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덕이 아저씨의 두릅나무
그래도 저는 한 번쯤 굵고 울창한 나무가 되고 싶어요.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싶어요. 너도밤나무나 왕벚나무, 비자림나무들처럼 이파리들을 무성히 달고 자라는 푸른 나무가 되고 싶어요. 팝콘 같은 하얀 꽃을 피워 꿀벌들에게 달콤한 꿀도 나눠주고 싶고요, 산새들이 짹짹거리며 앉아서 쉴 수 있고, 벌들이 다가와 간지럽게 윙윙거리는 푸르고 울창한 나무가 되고 싶단 말이에요.
연두는 소리쳤어. 연두의 소란에 땅 밑에서 기어 오던 병정개미와 송장벌레와 애호랑나무 유충들이 재빨리 풀숲으로 숨어버리고 말았단다.
그때였어. 쇠꼬챙이 하나 달랑 들고 산을 오른 재덕이 아저씨가 앞 섭에 커다란 보자기를 매달고 올해도 어김없이 산등성이를 올라왔어. 그리고 아저씨는 곧장 아빠 두릅나무에게 다가와 흙투성이 거친 손으로 아빠나무의 두릅순을 댕강댕강 뜯더라니.
사실 매년 두릅들이 열심히 여린 싹을 틔우는 시절이 되면, 산 아래에 사는 재덕이 아저씨가 언덕에 올라와 두릅순들을 모조리 뚝뚝 뜯어가곤 했지. 재덕이 아저씨가 두릅순을 모조리 뜯어가는 통에 두릅나무들은 한 번을 크게 자라보지 못하고 늘 앙상하게 일 년을 보내야만 했단다.
재덕이 아저씨는 아랫마을에 사는 오래된 노총각인데 촌에서 각시를 못 찾아 혼자 늙어가는 중이었어. 지난겨울에 모시고 살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난 후 아저씨는 혼자 남게 되었지 뭐야. 아저씨는 말더듬이에다가 매사에 계산이 느리고, 머리가 팍팍 돌아가지 않아 마을사람들은 아저씨에게 말도 안 걸고 바보 취급을 했어. 하지만 아저씨는 단 한 번도 성질내지도 않고, 앞니 빠진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언제나 헤벌쭉 웃으며 지냈단다. 마음씨만은 그 누구보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해맑았거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게 된 재덕이 아저씨는 평생 보고 들은 게 밭일이었기에 쓸쓸히 밭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단다.
연두네 산등성이는 산기슭이 험해서 사람들이 쉽게 찾아내지 못했어. 그러나 재덕이 아저씨는 해마다 작은 두릅나무 새싹이 자라는 산등성이를 올랐어. 가파른 산기슭을 오르다 몇 번이나 미끄러졌지만, 칡넝쿨을 붙잡으며 다시 일어섰지. 연두가 있는 산등성이에 산딸기와 보리수를 할머니가 무척 좋아했었거든. 재덕이 아저씨는 혼자가 된 후 한동안 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이 봄에 드디어 올라온 거야.
하나,,,,, 두울, 세엣,,,, 넷
아저씨는 두릅순을 뜯다 말고 돌마루에 앉아 산아래를 내려다보았어. 쌩쌩 달리는 차들을 볼 때면 재덕이 아저씨 모습은 차를 따라 고개가 이리저리 휙휙 돌아가는 자동차 대시보드 강아지 인형 같았어.
오메, 어지러라. 저 놈의 어지러운 자동차를 타고 어디를 쌩쌩 간다냐? 보고만 있어도 에억질이 나오네, 우왹~
사실 아저씨는 차멀미를 너무 심하게 해서 가끔 읍내에 한 번씩 나갈 때마다 오바이트를 하고, 아주 그냥 하루 종일 난리였거든. 하지만 언제나 산 아래, 대로변을 따라 나있는 길 끝에 누가 사는지, 뭐가 있는지 언제나 늘 궁금했지.
나도 좀 나가보면 좋것어. 아녀, 아녀, 아녀, 뭐시 궁금하당가.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안 그랴.
재덕이 아저씨는 쉰내 나는 겨드랑이를 벅벅 긁으며 벌떡 일어나 손을 털고, 다시 두릅순을 찾아 나섰지.
고놈 실하게 생겼네. 데처 먹으면 쌉싸름하게 맛나겠네
아저씨는 연두 앞에서 딱 멈춰 섰단다. 그리고 연두의 새순에게 손을 내밀다가 말다가 내밀다가 말다가 하는 거야. 아기 주먹만 한 크기의 어린싹. 아직 여리고 부드러운, 연둣빛 생명. 재덕이 아저씨는 연두 앞에서 침을 뚝뚝 흘리며 한참을 서 있었어. 손을 뻗었다가, 멈추었다, 다시 손을 뻗었다가 문득 어릴 적 들었던 할머니 말씀이 떠올랐어.
싹을 꺾는 건 쉬워도, 키우는 건 정성이랑께. 재덕이 니도 넘 부럽지 않게 샥시 얻고 살어라, 알긋재?
오래된 대추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하던 할머니가 재덕이 아저씨에게 건넨 말이었어. 밭에서 키우던 고춧잎이 진드기 떼에게 덮여 온통 찐득해졌었거든. 할머니는 고춧잎을 뜯어내버리지 않고 잎사귀 하나하나에 설탕물을 뿌리고, 치마 끝으로 잎사귀 하나하나를 훑으며 진드기를 닦아냈거든.
재덕이 아저씨는 진드기를 닦아내던 할머니의 새까맣고 이리저리 휘어진 손가락 끝을 생각하며 두릅싹 대신 허리에 감긴 보자기 끈을 꽉 묶더라니.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어.
니라도.. 무장무장 자라서, 남덜처럼 이만큼 울창해 지거라. 나...처럼 살. 지.. 말고요 잉…
아저씨는 연두에게서 등을 돌려 천천히 산을 내려갔단다. 그리고 그해 봄, 재덕이 아저씨는 연두의 싹을 꺾지 않았어.
연두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잎을 햇살 속에서 마음껏 펼쳤어. 얼마 후부터 연두는 가지마다 연한 녹색의 이파리가 무성하게 드리웠던 거라. 그리고 연두에게 처음으로 벌들이 찾아오고, 팝콘처럼 꾸깃꾸깃한 하얀 꽃도 피웠지. 그리고 오랜만에 오목눈이가 찾아와 연두의 튼실한 가지 위에 앉았어.
어머, 너도 드디어 아름드리 울창한 나무가 되었구나. 완전 근사해~
오목눈이는 연두 가지에 앉아 통통한 애벌레를 씹으며 그늘에서 쉬었다가 갔어. 포포나무도 연두를 보며 말없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아빠 두릅나무는 듬직한 눈빛으로 연두를 바라보았어.
그해 여름, 산등성이엔 연두가 만든 그늘이 점점 퍼져나갔어. 작고 연한 싹이 결국, 모두를 쉬게 하는 울창한 나무가 된 거야. 가지마다 푸른 잎을 달고 서있는 연두 그늘 아래 재덕이 아저씨는 자주 와서 앉았지. 남쪽에서 불어온 따듯한 바람에게 연두의 멋진 잎사귀가 손을 흔들며 기분 좋게 인사했어.
내가 바로 울창한 두릅나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