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2학기는 늘 특이한 공기를 품고 있습니다. 교사는 어떻게든 점수를 주려 하고, 학생은 그마저도 거부합니다. 겉으로는 교실이 돌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멈춰버린 톱니바퀴처럼 삐걱거립니다.
“10분이면 끝나는 과제야. 그냥 해보자.”
“AI를 쓰면 클릭 한 번이면 쉽게 할 수 있어.”
“혹시 재수를 하게 되면 2학기 성적도 반영되니까 해보자.”
교사들은 이렇게 달래보지만, 학생들의 대답은 대부분 같습니다. “안 할래요.”
아이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재학생은 2학기 성적이 대입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수능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데 쓰고 싶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안 하겠다”는 선언을 하는 학생들이 매년 늘어나는 모습은 눈여겨볼 만한 변화입니다.
예전에는 수행평가를 포기하는 학생이 반에 서너 명 정도였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공부와 담을 쌓은 학생들’이었지요. 하지만 요즘은 성적 상위권, 중위권을 막론하고 절반 가까이가 수행평가를 포기합니다.
결과는 극단적입니다. 어떤 학생은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해내며 좋은 점수를 받지만, 다른 학생은 기본 점수로만 버팁니다. 성적표는 점점 양극단으로 쏠립니다. 중간층이 사라진 성적표를 보고 있자면, 마치 사회 현상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제 과목만의 문제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국어, 영어, 수학 같은 주요 과목 선생님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도 그래. 수행평가를 포기하는 애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어.”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건 특정 과목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아이들 세대의 특성이 드러나는 현상이라는 것을요.
아이들을 더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특징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혼자 해볼까?’라는 생각보다 ‘학원부터 알아봐야지’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는 점입니다.
면접 준비가 대표적입니다. 담임 선생님이 모의 면접을 진행하고 예상 질문지를 나눠주어도 학생들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학원 다녀야 할 것 같아요.”
학교는 수년간 쌓인 데이터로 대학별 커트라인과 면접 유형까지 알고 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학원을 더 신뢰합니다. 과목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가 “우리 학교는 이 과목을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라고 조언해도, 학생들은 “학원에서 이 과목을 하라 했어요”라며 그대로 따릅니다.
흥미로운 점은, 시험 문제를 내는 건 학교 교사인데 학생들이 더 열심히 듣는 건 학원 수업이라는 사실입니다. 수업시간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학원 숙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 학교의 역할은 점점 줄어드는 듯 보입니다.
아이들이 학원을 신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밑바탕에는 ‘불안’이 있습니다. 대학 입시 제도는 점점 복잡해집니다. 정시, 수시, 교과 전형, 종합 전형, 논술 전형…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것이죠.
반면 학원은 단순합니다. “이것만 하면 된다.” “내가 시키는 대로 따라와라.”
확신이 담긴 단순한 지침이 학생들에게는 큰 안도감을 줍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하나로 정리해주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법이니까요. 반면 학교는 잘못된 안내가 발생하면 민원에 시달릴 수 있어, 학원처럼 단순하고 확신 있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의 학원 의존은 단순한 게으름이나 무책임이 아닙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성장한 세대이기에, 그 정보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을 대신해 길을 단순하게 만들어줄 사람을 찾습니다. 그것이 학원이 되는 것이죠. 확신에 찬 목소리, “이것만 해라”라는 단순한 지침은 불안을 덜어주는 안심제 역할을 합니다.
아이들을 관찰하며 깨닫습니다. 예전에는 교육이 지식을 채워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부족한 것을 채워 넣고,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아이들은 이미 넘칠 만큼의 정보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제 교육의 몫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기며, 복잡한 길을 단순하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지금 세대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교육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공부’가 아니라 ‘덜어내는 공부’입니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 알려주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몫입니다.
교실에서 본 이 모습은 직장 생활에서도 이어집니다. Z세대 신입사원들은 ‘무엇을 더 해야 하느냐’보다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덜어내야 하느냐’를 묻습니다. 학원에서 “이것만 하면 된다”라는 말을 신뢰했던 것처럼, 회사에서도 명확한 기준과 단순한 지침을 따를 때 더 큰 안도감을 느낍니다.
결국 지금 세대에게 필요한 건 끝없는 채움이 아니라 현명한 가지치기입니다. 공부에서도, 일에서도 ‘덜어내는 힘’을 길러주는 것. 그것이 Z세대가 불안 대신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