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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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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Jul 06. 2021

팬츠 드렁크족의 뇌

남자과 싸운 날, 안 씻고 잤다

'팬츠 드렁크족'이라는 게 있다.

퇴근 후 편안 차림으로 술을 마시며 티브이와 함께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을 말한다. 부러운 삶이다. 적어도 싱글로 살 때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자식이 있고, 매력적인 부인이 있는데도 결혼 후 쭉 그렇게 살았다. 혼자 자취하며 살던 습관이 남아있다며 남자는 결혼 후에도 지영과  한 침대에서 자본 날이 얼마 없었다. 그러니까 볼일 볼 때만 지영과 잠깐 만나왔다.


처음부터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제는 옆에 자고 있는 남자를 보면 숨소리도 신경이 쓰여 지영은 한 침대에서 자기가 쉽지 않았다.

남자는 항상 소파에서 잠이 들거나 안방 침대 아래에 매트를 깔고 잠을 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

남자는 아슬아슬하게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9시까지 출근인데 8시 20분에 일어나며,


전날까지 야근하고 10시가 다 되어 들어왔던 지영은 그나마 불금이라고 일찍 퇴근하라는  사장님의 배려 아닌 배려로  늦은 8시에 퇴근하여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일주일치  피로가 밀려와 오랜만에 아로마 오일 한 방울로 통목욕까지 하고 나니 노곤노곤 해졌었다. 예민한 지영은 거실에 껴진 티브이 불빛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


새벽 4시쯤 남자가 지영 곁에 왔다.

문이 열릴 때부터 잠이 깨버렸던 지영은 영혼까지 숙면에 빠진 듯 잠자코 침대에 파묻혀있었다.

남자가 지영이 입고 있는 파자마를 벗기며 소곤댔다.


- 자?

- 지금 뭐 하는 거야? 실컷 놀다가 이제 와서!


남자는 아랫도리를 벗어 아무 데나 벗어던지며 지영 위로 올라왔다. 지영은 몸부림을 쳤지만 당해낼 수가 없었다.


- 미치겠어. 안 한 지 두 달째야. 니 입김이 좋아. 빨아줘


남자의 눈에서  17세 소년의 미숙한 절실함이 느껴졌다. 마치 말죽거리 잔혹사의 '김부선'처럼 소년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영은 눈을 질끈 감고 남자를  한껏 입에 물었다.


- 넣어도 되겠어? 안 아플까?


남자는 질문을 쏟아내면서 곧장 팅을 했다. 지영은 아픈지 어쩐지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다.


- 너도 좋구나


 남자는 이내 방안 가득 정액 냄새를 풍기며 사그라들었다.

지영은 침대에서 계속 누워 있었다. 시체처럼. 그리고 안 씻고 잤다. 그동안 한 번도 안 씻고 잔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영이 화장실이 된 듯했다.


언젠가 지영의 애인은

'남편이랑 그렇게 하는 건, 배설 아닐까'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미혼이어서 부부간 섹스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날 지영은  배설을 하는 남자에게 그렇게 화장실이 되었다.




다음날,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 틈에  지영은 전날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 저기 시장통에서 과일 파는 동네 이장님 알지? 예전에 한번, 뭐 사면서 인사했잖아, 그 이장님, 담배 피워서 입냄새 지독했잖아


- 어, 기억나


- 나는 그 이장님하고 사는 것 같아. 당신은 그 이장님 같아


- 허허,  왜? 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


 그 과일가게 이장님은 생활에 찌들어 보이는 50대 후반의 시골 아저씨였다.  펑퍼짐한 흙투성이 낡은 기지 바지가 뱃살에 걸려 있었다. 허리 벨트랑 바지 허리춤이 따로 놀게 걸치고 있었다.  오랜 고생으로 손은 갈라지고 투박해 보였다.  흰머리카락이 머리카락의 반을 차지했고, 까칠한 수염에도 듬성듬성 흰 수염이 있었다. 입술도 거칠어서 벗겨져있었다. 그리고 입냄새가 지독했다. 양치 안 하고 담배 피우고 커피믹스 마신 사람에게 나는 냄새가 났었다. 지영은 그 남자랑 사는 것 같다고 했다.


- 아, 그 양반, 언제 과일 좀 팔아줘야 하는데


남자는 셀을 밟으며 슝 달렸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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