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따듯할 예정 1.

재덕이 아저씨의 두릅나무

by injury time

노란 산수유나무 꽃망울이 방금 전 '팡' 하고 터졌어. 고새를 못 참고 꽃잎마다 이슬방울들이 반짝이며 몽글몽글 맺혔지 뭐야. 거기가 어디냐면 말이지, 마을 끄트머리 언덕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에서 한참을 타고 올라가면 이내 다다르는 산등성이. 오랫동안 비와 바람을 맞아 뾰족했던 봉우리가 서서히 둥글게 변하고 있는 곳이야. 맞아, 니가 아는 그 백두대간 서남쪽 끝자락 산마루, 유난히 햇볕 잘 들고 따듯한 그런 곳 말이지.


간혹 산 아래 사는 재덕이 아저씨가 칡 한 뿌리 씹으며 쉬고 가는 그런 곳이었어. 이곳은 봄에는 고사리가 지천에 널려있고, 여름에는 단내 나는 산딸기와 보리수가, 가을에는 오동통한 알밤과 달달한 으름이, 겨울에는 맥문동 뿌리가 숨어있는 마법 같은 곳이었어. 재덕이 아저씨는 매년 홀로 여길 올라와 산이 주는 풍성한 선물들을 챙겨가곤 했던 게야.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산속 물줄기도 찬찬히 녹아 흐르는 그런 어느 봄날이었어. 물줄기 사이로 푸릇푸릇 씀바귀랑 냉이랑 원추리랑 머위 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시절이었거든.


이응차


어디에선가 개구쟁이 같이 귀엽고 여튼 소리가 들렸어.

맞았어. 오랜만에 잠에서 깬, 이 숲 속 구석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어린 두릅나무였드라니. 어린 두릅나무 이름은 연두. 연두의 콧구멍 속으로 어느덧 스며든 훈훈한 공기는 곧 튼튼한 줄기를 타고 연두의 온몸을 간질였지. 연두는 너무 간질거려 꼬물꼬물 움직이고 싶어 안달이 나는 거야.


아, 잘 잤다. 이제 좀 나가볼까?


어린 두릅나무 연두는 고개를 들어보지만 아직 딱딱한 껍데기가 온몸을 덮고 있어 도무지 움직여지지가 않았어. 오늘 밤이 지나고 내일 해가 뜨면 어제보다 따듯한 햇살이 연두의 몸을 연하고 부드럽게 녹여줘서 금세 나갈 수 있을 건만 같았지.


오늘 밤만 꾹 참고 기다리자. 포포야, 너도 어서 준비해. 내일은 해님이 우리를 나가게 해준대두.


50년 동안 연두 옆에서 나란히 자라고 있는 포포나무는 아직 잠에서 덜 깼는지 춥다며 몸을 으스스 떨드라니. 허리통이 남부럽지 않게 굵은 녀석이 말이야. ㅎ


연두는 저 둔덕 끝에 있는 아빠나무와 함께 지내고 있었지. 연두의 엄마는 몇 해 전 갈색매미충에 걸려 그만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다행히 연두와 아빠 두릅나무는 살아남아 이 언덕에서 포포나무와 산수유나무와 함께 잘 어울리며 지내고 있었어.


연두는 이 구역에서 제일 호기심 많은 어린 나무였단다.


빨리 일어나서 이 따듯한 이슬과 부드러운 공기를 마셔야 되지 않겠니? 포포야.


두릅나무 연두는 주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무들에게 하나하나 간섭을 하며 이곳저곳에 메아리를 만들었지. 연두의 소란에 온 산등성이 나무들은 하나하나 고개를 들어 기지개를 켜고 서로에게 안부를 물으며 내일 아침 따듯할 예정인 해님을 기다렸어.


너는 기다려지지 않니, 이번 봄이. 나는 말이지, 매년 봄이 오는 걸 손꼽아 기다려. 올해는 반드시 내 꿈을 이룰 거야.


드디어 태양이 산등성이 사이로 홍시색깔로 물든 하늘을 가르며 눈부시게 떠오르고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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