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교사 시절, 나는 열정이 끓어오르는 사람이었다. 복도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학생이 지나가면 자동 반사처럼 외쳤다.
“삑— 복장 불량! 이리로 오세요.”
교문 앞에 서면 거의 보안검색대 직원처럼 굴었다.
“학생이면 공부를 해야지. 화장이라니. 너희는 아직 어려서 안 해도 예뻐.”
빠지지 않는 단골 멘트도 있었다.
“라떼는 말이야...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이런 거 상상도 못했어.”
그렇게 나는 학생들 사이에서 ‘삑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은 짬이 좀 찼다. 삑삑거리던 나는 어느새 침묵의 미덕을 터득한 사람이 되었다. 이젠 교사로 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월급을 받으니까.
교육학 교과서 첫 장엔 ‘교사는 성직자처럼 살아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성직자는 개뿔. 교사는 그저 노동자다. 정글 같은 교실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감정 노동자’
이제 나는 더 이상 모든 아이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될 놈만 한다.”
가르칠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단순하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질 줄 아는 아이는 — 된다.
그리고 오늘, 건영이는 그 기준의 시험대에 올라 있었다.
오전, 꾀병인지 진짜인지 모를 이유로 조퇴를 요청했고 교무실에서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예전의 나라면 학생과 감정 vs 감정으로 부딪혔겠지만, 이제 나는 가늘고 길게 가야 하는 월급쟁이 교사다. 손해 보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종례 시간 전. 전달사항을 타이핑하고 있는데 건영이가 교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선생님…”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까… 제가 잘못했어요.”
속으로 ‘옳다구나!’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쳤지만 겉으로는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건영이가 뭘 잘못했는데?”
“교무실에서… 선생님께 화낸 거요. 그땐 선생님이 제 말을 무시하는 것 같았고, 저를 거짓말쟁이로 보는 것 같아서… 너무 화났어요.”
나는 살짝 미소 지었다. 그 짧은 말속에서 솔직함, 반성, 용기를 읽을 수 있었다. 그걸 꺼내는 것은 어른도 버거운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구나. 사과해 줘서 고마워. 지금은 좀 괜찮아졌니?”
“네. 지금은 괜찮아요.”
나는 건영이를 내 옆 상담 의자에 앉히며 말했다.
“건영아, 사람과 대화를 할 땐 내 말이 항상 받아들여질 거라고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어. 내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 땐 서운하지. 하지만 무턱대로 내 감정을 터트려버리면 오히려 상대방과 더 멀어질 수 있어.”
건영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그냥… 감정이 통제가 안 됐어요.”
“음... 그럴 땐 말이야. 잠깐 대화를 중지하자고 얘기하거나, 속으로 1, 2, 3을 세고 나서 말해보는 건 어때?”
“음… 어렵지만… 해볼게요.”
됐다. 이놈은 된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선생님이 너한테 ‘좀만 참아보자’라고 말했던 건, 네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야.”
건영은 잠시 입술을 깨문 뒤, 천천히 말했다.
“사실은… 그냥 학교가 너무 답답해서… 나가고 싶었어요.”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럴 수 있지. 선생님도 가끔 교무실에서 몰래 도망치고 싶단다. 교무실 특유의 냄새만 맡아도…”
건영이는 피식 웃었다.
“있지. 선생님도 사람이라서, 너처럼 답답하고 숨이 막막한 순간이 있어.”
나는 건영이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힘들 땐 말해. 합법적인 일탈 방법을 가르쳐줄게.”
“그게 뭔데요?”
“To be continued. 한 번에 다 알려주면 장사 밑천이 바닥나니까 다음 기회에.”
“에이…”
“아쉬우면 학교 열심히 다녀. 혹시 내가 기분이 좋아져서 창고 대방출처럼 이런저런 노하우를 풀어줄지도 모르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자, 어서 올라가자. 친구들이 기다리겠다.”
“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건 교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게임 속 캐릭터를 키우는 느낌이랄까. 그게 교직의 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