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교무실 앞 복도는 묘하게 술렁인다.
체육 선생님 김태훈이 지나가는 순간, 여학생들의 눈빛은 반짝이고, 공기는 분홍빛으로 물드는 듯하다. 수업 종이 울리기도 전, 복도는 작지만 열렬한 팬미팅 현장처럼 활기를 띤다.
“선생님, 오늘도 진짜 멋져요!”
“이거 쿠키예요! 어제 저녁에 제가 구웠어요!”
김 선생님이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 짧은 순간조차, 마치 환영의 레드카펫을 밟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책상 위에는 늘 초콜릿, 손편지, 아기자기한 간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옆자리 교사들끼리 수군거린다.
“아휴, 태훈쌤은 진짜 좋겠다.”
“그러니까요. 아침마다 저렇게 환영받으면, 학교 올 맛 나겠어요.”
“선생님도 항상 누군가가 간절히 기다리잖아요.”
“내가요? 누가?”
“교육청 공문이요.”
“아… 진짜. 일할 맛 난다.”
“어서 회신해 주세요. 어제도 전화 왔어요.”
“알았어요! 한다고요!”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씩 웃었지만, 시선이 머문 내 책상은 유난히 조용하고 심심했다. 질투라기보다, 얄팍한 허전함 같은 것.
그래서 결심했다.
“나도… 해볼까?”
그렇게 ‘학교 아이돌 되기 프로젝트’는 조용히 시작되었다.
[1단계: 패셔니스타 되기]
늘 무채색 옷만 입던 나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진열대 마네킹이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사고, 유행이라는 색조 화장품도 구매했다. 유튜브에서 ‘트랜드 메이크업’이라는 제목의 영상도 반복해서 봤다. 거울 앞에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좀 괜찮지 않아?”
다음 날, 친구는 눈을 크게 뜨더니 말했다.
“야, 이번엔 진짜 선생님 같지 않다.” 말투는 농담 같았지만 기분은 묘하게 불안했다.
며칠 뒤, 교감 선생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선생님, 요즘 복장이 조금… 과한 것 같아요. 학생 지도를 위해서라도 조절이 필요하겠네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왔다. 작전 1단계, 조용히 실패했다.
[2단계: 역조공 전략]
“오늘 발표 잘한 사람, 젤리 줄게요~”
아이들은 환호했고,
“선생님 짱!”
“진짜 예뻐요!”라며 칭찬이 쏟아졌다.
교실은 반짝였고, 나는 잠시나마 팬미팅 같은 수업을 경험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후폭풍이 있었다. 교무실 문이 자주 열리더니, 남학생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선생님, 초콜릿 있나요?”
“오늘도 예쁘세요! 과자 하나만…”
나는 어느새 간식을 기대하며 ‘칭찬 코인’을 넣는 자판기가 되어 있었다. 작전 2단계, 귀엽지만 분명히 실패했다.
그런 가운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생님이 커피 한 잔을 조용히 내밀었다.
“요즘 수업 어때요?” 짧은 질문이었지만, 묘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가 건넨 커피는 내가 평소 즐겨 마시던 바닐라 라떼였다. 향도 온도도 익숙했다. 특별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왠지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며칠 뒤, 내 책상 위엔 조용히 놓인 카카오 72% 초콜릿 하나가 나타났다. 쪽지도 없었고, 포장도 없이 수수하게 올려진 그것.
교무실이 금세 술렁였다.
“와, 누구야~”
“선물 안 받은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선생님은 결혼하셨잖아요. 그러시면 안 되죠~”
“부럽다, 부러워. 그런데 누구야?”
나는 커피잔을 들며 말한다.
“글쎄요. 저도 누군지 잘...”
“에이, 짐작가는 사람도 없어?”
“음... 전혀요. 생각보다 제가 잘 살았나보죠”
누군지는 몰라도, 기분은 꽤 괜찮다.
겨울 방학이 끝난 어느 날, 평온하던 교무실에 작은 폭풍이 불었다.
“선생님, 결혼하셨다면서요!”
“누구랑요? 진짜예요?”
결혼식은 가족과 가까운 동료들만 참석한 조촐한 행사였다. SNS에 사진도 올리지 않았고, 결혼식에 참석한 선생님들께 “비밀엄수”라는 특명도 주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모를줄 알았는데 그 조용한 분위기는 오히려 불을 지폈다.
