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아.
어릴 적 너는 뭐든 나누는 아이였지. 새로 산 장난감을 친구에게 선뜻 선물로 주고, 좋아하는 간식이나 예쁜 옷도 아낌없이 나눠주던 네 모습이 엄마 눈에는 늘 사랑스러웠어. 근데 한편으론 걱정이 앞서더라. 세상이 늘 네 마음처럼 따뜻하지만은 않으니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 알지? 혹시라도 네 마음 다치지는 않을까 봐 걱정했어.
사실 엄마도 그랬어. 남을 돕는 일이 좋았고, 내가 건넨 작은 도움에도 환하게 웃는 상대방을 보면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졌거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내 친절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더라. 심지어 내가 그들의 기대를 못 채워주면 서운해하거나 화를 내기도 했어. 엄마는 혹시라도 상대방이 상처받을까 봐 조심조심 말하고 행동하는데, 그들은 엄마 마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는 게 힘들었어.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사람에 대한 회의감과 불신이 생기더라. 그래서 누가 엄마한테 "착하다"라고 말하면, 칭찬이 아니라 욕처럼 들릴 정도로 마음이 삐뚤어졌던 것 같아.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엄마는 어른이 된 후에도 계속 '착한 아이 신드롬'에 갇혀 있었던 것 같아. 타인의 칭찬에 목말라 있었고, '잘한다', '착하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고 싶었던 거지. 내가 뭘 원하는지, 뭘 좋아하는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남들의 기준에 엄마를 맞추려 애썼던 것 같아. 낯선 사람의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고, 불편해도 내색하지 못했던 건 어쩌면 그들이 엄마를 '착한 사람'이라고 계속 봐주길 바랐던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어.
남을 배려하고 돕는 게 나쁜 건 절대 아니야. 더불어 살아가려면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지. 하지만 친절을 모든 사람에게 쏟아낼 필요는 없단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좋은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지. 네 친절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이용하려는 사람은 분명 존재해. 그런 사람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너만의 단단한 기준이 있어야만 해.
모두의 부탁에 "네"라고 답할 필요 없어. 네가 부탁했을 때 외면하거나, 네 친절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에게는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 물론 어렵다는 거 알아. 엄마도 아직 능숙하게 하지 못해서 매일 연습 중이니까. 그렇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이야. 관계의 선을 넘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하지 마세요"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 그래야 그 사람이 너와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거든. 선을 가볍게 넘는 사람들은 네 반응을 보면서 자신과의 관계를 시험하는 거니까, 초반에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해.
그리고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려 애쓸 필요도 없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없거든. 이미지가 좋은 연예인도 악플 때문에 고생하는데 우리라고 예외가 될 수 없지. 그러니 너무 많은 사람들의 눈치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남이 아무리 너를 인정해 줘도 너 스스로를 사랑하고 인정하지 못하면 그건 아무 의미 없단다.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을 아는 사람은 나이기 때문이지. 그러니 남에게 인정받기보다는 나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됐으면 해.
우리 딸이 건강하게 태어나 준 것만으로도 이미 엄마한테는 더할 나위 없는 효도를 한 거란다. 엄마가 널 임신했을 때 바란 건 딱 하나였어.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나게 해달라고. 그러니 사랑하는 딸아, 너는 건강하게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효도를 했어. 그러니까 더 이상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소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너의 진짜 모습으로 살아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