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njury time Jun 11. 2021
친구야,
일 년 만에 너를 부른다. 시간 진짜 빨리 가네.
겨우 한 시간이면 닿을 거리에 있으면서 자주 보지 못하고 살았던 거 같아.
우리가 열두 살에 만났으니 벌써 37년 됐구나.
37년 우정이라니 진짜 인간극장에 나오는 주인공 가트다.
친구야, 지금 있는 곳은 어떠니?
난 오늘도 잠에서 깨서 깜깜한 거실에 혼자 앉아 있어. 불을 끄면 온통 까만 어둠이지만 금세 익숙해져 집안 가구들이 어렴풋이 보이잖아. 너도 이제 그곳 생활에 익숙해진 거니?
다른 친구들은 꿈에서 한 번씩 니가 찾아온다는데 나에게는 도통 오지 않아 더욱더 보고 싶다.
내가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아무리 행복해 보여도 하나씩 무거운, 풀리지 않는 걱정거리를 안고 살잖아,
넌 그런데 그 걱정거리를 항상 숨기고 니 안에 품으려고만 했어. 그것들이 니 몸에서 나쁜 씨앗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문득문득 힘들었던 시간들을 이야기했었는데 친구인 내가 그 신호를 그냥 지나친 것 같아 미안하다.
난 니가 수동적 자살 같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니가 일부러 병원에 가지 않고 버텼던 거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든다. 결혼생활 중에 항상 넌 소중한 사람들에게 외면당했고, 몸까지 아프고 나니 될 대로 돼라 라고 자포자기 한건 아닌지...
나의 친구야,
아마 이렇게까지 되기야 할까, 하는 마음이었겠지.
왜 있잖아, 엄지발톱 끝을 파다 파다 끝을 보고 피까지 보면 그때서야 대충 휴지로 피 꾹 눌러가며 돌돌 말아놨는데 다음날 퉁퉁 부어 곪아 있을 때...
아마 너도 이렇게까지 될 거라 생각 못했을 거 같아. 까짓것, 우리나라 의학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암 그거 하나 못 치료하겠어! 이제 겨우 50살도 안되었는데! 나도 솔직히 니가 암이라고 했을 때 고치겠지, 설마 내 친구가 죽기야 하겠어 하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단다
마지막 그즈음 전화 통화했는데 아들이랑 숲에 와 있다며 숨을 헐떡이며 활기찬 모습이었는데
너의 영정 사진 속 스카프를 날리며 웃고 있는 모습이 아마 그날 숲길 걸으며 나와 통화했던 그날의 모습과 닮았을 것 같아 더욱 네가 보고 싶구나.
친구야,
마지막 떠나는 즈음, 너무 고통스러워 남편과 아들까지 놔버리고 치료를 포기했다는 얘길 전해 들었어. 너처럼 참을성 많은 아이가 그렇게까지 생각했다니 그 고통이 오죽했을까, 가늠조차 안된다.
친구야,
나도 요즘 또 몸이 안좋아 쉬고 있어. 내가 먼저 갈줄 알았는데 이렇게 새치기하기야! 후,,
몸이 회복되면 너에게 제일 먼저 열심히 달려갈거야. 그곳에서 만나면 우리 다시 호호 홍 한번 웃어보자. 그때까지 자유롭게 날아서 사랑하는 아들 곁에도 가보고 부모님 곁에도 가보고 내 곁에도 와서 따뜻하게 안아주고 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