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따듯한 예정 2.

재덕이 아저씨의 두릅나무

by injury time

연두는 연해진 껍질 속에서 힘을 내어 꼬물꼬물, 꿈틀꿈틀 움직였지. 햇살이 연두를 부드럽게 쓰다듬었어. 연두는 햇살을 줄기에서부터 뿌리까지 깊이 들이마셨단다. 그때였어. 연두가 부풀기 시작했지.


여엉차!


두릅나무의 껍데기가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어. 연두는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단다.


이으~짜!


빛줄기가 껍데기 틈으로 스며들며 연두는 따뜻한 바깥으로 튀어나왔지.


와, 나왔어~ 나왔어!


연두는 엄지만큼 자라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단다. 두리번두리번 아빠를 찾던 연두는,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하게 솟은 아빠 두릅나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걸 발견했지.


우리 연두, 그새 많이 자랐구나. 우리 숲에서 아빠 다음으로 제일 먼저 싹을 틔운 두릅나무야.


아빠는 든든한 가시를 두르고 통통한 가지를 활짝 뻗으며 연두를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단다.


예, 아빠. 겨우내 얼마나 나오고 싶었는지 몰라요.


둘은 줄기를 흔들며 인사를 나누었어. 그때였지. 향긋한 냄새를 맡은 오목눈이 한 마리가 연두의 머리 꼭대기를 간질였단다.


니가 연두구나?


앗, 오목눈이님! 저를 아세요?


그럼. 이 산등성이에서 너 같은 벌거숭이 풋내기를 모르는 새가 있을까?


연두는 토라져서 연한 가시를 바짝 세웠단다.


하하. 너는 볼 때마다 벌거숭이처럼 앙상한 가지로 볼품없이 이곳을 지키고 있잖아.


뭐요? 쳇! 두릅나무들은 모두 저처럼 벌거숭이로 사는 거예요.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났다고요!


아기 주먹만한 솜뭉치처럼 생긴 오목눈이를 향해 연두는 연한 가시를 한껏 날카롭게 세우며 토라졌어요.


연두 니가 뭘 모르는 거야. '원래 그런 거'란 이 세상에 없어. 저기 봐, 저 앞산 꼭대기 바위 옆, 숲에 사는 두릅들은 모두 울창하던데? 난 작년에 하얀 팝콘 같은 꽃을 바글바글 피운 두릅나무도 만났는 걸? 연두 니 또래는 될 거야. 산새들이 쉬었다가 갈 수 있게 나무 그늘을 만들어주는 아주 친절한 아이였어. 아주 푸르고, 의젓하게. 얼마나 근사하던지... 너도 꼭 그렇게 되길 바래~


오목눈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깡충깡충 날갯짓하며 숲 속으로 날아가 버렸단다.


연두는 오목눈이가 살아질 때까지 한없이 고개를 쭉 빼고 파란 하늘을 지켜보았어. 그러고 보니 이 산등성이에 사는 나무들 중에 두릅나무만이 볼품없이 앙상하게 솟은 벌거숭이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거야. 연두의 오랜 친구 포포나무도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면 봄에 싹을 틔우고 봄에서부터 여름까지 내내 열심히 자라서 손바닥만한 이파리들을 마구마구 만들어 푸르고 울창하게 자랐거든. 또 왕벚꽃나무랑 비자림나무는 꽃이며 열매까지 한껏 맺고 서서 산새와 벌들의 놀이터가 되어주었던게지.


연두는 털썩 주저앉은 아이처럼 심드렁했져서는 오목눈이가 날아올라간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그리고 깨달았지. 이 산등성이에서 유독 자신만 앙상한 모습이었다는 걸.


그날 이후 연두는 싹을 틔우지 않았어. 햇살도, 바람도, 이슬도 즐기지 않았지. 땅속에서 기어오르던 벌레들도이제는 숲으로 모두 숨어버렸지. 연두는 내내 심드렁한 얼굴로 조용히 봄을 보내고 있었단다.


아빠 두릅나무가 말했어.


연두야, 우리는 두릅나무란다. 우리 싹은 사람들 몸에 참 좋은 귀한 먹거리야. 아주 특별한 나무지.
그래도요, 저도 한 번쯤은 울창한 나무가 되고 싶어요.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산새랑 벌들도 놀러 오는 그런 나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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