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아.
외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늘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돼라”는 말씀을 하셨어. 그래서 엄마는 대학을 선택할 때, 입학 여부가 불확실한 서울대보다는 집에서 가까운 국립대를 지원하기로 했지. 입학 성적이 좋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고, 대학 생활 내내 1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어.
엄마가 대학을 다닐 때는 한동안 음악 선생님들을 뽑지 않아 임용 경쟁률은 100:1에 달하는 지역도 있었단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교원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은데 그만큼 음악 선생님을 뽑지 않으니 합격하기 위해서는 5년 정도 걸릴 거라는 말을 하며 겁을 줬어. 하지만 엄마는 ‘내가 1등인데 학교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1등도 책임을 못 지는 곳이라면 학교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며 천하태평하게 있었어. 그래서 조기 졸업을 한 후에도 짤막하게 비정기적으로 시간강사 일만 했어.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면 학교에서 취업했다고 판단해 엄마를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았거든. 제대로 된 일자리에 취업을 하지 않고 있으면 학교에서 사립학교 음악 교사 자리를 알아봐 주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었던 것 같아. 그래서 대학원 진학도 하지 않았고, 임용고시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지.
하지만 매년 1등은 나오고, 그 1등들이 갈 수 있는 학교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지. 학교는 1등이 어디에 취업했는지 보다 전체적인 취업률을 중요하게 생각해. 그때는 어렸으니까 그런 생각 자체를 못했던 것 같아.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고, 믿고 싶은 대로 세상을 믿었어.
백수 생활에 지쳐갈 무렵,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초등학교 방과 후 강사 자리에 지원했어. 대기만 4시간 넘게 하다가 겨우 면접을 봤는데, 면접관이 “악기 전공도 아닌 음악 교육 전공인데 왜 여기에 지원하셨어요?”라는 말을 했어. 그때 깨달았어. '아, 나는 학교에서 음악만 가르칠 수 있구나'하고
그 이후로는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공부해서 임용고시에 합격했지. 어떻게 알았는지 학교에서 엄마가 신규 발령받은 학교로 난을 보내주셨어. ‘합격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말이야. 공시생일 때는 연락 한 번 없던 학과에서도 갑자기 후배들을 위해 합격자 특강을 해달라는 연락이 왔지.
사랑하는 딸아, 요즘 네가 시험 준비를 하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면 엄마 마음이 참 짠해.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엄마도 잘 알아. 그럴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어. 바로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이야.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늘의 뜻에 맡긴다는 의미지.
우리는 흔히 요행을 바라곤 해.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시험 점수가 잘 나오기를 바라는 것, 그게 바로 요행을 바라는 일이야. 하지만 요행은 거의 일어나지 않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잖아. 하늘이건 사람이건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을 돕고 싶어 하지, 대충 하면서 도움만 바라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가지 않아.
그리고 정말 모든 것을 바쳐서 노력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실패한 순간에는 서운하고 화가 나겠지만, 최소한 미련은 남지 않아. 그래서 다음 길을 깨끗하게 선택할 수 있지. 하지만 어중간하게 하면, 미련이 남아 그만두지도 못하고 계속하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에 머물게 돼.
사랑하는 딸아, 엄마는 ‘내가 이 정도 했으니 누군가가 이 정도는 해주겠지’라는 헛된 희망을 품으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해. 세상은 딱 내가 노력한 만큼만 얻을 수 있어. 노력한 이상을 바라는 건 욕심이야. 운이 좋게 노력한 이상의 결과를 얻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건 너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원래 그 몫을 받아야 할 주인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어.
그러니 딸아, 부디 스스로 노력해 결과물을 쟁취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무나. 엄마는 네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길을 스스로 걸어갈 수 있는 힘을 갖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길에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가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