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 트렌드가 있듯, 입시에도 분명 트렌드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할 때 최대한 ‘진로’와 엮으려 애썼습니다. 과목별 세부 특기사항도 어떻게든 진로와 연결해 적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흐름은 달라졌습니다. 억지로 끼워 맞추기보다, 해당 과목에서 어떤 활동을 했고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를 솔직하게 기록하는 추세입니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대국을 펼쳐 4패 1승을 거뒀습니다. 그 뒤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코딩 열풍’이 불었습니다.
2016년 이전만 해도 제 주변 정보 선생님들은 “다른 과목으로 바꿔야 하나?” 하고 고민하곤 했습니다. 실제로 정보에서 진로 교과로 전과한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부상한 뒤, 정보 교사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알파고 이후 많은 학부모님들이 자녀에게 코딩을 가르쳤지만, 앞으로도 ‘코딩만 잘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2024년 하반기부터 지금(2025년)까지 구글·메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대규모 해고를 단행했습니다. 인공지능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중간 관리층이 대량 해고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개발자·코딩 인력이 먼저 구조조정 대상이 됐습니다.
트렌드를 좇는 일은 겉보기에 똑똑하고 멋져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른 요즘엔 큰 리스크를 떠안는 일이기도 합니다. 입시는 1년짜리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최소 3년 이상 이어지는 장거리 레이스입니다. 그래서 저는 ‘변화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어떤 사람을 뽑고 싶어 할까요? 공부 잘하는 사람? 머리 좋은 사람? 모두 맞는 말이지만, 대학은 결국 대학 브랜드 가치를 높여줄 사람, 다시 말해 취업을 잘하고 조직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와 동일하죠. 그래서 ‘좋은 대학 = 좋은 일자리에 취업 잘되는 대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여줘야 할까요?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를 통해 내가 조직 생활을 얼마나 잘하며, 연구·탐구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를 보여주면 됩니다. 그래서 리더십과 탐구력이 중요합니다.
제가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엔 ‘리더십 전형’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더십이 덜 중요해진 건 아닙니다. 대학이 생기부를 보는 이유가, 그 학생이 얼마나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학습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모든 지원자에게 리더십을 요구하다 보니 전형 이름만 사라졌을 뿐, 리더십의 가치는 그대로입니다.
저는 담임으로서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내향적인 성향이어도, 생기부만큼은 외향적인 사람처럼 보여야 해.”
게다가 전면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과목 선택조차 학생 스스로 주도해야 합니다. 준비된 학생에게 고교학점제는 기회이지만, 준비가 안 된 학생에겐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라는 옛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아요. 뭐라도 열심히 해야 격차를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에게 입시를 강조하는 건 지나치지 않나?”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은 생기부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시기입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능과 내신 성적에 대한 부담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기 어려워지고, 시간적인 여유도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잠을 줄여가며 무리하게 활동을 늘리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명품의 가치는 디테일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활동의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한 가지 활동을 하더라도 얼마나 깊이 있고 성의 있게 참여했느냐입니다.
또한 고3은 대부분의 학생과 교사가 입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어 비교적 생기부 관리가 잘 이루어집니다. 고2 역시 진로 방향이 어느 정도 정해진 상태에서 준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고1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시기이기 때문에, 이 시기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오히려 더 큰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남들이 다 열심히 하는 걸 똑같이 따라 해서는, 내가 아주 뛰어나지 않은 이상 평균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진짜 경쟁력은 남들이 미처 신경 쓰지 않는 시기와 활동에서 차별성을 만들어낼 때 생깁니다.
수업과 담임 업무를 하며 수많은 1학년을 만났고, 동료 선생님들과 “이것만 고치면 참 좋을 텐데!” 하고 아쉬워했던 공통 디테일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이어서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