럽게 원래대로 뒤집어서 컵받침에 올려놓았다. 까만 원두가루 침전물이 바닥부터 안쪽까지 덕지덕지 쇳가루처럼 찻잔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커피잔 바닥과 커피잔 안쪽에 흘러내린 원두가루로 점을 친다는 설명을 하며 원두가루가 그려놓은 그림을 해석하는 거라고 했다. 영애는 아무리 봐도 뭐가 뭔지 모르는데 갑자기 여인이 커피잔을 찬찬히 살피더니 침전물 모양 하나를 가리켰다.
- 여기, 단발머리 여자가 보이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여기저기 리듬의 흔적이 보여요.
여인은 심오한 목소리로 영애에게 속삭였다. 삐죽빼죽한 커피가루가 ㄴ자 모양으로 얼기설기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영애는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침전물이 만들어놓은 그림들을 찾아보았다.
그때, 커피잔 입술 부분을 손으로 빙빙 그리며 여인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커피가루가 여기까지 이렇게 둥글게 남아있는 게 신기하네요. 이건 운명의 수레바퀴예요. 끝내 이어질 당신의 진짜 연인이 있나 봐요.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끊임없는 두 연인이 윤회하고 있어요.
기묘한 여인은 눈썹을 八자로 만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보이는 사람은 절대 미래의 연인을 알아보면 안 된다며 겁을 주고 여인은 영애의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며 귀엣말을 하였다.
- 미래에서 온 연인과 눈을 마주치면 절대 안 돼요. 그렇게 되면 분명 말을 탄 죽음의 기사가 당신을 찾아올 거예요.
여인은 얇디얇은 긴 머리카락 두어 개를 영애 어깨에 떨어뜨리며 사라졌다. 영애는 여인이 떠난 자리에서 한동안 커피잔의 침전물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과연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스커트를 입고 기타를 치고 있는 게 보였다. 그 그림 주변으로 여러 개의 음표 모양도 보이는 듯했다. 매직아이처럼 침전물은 보면 볼수록 새로운 그림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커피가루가 마를수록 수레바퀴의 모양도 선명해져 갔다. 끝내 이어질 미래의 연인이라니, 영애는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귀 옆으로 넘기며 무화과 카나페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더니 몇 년 전 민식을 기다리는 중에 보았던 신사역 BMW의 나이 든 남자가 떠올랐다. 속눈썹이 눈동자를 한없이 가려 도통 쉽사리 눈을 마주치기 힘들었던 그 남자, 눈밑 지방이 쿠션처럼 두툼하게 흘러내리고, 동굴처럼 울리는 처연한 그 남자의 목소리. 끝내 이어질 영애의 연인, 민식과 눈이 마주쳤다.
*
영애는 카페주인이 남기고 간 길디 긴 머리카락 두어 개와 함께 아무도 남지 않은 루프탑에서 아무도 모르게 영원히 사라졌다. 까만 커피가루가 되어 커피잔 속 수레바퀴에 걸려든 것인지, 아니면 기타를 치는 소녀가 된 것인지,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세상으로 사라졌다. 단지 영애의 커피잔 안에는 커피가루 그림이 하나 생겨났을 뿐이다. 스파클링 와인에서는 더 이상 기포가 올라오지 않았고, 노랗게 산화된 와인은 죽어가고 있었다. 잘 구워져 나온 무화과 카나페에서만 아무 일 없던 듯 '바싹' 소리를 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