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평등의 언어를 배우다

by yuri

‘교실 풍경의 변화’

제가 교직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외국에서 살다 오거나 영어 유치원을 다닌 학생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경험을 가진 아이들이 교실에 점점 많아졌습니다.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도 늘어나면서, 교실 안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색깔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를 마주하면서 저는 종종 “한국의 교실이 이제 더 이상 예전 같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과거의 교실은 유교적 질서가 강하게 작동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서면 학생들은 정자세로 앉아야 했고, 선생님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교실은 훨씬 자유로운 공기를 품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외국 문화에 더 친숙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사회 전반이 이미 변해버린 탓일까요. 분명한 건, 교실은 더 이상 일방적이고 위계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국악 수업에서 배운 것

대학교 시절 국악 수업을 들을 때의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팔짱을 끼고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수업 시간에 팔짱을 끼다니, 이게 무슨 태도야!”

그 시절엔 수업 중에 물을 마시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공부는 정좌한 채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율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을 보면, 그 규율은 이미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지금 교실에서 아이들은 음료를 손에 들고 수업을 듣습니다. 몰래 과자를 꺼내 먹기도 합니다. 어떤 선생님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버릇없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수업은 더 이상 ‘특별한 의식’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연장선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꼭 엄숙한 자리에서만 배움이 일어나는 건 아니라는 걸 아이들은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외국에서 공부하신 음악 교수님들은 “냄새만 심하지 않다면 수업 중에 밥을 먹어도 괜찮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공부는 배고픔을 참고 억눌러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안한 상태에서 더 잘 이어진다는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겠지요. 한국도 서서히 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교실에서 실감합니다.


위계에서 대화로

아이들과 직접 대화를 나눌 때는 이런 문화적 변화를 더 뚜렷하게 느낍니다. 예전엔 선생님이 말하는데 학생이 말대꾸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앉아라, 바르게 해라”라는 말은 늘 교실의 공기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은 선생님을 ‘위’에 있는 사람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나와 같은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지요.

처음엔 이 변화가 혼란스러웠습니다. “교사로서 권위가 무너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배운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과는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보다 ‘사람과 사람’이라는 관계 속에서 만날 때 대화가 훨씬 깊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처음에는 감정적으로 반박하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곧 논리와 근거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이들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금세 끓어오르지만 또 금세 가라앉는 모습. 화를 냈다가도 빠르게 “아, 제가 잘못했네요”라고 말하는 솔직함. 저는 이것이 Z세대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너 몇 살이야?”가 통하지 않는 세상

저는 종종 이런 장면을 상상합니다.
“너 몇 살이야? 선생님한테 이게 무슨 태도야?”
예전에는 이 말 한마디로 모든 대화가 끝나곤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다릅니다.
“저 ○○살인데요, 왜요? 나이 많은 게 자랑이에요? 선생님이면 다예요?”

처음엔 이런 반박이 무례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그저 자신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영어 콘텐츠를 접하고, 외국 문화를 익히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런 태도가 몸에 밴 것 같습니다. 영어를 잘하려면 단어만 아는 게 아니라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처럼, 아이들은 이미 다른 문화적 관습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래서 수업에서도 단순히 “배울 게 많다”는 것보다 “재미있다”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


온라인에서 배운 평등

아이들이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된 데에는, 온라인 환경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은 나이나 지위를 가려내기 어려운 공간입니다. 내가 올린 글에 댓글을 단 사람이 나보다 어린지, 나이가 많은지, 또는 지식이 많은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오프라인에서는 금세 드러나는 차이가, 온라인에서는 가려지는 것이지요.

이 세대는 어릴 때부터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나눌 때 나이, 지위, 배경보다는 ‘논리와 공감’이 우선시 됩니다. 온라인에서 배운 평등한 대화의 방식이 오프라인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교실에서 선생님에게 당당히 반박하는 태도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빠른 인정, 빠른 사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세대의 장점을 분명히 느낍니다. 바로 빠른 인정과 빠른 사과입니다. 아이들은 납득이 되면 뒷끝을 남기지 않습니다. “제가 틀렸네요, 죄송해요.” 그 한마디를 쉽게 내뱉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잘못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체면, 권위, 자존심이 앞섰지요.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체면보다 솔직함을 선택합니다.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말하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이 단순한 태도 속에서, 저는 새로운 가능성을 봅니다.


마무리하며

Z세대는 분명 이전 세대와 다릅니다. 그들은 외국 문화에 더 익숙하고, 위계보다는 평등을 중시하며, 온라인 소통 방식을 오프라인으로 옮겨온 세대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솔직하고, 인정이 빠르고, 뒷끝이 없습니다.

교직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아이들만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변화일지도 모른다.”라구요. 교실은 언제나 시대를 가장 빨리 비추는 거울이었으니까요.

수요일 연재
이전 03화"합리와 손해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