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소장품을 팝니다.

by injury time

"이 그림이 얼마 짜린데!"


엄마가 투덜거린다. 친정아빠가 애지중지하는 꽤 알려진 화백의 그림 하나가 있었다. 나 어릴 적부터 거실에 항상 걸려있던 그림인데 이제 더 이상 그림을 쟁여둘 수가 없었나 보다. 살던 집을 줄이고 줄여 이제는 그런 그림들이 거추장스러운 형편이 되었다.

엄마는 잘 사는 방배동 친구한테 그 그림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그림 사가라고,

아마 그 아주머니는 필요 없다고 했거나, 아님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불렀거나 그랬을 거다.


친정집에는 소장품이 꽤 있었다. 국내 화가의 그림들인데 수묵화 같은 것들이다. 내 어릴 때는 그런 그림들이 거실과 안방에 걸려 있었고, 도자기나 부채, 병풍 같은 거도 몇 점 있었다. 아직도 비싸게 주고 샀다는 자개장과 대대로 물려받은 반닫이는 집을 줄여 옮길 때마다 이고 지고 다니신다. 그리고 나와 내 동생 결혼할 때 그림과 부채, 병풍을 하나 둘 나눠 주셨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 집 천덕꾸러기가 됐다. 까탈스러운 우리 부부는 집안 인테리어랑 맞지 않는다며 목단 그림은 창고에 넣어버렸고, 엄마가 시집올 때 해왔다는 병풍은 쓸 일이 없어 17년 넘게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자식들에게 주기도 아까운 어느 그 화백의 그림을 팔려고 하셨나 보다. 어쩌면 그 그림을 계속 눈 앞에 두고 흐뭇하게 보고 싶으셨다가 집이 좁아져 상황이 도저히 안되니 팔려고 했을 수도 있다. 그 소장품들은 바로 본인들의 장밋빛 추억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식들이 알아봐 주지도 않는 낯선 화백의 그림을 모르는 사람에게 팔기보다 친분 있는 사람에게 팔면 생색도 나고, 잘 나갔던 때 소장하던 거라는 허세도 부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까운 지인에게 말을 꺼냈다가 망신만 당한 모양이다.

그림 하나 때문에 엄마가 아쉬운 소리 했다는 말에 나는 완전 짜증이 났다.


"그러게 뭐하러 그런 얘길 해. 액자는 버려버리고 그림만 가지고 있으면 되겠네!"


나는 팩폭을 날렸다. 엄마는 그 그림이 얼마 짜리고, 외할아버지가 주신 거고, 갖고 있으면 돈 되는 건데 그 여자가 못 알아본다며 하소연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우리 집에 걸어놓으라고 한다.


"엄마, 우리 집은 그 그림 안 어울려, 필요 없어"


나는 칼같이 쏘아붙였다. 집안이 망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장밋빛 추억을 안고 살아가는 두 노인네의 모습에 화가 났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그림은 내 동생네 거실에 걸어졌다. 올케는 군소리 없이 안 어울리는 수묵화를 기꺼이 집안의 메인에 걸어놓았다.


난 매사에 집안일에 싸가지가 없었다. 가족이기주의 같은 거 용납 못한다. 어릴 때부터 가족이라고 봐주는 게 없었다. 잘못한 일을 덮어주거나 감싸주지도 않고 항상 가장 냉정하게 뼈 때리는 말을 자주 해왔다. 중학생 때 외삼촌이 횡령죄로 회사에서 짤리네 마네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온 집안 식구들이 외삼촌 편을 들고, 애처로워했으나 어린 나는 마음속으로 '장남이라고 오냐오냐해서 저렇게 됐지'라며 요샛말로 패드립을 날렸었다.


하지만 오늘 나는 먼지 쌓이고 색 바랜 병풍 커버를 닦으며 마음이 참 씁쓸하다.

나도 늙나 보다.

엄마 아빠의 방배동살이가 참 폭폭할 거 같다.

어쩌면 조만간 고상하게 차려입고 'TV쇼 진품명품'에 내가 나갈지 모르겠다.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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