학생들은 곧바로 ‘신랑 추리 게임’을 시작했다. 칠판에는 후보 리스트가 붙었고, 복사기로 출력한 추리 포스터가 교실 곳곳에 돌기 시작했다.
- 신랑 후보 -
김태훈 선생님: 교무실 옆자리, 급식실 동행 빈도 높음
이정우 선생님: 말은 없지만 조용히 챙겨주는 스타일. 같은 학년 수업을 함
윤보람 선생님: 신입 선생님. 미소가 많음
미지의 외부인(?): 학교 밖 인연이라는 주장도 있음
학생들은 교무실에서 나를 붙잡고 질문을 퍼부었다.
“선생님! 누군데요?”
“힌트 하나만요, 분위기라고 알려주세요”
“사진은요? 결혼식 때 왜 저희들 안부르셨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너희한테 추리해보는 재미 남겨두려고 그랬지.”
그러자 어느 학생이 외쳤다.
“힌트 주세요! 제발요!”
“음… 나랑 커피 취향이 같은 사람?”
교실은 폭발했고, 시선은 김태훈 선생님에게로 쏟아졌다. 그는 평소처럼 창밖을 바라보았다.
수련쌤이 말했다.
“나는 알지~”
“선생님 저희한테 알려주세요. 제발요~”
“당사자가 말을 안하는데 내가 말할 수는 없잖아”
학생 한명이 말했다.
“혹시 외부인이라면?”
3학년 5반에는 자칭 ‘우리학교 셜록’이라 불리는 학생, 민재가 있었다. 급식 메뉴 예측은 물론, 선생님들의 생일까지 꿰고 있는 관찰력의 대가.
“선생님의 주변 인물, 교무실 이동 동선, 커피 취향… 이건 퍼즐이에요.”
민재는 추리 보드를 만들었고, 결혼식 이후 비공개로 전달받은 흐릿한 웨딩 사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수트 각도, 어깨 선, 손가락 길이까지 캡처해 대조했다.
“신랑은… 이정우 선생님이다. 90% 확신합니다. 나머지 10%는 여운.”
그러던 어느 날, 민재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교무실 회식 사진 한 장에 시선을 멈췄다. 사진 속 이정우 선생님이 웃으며 들고 있는 케이크엔 ‘신랑 축하해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어? 그럼 김 선생님이 신랑이 아니라 축하한 사람?”
민재는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그 날 오후, 학년부 단톡방에 올라온 또 하나의 사진. 수줍게 손을 잡고 있는 두 사람. 흐릿한 신랑의 실루엣 뒤편,
선생님 손에는 익숙한 카카오 72% 초콜릿이 들려 있었다.
민재는 조용히 칠판으로 가서 이정우 선생님의 이름을 지우고, 붉은 마커로 적는다.
신랑은 학교 안에 있다. 추리는 끝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교무실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손가락엔 얇은 반지가 반짝이고, 옆자리에서는 익숙한 향의 커피가 놓인다.
학생들은 여전히 묻는다.
“선생님, 진짜 누구예요?”
“아직도 안 알려주실 거예요?”
나는 커피잔을 들고, 웃는다.
“응. 너희가 맞혀봐.”
민재는 아직도 추리노트를 품에 안고 교무실을 오가고 있다. 그의 25가지 가설과 7장의 분석 노트, 그리고 2개의 키워드— 커피, 초콜릿 — 모두는 여전히 그를 정답으로 이끌지 못했다.
교무실 창가에 앉아 있는 김태훈 선생님은 오늘도 평소처럼 평온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다.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가운데, 그가 조용히 말한다.
“선생님, 오늘도 커피 괜찮죠?”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커피를 내려준다. 바닐라 향이 살짝 나는 커피 한 잔. 이젠 말하지 않아도 온도와 향, 잔의 위치까지 서로 맞아떨어진다.
나는 커피를 들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추리 포스터가 붙은 복도 너머에서 학생들은 오늘도 분석과 예측, 상상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정답은, 한 잔의 커피와 한 조각의 초콜릿, 매일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교무실 안.
그 안에 조용히 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