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활동

by yuri
생기부, 그 고민의 시작과 깊이

진로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로서, 매년 이맘때면 똑같은 고민에 휩싸입니다. 바로 '진로 활동 특기사항'란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에 대한 것입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에서 진로 수업을 해보니, 시중에 나와 있는 진로 관련 책들은 대개 여러 직업을 소개하고, 해당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감상문을 쓰는 활동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런 활동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문득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진로 활동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직업을 나열하고 경험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의 미래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수업을 고민하는 일은 늘 숙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저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핵심은 결국 학생이 가고자 하는 학과나 전공과 관련된 공부를 얼마나 집중적이고 체계적으로 해왔는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올해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진로 수업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1학기에는 진로가 비슷한 친구들끼리 모여 프로젝트 탐구 활동을 진행합니다. 함께 주제를 정하고 탐구한 내용을 발표한 후,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자기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그리고 2학기에는 1학기 프로젝트 탐구 활동과 연관 지어 독서 활동을 하고 감상문을 제출합니다. 한 학기를 이렇게 보내고 나니 확실히 특기사항에 쓸 말도 많고 기존에 심리·적성 검사 결과 등과 관련된 내용들로만 채워졌던 부분이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한 내용들로 채워지더군요.


예상 밖의 발견: 1학년과 2학년의 차이

1학년과 2학년을 대상으로 같은 수업을 해보니 몇 가지 흥미로운 특이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생명과학 분야의 경우, 유전자 가위처럼 특정 주제에만 몰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물론 중요한 주제지만, 더 다양한 분야를 탐색할 수 있도록 폭넓은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발표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년별 차이가 두드러졌는데 2학년 학생들은 전문성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자신들이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수준에서 내용을 구성하려는 노력이 보이는데 반면 1학년 학생들은 대학생 이상의 전공 지식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발표 자료를 구성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발표하는 학생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표를 하니 듣는 학생들도 당연히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 이건 좀 문제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생기부, '지식 자랑'이 아닌 '탐구력 보고서'

저는 학생들에게 생기부는 '내가 이렇게 많은 내용을 알고 있다!'라고 자랑하는 공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고등학교까지는 넓게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지만 대학교부터는 좁은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공부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교 이상에서 요구하는 공부 역량은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파고들 수 있는 '탐구 역량'입니다.

가끔 학생들이 제출한 보고서나 자기 탐구 보고서를 보면 비전공자인 제가 봐도 '이건 고등학교 수준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드는 글들이 많습니다. 생기부에는 논문과 관련된 내용을 되도록 작성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이런 내용들이 자칫 선행학습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탐구 주제를 선정하고 자료를 조사할 때 너무 어려운 내용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오히려 과도하게 어려운 내용을 선택할 경우, 대학에서도 그 내용의 진정성을 의심하여 기록 자체를 신뢰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꼭 이 주제에 대해서 탐구하고 싶은데요"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단지 탐구 활동을 해보고 어려움을 느꼈다면, 그 어려움을 감상문에 솔직하게 적으면 됩니다. 감상문이나 생기부에 잘한 내용만 적을 필요는 없습니다. "어려움을 느껴서 관련 주제와 연관 지어 추가 학습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적는 것이 오히려 훨씬 진정성 있고, 탐구 과정에서의 성장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기록이 될 수 있습니다.


진짜 알맹이가 중요하다: 질소 과자 생기부는 그만!

질소가 가득 찬 봉지 과자처럼 내용물은 조금인데 화려한 미사여구와 어려운 내용만 가득한 생기부는 좋은 생기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결국 여러분의 탐구력입니다. 그리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주변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세요. 우리 학생들은 단체생활을 하고 있는 만큼, 설문조사를 진행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해당 주제와 관련해서 친구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인식은 어떤지 등을 조사해 보세요. 혼자서 할 수 있는 활동보다는 단체로 할 수 있는 활동이 좀 더 좋은 인상을 줍니다. 설문진행 시 표본 조사 단위가 크면 좋겠지만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힘드니, 최소한 반 친구들을 대상으로라도 진행해 보시길 바랍니다.


면접을 위한 조언: 과유불급(過猶不及)

진로 관련 특기사항의 핵심은 내가 이렇게 많은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면접을 진행하는 교수님들보다 여러분이 많은 내용을 알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생기부에 과도하게 어려운 내용을 적었다가, 정작 생기부 기반 면접에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고3 때 생기부 기반 면접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고1 때 써놓은 어려운 내용을 다시 공부하느라 귀중한 면접 준비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생기부는 학생의 성장 가능성과 탐구 의지를 보여주는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기록이 되어야 합니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6화봉사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