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소주는 어떻게 '한국의 술'이 되었는가

by 비어베어

외국에서 놀다가 외국인들과 술을 마시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한국 술은 뭐야?"

이미 소주를 알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소주라고 답한다.

몇몇 친구들은 이미 한국 드라마에서 본 초록병 소주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 질문을 받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한국의 술은 항사 이것 하나로 설명될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대중이 선택했기 때문에 남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술을 마셔본 경험을 떠올려보면 정말 '선택'을 해왔던 것일까?하는 의문이 든다.

스무 살에 처음 술집에 가봤을 경험은 누구나 있을것이다.

메뉴판에서 고를 수 있는 건 브랜드의 이름 정도다.

초록병과 초록병사에서 우리는 골랐다.

하지만 초록병 소주는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선택지가 사라진 자리에서 혼자 남은 술에 가깝다.


초록병 소주는 전통적인 의미의 '한국 술'과는 조금 다른 출발선을 갖고 있다.

곡물을 빚고 발효시키고, 시간을 들이는 술이 아니라 알코올을 희석해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 술이다.


희석식 소주의 시작을 알아보자.

1895년 일본이 동아시아 최초로 주정 생산에 성공하고 1899년 이 주정을 물과 향료를 섞어 만든 '신식 쇼츄'를 내놓았는데 이것이 오늘날 희석식 소주의 직계 조상이다. 이 술은 알코올 용액에 감미료, 향료를 더해 마시기 좋게 만든 공업형 대량주였고 일본 내에서는 주로 가난한 서민층, 군수용 보급주로 쓰였다.

이 술은 일제강점기 초반 1910년대 조선에 유입되었고 자리잡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분기점은 1965년이었다.

양곡관리법에서 국내 식량 부족을 이유로 쌀·잡곡을 원료로 하는 술 생산이 사실상 금지되면서 쌀 기반 막걸리, 증류식 소주, 약주 대부분이 생산에 제약을 받았다.

반면, 타피오카, 고구마, 카사바 등 수입 전분으로 만든 주정을 희석하는 희석식 소주는 이 규제에서 자유로웠다. 그 결과 희석식 소주는 기존 전통주의 대체제이자 유일하게 안정적으로 공급이 가능한 '국민 술' 포지션을 획득했다.


따라서 희석식 소주는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맛은 언제나 같았으며, 가격은 낮게 유지될 수 있었다. 우리가 식당에서 술을 마시면서 중요한 건 취향이 아니었다. 효율이였다.

맛있어서라기보다는 만들기 쉽고, 공급하기 쉬웠기 때문에 이 술은 전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유통은 언제나 조용히 모든 것을 결정한다.

식당 입장에서는 술은 상품이다.

잘 팔려야하고, 항상 손님에게 내줄 수 있어야하며, 고민이 짧을 수록 많이 팔린다.

초록병 소주는 그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했다. 회전율이 빠르고 재고 부담이 적으며, 병은 재활용이 가능했다.

소비자 역시 그 이점을 함께 누렸다.

어디서나 같은 맛에 싼 가격으로 취할 수 있고, 길게 고민하지 않고 선택 가능했다.

그 결과, 지금의 술집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초록병 소주는 나쁜 술일까.

그렇지도 않다.

술이 좋고 나쁨이 있기보다는 취향의 문제에 가깝다.

애초에 술이라는 것 자체가몸에 해로운 물질이기도 하다.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결국 취기를 느끼기 위함이 가장 크다.

초록병 소주는 전국 어디를 가도 맛볼 수 있는 접근성, 5000원이면 취할 수 있는 가격, 한국의 술문화를 지탱해온 역할을 해왔다.


문제는 술 자체가 아니다.

이 술만 남았다는 사실이다.

다른 선택지가 사라진 시장에서 취향이 자라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초록병 소주 이후의 한국 술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다시 술을 고를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 지역에서 조금씩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우리술들이 만들어 지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 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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