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았는데 왜 달라지지 않았을까

by yuri

엄마의 편지, 여덟번 째 장


사랑하는 딸아.


엄마는 중학교 때부터 알바를 시작했단다. 외할머니께서는 “용돈은 스스로 벌어야 한다”는 경제관을 가지고 계셨고, 그 아래에서 엄마는 일찍부터 돈을 버는 법을 배워야 했어. 엄마의 첫 번째 제자는 학교 음악 선생님이었지. 학교에서 선생님들께 매를 맞으며 자랐던 엄마에게,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늘 크고 무겁게 다가왔어. 그래서 무급으로 강의를 해주면서도 매일매일 긴장했고,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단다.

그 이후로는 다른 과목의 학교 선생님, 피아노 학원 선생님, 음악 학원 수강생들, 예고 입시생들을 가르치며 조금씩 돈을 벌었어.


그렇게 학교를 다니며 돈을 버는 생활이 이어졌지만,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종종 불만을 터뜨리곤 했지. "왜 엄마는 나한테 돈 벌라고 해?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께 용돈 받으면서 학교 다니는데, 나는 왜 공부하고 연습할 시간도 부족한데 돈을 벌어야 돼?" 그 말이 외할머니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을지, 지금은 알 것 같아.

외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어. "너희 동생 생각도 해야지. 남동생이 번듯한 직장에 다녀야 너도 결혼해서 기 펴고 살 수 있어." 그 말이 그땐 참 서운했어. 왜 동생은 학교만 다니면 되고, 나는 일까지 해야 하는지 원망스러웠지.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외할머니가 음악을 전공하셨고 주위에 음악 학원을 운영하는 친구들이 많았기에 엄마에게는 강사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었던 거지. 반면 남동생은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학원에서 알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엄마가 아무리 열심히 일했어도 아마 엄마가 예고를 다니면서 쓴 레슨비의 1/3도 채우지 못했을 거야. 전공도 아니고, 수상 경력도 없고, 레슨 경력도 거의 없는 초짜였으니 누가 큰돈을 주고 배우고 싶어 했겠니. 그래도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돈을 버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 그래서인지 엄마는 돈을 쉽게 쓰지 못했어. 책 한 권을 사는 것도 망설여져서 중고서점을 자주 찾았지. 그때부터 엄마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어. "나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있잖아, 딸아.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반드시 돈 공부를 해야 해. 엄마는 그걸 몰랐어. 단순히 아껴 쓰고 열심히 일하면 되는 줄만 알았지. 주식이 뭔지, 채권이 뭔지도 몰랐고, 경제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어. 빚은 절대 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학자금 대출도 받지 않았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악착같이 공부했단다.

취직 후 얻은 전세집도 좋은 곳에 구하지 못했어. 장마철이면 집 곳곳에 곰팡이가 피었고, 옷과 신발, 가방에 곰팡이가 피는 바람에 싹 다 버려야 했지. 한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 버텼고, 자취하면서 처음 본 돈벌레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던 기억도 있어. 그래서 본가에 매주마다 갔고 월급의 절반 이상을 길에 버린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돈을 모아서 신축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 살았으면 더 쾌적하게 살았을 텐데 참 바보 같은 선택을 했지. 신혼집을 어떻게 할지 고민할 때도, 엄마는 ‘내 인생에 빚은 절대 없다’는 생각에 전세자금 대출을 완강히 거부했지.


그렇게 악착같이 모았으니 제법 많은 돈을 모았겠지. 그런데 경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엄마는 코로나 대폭락 이후 처음으로 주식을 접하게 되었고, 몇 달간 이어진 상승장을 보며 "아, 이렇게 돈을 쉽게 벌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그동안 모아 온 돈을 몽땅 투자하고 고점에 물려버렸단다.


친구와 친해지고 싶으면 그 친구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하듯,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돈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단다. 그래서 돈을 벌고 싶다면, 반드시 돈 공부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 그리고 투자를 하려거든 어릴 때 시작해 보렴. 어릴 때는 모아둔 돈이 적기 때문에 잃어도 감당할 수 있거든.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엄마가 경제 공부를 하라고 하는 이유는 경제 공부를 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때문이야. 큰 돈을 잃고 경제를 공부하면서 엄마는 내가 얼마나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는지 깨달았어. 확실히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게 많아지니 똑같은 현상도 다르게 보이더라.


요즘 한국에서 취업이 어렵다고 ‘헬조선’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외국어를 공부해서 해외에서 경력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좋은 일자리에 취직할 수도 있고, 외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어 강의나 번역 일을 할 수도 있어.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어.


사랑하는 딸아, 엄마는 네가 경제 공부를 통해 세상을 넓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돈은 단순히 쓰고 버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도구야. 그 도구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선, 먼저 그 원리를 이해해야 해. 엄마처럼 뒤늦게 깨닫지 말고, 지금부터 천천히 배워가렴.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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