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사람들이 뭘 알겠어요.

by yuri

부장님이 공강시간에 "우리 회식 언제 할까요? 먹고 싶은 메뉴 있어요?"라고 물어봤다. 그런데 한 선생님께서 "여기 젊은 사람들만 있는데 물어서 뭐해요. 뭐든 좋다. 상관없다고 말할텐데"라고 했다. 의견을 내도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거절당할 것이 뻔해 의견을 내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남의 입을 통해 그 말을 들으니 뭔가 존중 받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노트북은 오늘 내일하는지라 기안문을 올리다가도, 수업을 하다가도 혼자 꺼져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하도 블루 스크린 떠 작성 중이던 문서가 날아가는 바람에 수리를 의뢰했더니 "더이상 취할 수 있는 조취가 없습니다. 노트북을 바꿔 달라고 하세요"라는 답변을 받았다. 다행히 몇달 뒤에 제비뽑기에 당첨이 되어 노트북을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기쁜 마음을 안고 부서로 복귀했는데 한 선생님께서 "원래 좋은 노트북은 연장자 순으로 사용해야 되는거 아니예요?"라고 말했다. 그냥 웃어 넘기면 되는데 나는 또 "선생님 저는 이번에 노트북을 교환하지 못하면 더이상 일을 할 수 없어요. 수리 기사님께서 더이상 수리할 수 없다고 하셨어요"라고 했다. 변명인지 항변인지 모르겠지만 해명을 하고 있는 이 상황이 웃기고 기분이 언짢았다.


학창시절에는 잘못된 행동을 하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선생님께 꾸지람을 듣는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사과하라고 배운다. 사회 초년생 때는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받으며 꾸지람이 섞인 잔소리를 듣는다. 눈치봐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 수록 상황은 역전이 된다. 나에게 애정어린 잔소리를 할 사람은 점점 없어진다. 기분 나쁠 것 같은 말을 해서 관계가 틀어질 바에는 말을 안하거나 관계를 단절한다. 주위 사람들로 부터 피드백을 받지 못하니 나의 못남은 더욱 날카로운 송곳처럼 튀어나온다. 어릴 때야 주위에서 이런저런 피드백을 줘서 내가 원하든 원하치 않든 뾰족 튀어나오지 않게 관리를 당한다. 때론 그 관리가 너무 심해 망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되면서 나를 변화시키려고 하기 보다는 남을 변화시키려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 수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수업 중에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보면 대부분 눈치만 보다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거절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해도 전교 학생자치 회장-부회장 자리는 경합이 치열했다. 서로 나가려고 했고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게 당연했다. 하지만 요즘은 리더십 전형이 공식적으로는 없어져서 그런지 학생자치 회장-부회장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거의 대부분 단독 입후보를 하고 무투표로 당선된다. 경합이 될 것 같으면 후보 등록 과정에서부터 포기한다.


예전에는 내가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편이였다. 대화 중 침묵을 견딜 수 없었고 내가 화제를 던지면 티키타카가 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내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 것 같아 좋았다. 그러다 문뜩 '내가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나에게 맞춰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나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말을 많이 하려고 하지 말고, 침묵을 견딜 수 있어야 해. 말을 많이 할수록 무리수를 던지게 되고 그럴수록 실수를 하게 되. 남에게 말로 상처를 줄 바에는 아무말도 안하는게 나아"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지금은 되도록 말을 안하고 듣는 편이다. 가끔 너무 말을 안해서 '소외 당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 주위 사람들은 나를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한다.(물론 나를 깊이 오래 사귄 사람들은 나를 극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어쩌면 사람은 보고 싶은데로 세상을 바라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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